과장님이 주신 무지개 양말

제육볶음 나라의 신입 앨리스 #7

by 생각할 윤

나의 옆자리에 앉아 계시지만, 나와의 나이 차이는 무려 13살인 그. 우리 팀에서 팀장님 다음으로 연장자인 한 과장님의 첫인상은 이랬다. 큰 키와 마른 체격, 늘 무표정한 얼굴과 적은 말 수. 한 과장님과 첫인사를 나누었을 때부터 이 분과 가까워지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과장님은 우리 팀에서 중간 관리자의 역할을 하신다. 팀원들의 업무 진행 상황과 고충을 체크하고, 팀원들을 대표해 팀장님께 의견을 전달한다. '중간' 관리자라는 역할에 맞게 그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는다. 가끔은 너무 공평하여 무심하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과장님이 후배 사원을 대하는 철칙은 명확했다.


'절대 직접 도와주지 않는다.'


신입사원도 예외는 없었다. 새 업무를 받았을 때면 바로 옆자리에 계신 한 과장님께 어떤 방법으로 처리하면 될지 여쭤보곤 했다. 대리님들은 주로 출장으로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많아 오피스 업무를 중점으로 했던 과장님과 둘만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말은, '일단 네가 생각하는 대로 해봐. 해보고 물어봐.'였다. 신입에게는 고기를 잡는 법보다 아직은 고기가 필요했다. '이 업무가 어떻게 생겨먹은 고기인지는 알아야 고기를 잡을 수 있지 않나요.'라고 생각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엑셀을 두들겼다. 당연하게도 반나절을 꼬박 두들겨 만든 결과물엔 오류가 많았다. 과장님께 겨우 완성한 결과물을 보고 드렸다. 과장님은 어디를 수정해야 하는지 말해주시지 않고, 잠시 침묵하시더니 조금 더 간결하게 정리해보라고만 말하셨다.


과장님은 내가 만든 결과물에 대해 그 어떠한 주관적인 평가를 하지 않으셨다. 그저 틀린 데이터가 있는지나 간단한 가이드 정도만 제시해주었다. 당근도 주지 않았고, 채찍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일까'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순 없었다. 옆 팀의 입사동기는 선임들에게 약간의 채찍과 많은 당근을 받으며 나보다 앞서 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만 정체되고 있는 것 같아서 속상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어느 날, 일을 못 끝내서 야근을 하던 날이었다. 한 과장님과 다른 대리님 한 분도 야근에 동참했다. 비슷한 시점에 야근을 끝낸 우리는 늦은 저녁을 먹으러 치킨집에 갔다. 피곤한 상태여서 그런지 그날따라 술이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세명을 모두 알딸딸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한 과장님이 물으셨다.

"요새 힘든 점 없어?"

평소였으면 없다고 말했겠지만, 술기운이 올라버린 신입은 솔직한 마음을 말했다.

"사실 제가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잘하고 있다면 잘하고 있다고 해주셨으면 좋겠고, 못 하고 있다면 고쳐야 할 점을 알려주셨으면 좋겠어요."

과장님은 잠시 침묵하더니 내게 말하셨다.

"선배 된 입장에서는 하나하나 다 알려주는 게 편하지. 차라리 내가 하는게 더 편할 때도 있어. 근데 그러면 네가 나중에 더 힘들어질걸."

아직 너무 어린 신입사원은 이 말의 의미를 그때에도 이해할 수 없었다.


오기가 생겼다. 그래, 일단 해보자. 과장님도 그냥 해보라 하셨으니 책임은 과장님이 지겠지. 그래서 그냥 했다. 때로는 며칠 걸려 만든 자료를 결국 못 쓰기도 했고, 때로는 나의 실수 때문에 애꿎은 한 과장님이 팀장님께 혼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과장님은 결코 나한테 어떠한 피드백을 하지 않으셨다. 죄송하다고 말하는 나에게 '신경 쓰지 마.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돼.' 이 말 한마디만 하셨다. 그래, 다시 해보지 뭐.


그 날도 어김없이 야근을 하기 전에 간단히 끼니를 때우려 삼각김밥을 사왔다. 한 과장님은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퇴근을 하신 듯 했다. 자리에 오니 내 책상 위에 낯선 무언가가 있었다. 플라스틱 포장 곽 안에 담긴 무지개무늬 양말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편의점에서 파는 무지개무늬 여성용 양말이었다. 누가 실수로 두고 갔나 싶던 찰나, 포장 곽에 붙여진 포스트잇을 보았다.


'양말 빵꾸났더라. 편의점에 마땅한 게 이거밖에 없어서ㅎ 양말 빵꾸날 만큼 엄청 잘하고 있으니 새 양말 신고 늦지 않게 집 가~'


신고 있던 양말을 보니 엄지 부분에 구멍이 나 있었다. 정작 나는 정신없이 일하느라 구멍이 나 있는 줄도 모른 채로 회사를 누비고 다녔구나. 양말을 갈아신으며 오랜만에 깔깔 웃었다. 마냥 먹구름인 줄 알았던 나의 직장생활에 작은 무지개가 있었다. 나는 곧장 무지개 양말을 신은 사진을 찍어 과장님께 전송했다.

'과장님~ 무지개 양말 넘 감사합니다! 이거는 빵꾸 안나게 할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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