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밖에서 쓰는 나의 IR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내가 가진 것이 우량주이길 바란다.
주식도, 부동산도, 심지어 자식도.
안정적이고, 성장하고,
남들이 봐도 고개를 끄덕이는 그런 종목으로.
내 아이는 공시조차 되지 않은 종목이다.
시장에서는 끝내 가격이 매겨지지 않는 쪽이다.
진단이 확정되던 날,
나는 의사 앞에서 꽤 의연했다.
고개를 끄덕였고, 받아 적었고,
감사합니다까지 했다.
뇌혈관종. 뇌전증. 염색체 이상. 발달지연.
항목들이 지나가는 동안
이게 현실인지 아닌지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질문 하나 제대로 못 한 채로.
차에 타서 시동을 거는 순간, 무너졌다.
아무도 없는 곳. 그제야 울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단순 관용어구가 아니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사실 마음 한켠에 이런 생각이 스쳤다.
'차라리 성산대교를 뚫고 한강물에 빠져죽을까'
아이가 아파서가 아니었다.
이렇게 많은 신호를 놓친 채
7년을 살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곳이 이렇게 아팠는데
나는 왜 못 하냐고 했다.
왜 이것도 모르냐고 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붙잡고 악을 썼다.
그 장면들이 한꺼번에 돌아왔다.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아이 얼굴을 제대로 마주보지 못했다.
그저 할 수 있는 한 가장 맛있는 저녁을 차리겠다고
부엌에만 내내 있었다.
칼질하며 울고, 가스불 키며 울고, 밥을 푸며 울었다.
그날 이후로 한동안 더 깊은 동굴 속에 있었다.
그게 아이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었다는 걸.
비상장 종목의 가장 큰 고통은 거래가 없다는 것.
성과도 없고, 보여줄 숫자도 없다.
아이의 성장은 지독히 느리고, 어떤 날은 뒤로 간다.
세상은 늘 같은 질문만 던진다.
"이거 수행 가능한가요? "
나는 매번 뭔가를 설명해야 했다.
이제는 제법 아이에 대한 데이터가 있을 법한데
새학년에는 진단명부터 병력까지 다시 읊는다.
젠장할, 이 종목은 매번 새로 상장해야 한다.
로봇이 트롯 음악에 맞춰 그르부를 맞추는 시대에
아이는 여전히 계단 기둥을 잡고 느리게 내려온다.
나는 그 옆에서 속도를 맞춘다.
얼마 전 낯선 이가 아이에게 물었다.
"00아. 불이 나면 어떻게 해야하지?"
아이는 5초쯤 멍하니 있다가
"불? 위험해! 대피?" 하며 손바닥을 입으로 가린다.
조심스럽고 확신없는 얼굴이었지만
기특하게도 소방 훈련을 그 5초간 떠올린 것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아무것도 아니다.
숫자로 환산되지 않고,
남한테 설명도 안 되는 나만 아는 그 상한가.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