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육볶음 나라의 신입 앨리스 #8
스몰토크의 가장 기본 질문인 '무슨 운동하세요?'라는 질문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헬스, 풋살, 테니스, 러닝, 크로스핏, 복싱 등을 한다고. 그렇다면 우리 회사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무슨 운ㄷ.."
"골프 쳐요!"
일단 우리 회사 직원들이 즐겨하는 운동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러닝, 테니스, 골프. 이중 가장 많은 인원이 골프를 하고 있다. 심지어 자체적으로 동호회를 만들어 분기에 한 번씩 필드를 나가거나, 스크린 골프를 치러 가기도 한다. 토요일 아침부터 회사 사람들과 만나 골프를 치고, 같이 점심을 먹고,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꽤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우리 회사 분들의 골프 사랑은 너무나도 지극하다 보니, 나와 친한 회사 분들의 생일 때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골프공 세트를 슝슝 날려 보내곤 한다. 나는 아직 골프를 배워본 적도, 쳐본 적도 없지만 골프는 괜찮은 스포츠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나는 유산소 운동을 선호하고, 같이 하는 운동보다 혼자 하는 운동을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골프를 배워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들진 않았다. 그들의 눈에 나는, 아직도 골프의 참맛을 모르는 중생이었다. 점심시간 스몰토크 주제로 운동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팀원들은 늘 내게 골프를 권했다.
"요즘 젊은 애들도 골프 많이 치던데 골프 배워 봐."
권유에는 죄가 없다. 다만, 상대방이 거절 의사를 표현했음에도 계속되는 권유는? 나는 죄라고 보겠다. 동료와 즐거움을 같이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나,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듣는 골프 권유는 골프에 대한 반감을 조금씩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점심시간마다 나오는 '골프 제안'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면서, 나중에는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명절 잔소리 급으로 반감이 극에 달하는 수준이 되었다. 골프의 '골'자라도 나오는 순간, 속으로 '으아악, 그만 좀 하세요!'라고 고함을 질렀다.
어느 날부터는 골프에 대한 반론을 당당히 제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골프를 배우고 싶지 않아 하는 이유를 조금이라도 납득시키려는 최후의 발악이었다.
"아니, 근데 유산소 운동처럼 체력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너무 정적이고, 돈도 많이 드는데 왜 재밌어요? 저랑은 너무 안 맞는 것 같아요."
라는 나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무수히 많은 반론이 쏟아졌다.
1. 장비는 당근이나 주변 지인들에게 중고로 싸게 사면된다.
2. 골프가 유산소 운동은 아니지만 힘을 적절히 조정해야 하는 근력운동이자, 바람의 세기와 방향에 따라 전략을 짜야하는 지능 향상 스포츠이다.
3. 골프를 같이 치며 깊은 유대감을 쌓을 수 있다. 영업사원이나 회사 고위직들이 괜히 골프를 치는 게 아니다.
열띤 토론에 지친 나는 결국 '아, 그래요?'라는 한 마디로 K.O를 외쳤다. 나는 생각했다. 그런 장점을 가진 골프이지만 저는 아직 마음이 열리지 않았답니다. 저를 열 번 찍어도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어느 날, 회사 동기와 밥을 먹다가 이 작은 고민을 터놓았다. 회사 분들이 자꾸 골프 배우라고 권유를 한다는 나의 투정에 동기는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너한테 골프 배우라고 하면 레슨비 달라고 해."
인터넷에 명절 때마다 SNS에 뜨는 '명절 잔소리 필승법'에 따르면, 결혼은 언제 하냐는 물음에는 '결혼할 상대 소개해 달라.'라고 응수하고, 취업은 언제 할 거냐는 물음에는 '일자리 꽂아달라.'라고 응수하면 된다고 한다. 이것을 응용하여 '골프 레슨비 달라.'라며 응수를 하라는 필승법이었다. 진짜 해볼까? 너무 유치하지 않나 싶었지만 그동안 귀에 딱지가 앉게 당한 권유에 비하면 충분히 해볼 만하지 않을까.
얼마 후 점심시간에는 또 골프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이윽고 골프는 언제 배울 거냐는 과장님의 말이 들려왔다. 이제는 내 차례다.
"레슨비 주시면 배울게요~"
그러자 그 말을 한 과장님이 푸하하 웃으면 답했다.
"으이구, 그렇게 배우기 싫냐. 관둬라 관둬."
이 후로 다른 대화 주제로 넘어가면서 골프 얘기는 더 이상 나왔다. 다행히 이게 나름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몇 달간은 골프 권유가 오지 않았다. 제법 재밌었던 경험이었다.
그러다 얼마 후, 다른 팀 차장님과 우리 팀 강 대리님, 그리고 나로 구성된 식사 자리가 생겼다. 그날도 어김없이 골프 얘기가 나왔다. 차장님은 나에게 골프를 치는지 물었고, 내가 골프를 안 친다는 대답을 하자마자 내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그 말을 하셨다. 친한 사이도 아니거니와, 직급 차이가 있는 상대에게 차마 '레슨비 주세요' 스킬을 쓸 수는 없었다. 입만 웃는 웃음으로 때우려던 찰나에 구원투수인 강 대리님이 흑기사로 나서 주셨다.
"아휴~ 저희 팀도 골프 배우라고 엄청 권했는데 골프 레슨비 주면 배울 거래요."
"아 그래? 레슨비를 주기는 어렵고.."
이제 다른 주제로 넘어가겠구나 하던 찰나였다.
"아 맞네! 나 레슨 받을 때 쓰던 연습용 아이언은 줄 수 있어요. 그게 더 낫죠? 내 차 트렁크에 있는데 이따 주차장 같이 가서 줄게요."
그 순간만큼은 누가 나를 아이언으로 날려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