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시간의 박수
철 지난 프로그램을 꺼내는 건,
그 흔한 질투나 시기심 때문은 아니다.
원래 질투라는 건
체급이 맞아야 링에 오르는 것 아닌가.
그들과 나의 삶은 이미 안드로메다만큼의
광년 차이가 나는 ‘비교 불가’의 영역이니,
이건 질투가 아니라 순전히 관조(觀照),
혹은 더 솔직히 말하자면 피로에 가깝다.
반복되는 관용과 망각을 구경하는 데서 오는,
아주 한국적인 피로.
슈퍼맨이 돌아왔다로 ‘국민 쌍둥이 아빠’라는
타이틀과 함께 부와 명예를 풀소유했던 어떤 이가,
온갖 논란을 뒤로하고 캐나다로 홀연히 떠나더니
같은 방송국 다른 프로그램으로
슬그머니 복귀 녹화를 마쳤단다.
이놈의 미디어는 참으로 태평양처럼 관대하다.
부부가 세트로 비호감 행보를 보이며
도피성 출국을 감행해도, ‘시간이 약’이라는
고전적 클리셰를 믿고 돌아오는 건지,
아니면 한국 특유의 ‘인맥 카르텔’이 작동한 결과인지.
어느 쪽이든 놀랍지 않은 현실이다.
복귀하는 슈퍼맨의 발걸음이 참으로 가볍기도 하겠다.
2013년, 슈퍼맨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계절.
추사랑이 있었다.
남인 내가 봐도 그 아이의 다양한 표정과 애교는
귀엽다 못해 실로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하필 내 딸아이와 동갑이었다.
그 아이의 ‘짤’들이 온 커뮤니티를 유영할 때,
일주일마다 폭발하는 어휘에, 개구진 웃음 하나에
조회수는 수백만을 상회했다.
“힐링 된다.”, “사랑이 덕분에 오늘도 살맛 난다.”
랜선 이모, 삼촌들은 그 어느 때보다 포근했다.
온 나라가 ‘추사랑 신드롬’이던 그 해.
지금처럼 모두가 날이 서서 타인의 아이 사진에
생김새를 폄하하거나, 범죄 악용을 들먹이며
겁을 주는 댓글을 올리던 시대는 아니었다.
매주 48시간의 추성훈 육아를 응원하며 감동했다.
정확히 그 무렵, 안양 어느 구석의 재활병원 낮병동
나는 대기실의 바닥에 주저앉아 컵라면을 먹었다.
비루하게도 그날 내가 느낀 유일한 온기는
'참깨라면'의 뜨끈하고 적당히 짠 국물이었다.
또 공교롭게도 그 계절에는
주변에 유독 발달이 빠른 아이들로 가득했다.
마치 신이 보잘것없는 내 인생을 확인 사살하듯.
비슷한 시기에 출산한 지인들의 카톡 프로필은
아이의 시시각각 변하는 성장 서사로 도배되었고,
다섯 달 늦게 태어난 시누이 딸은
이미 우리 애를 저만치 앞질러 전력 질주 중이었다.
시어머니는 수시로 전화기를 통해
시누이 딸의 발달 사항을 실시간 브리핑하며
“이거 해봐라, 저거 해봐라” 독촉했다.
모두가 아이의 성취를 중계하는 동안,
친정엄마는 아이의 상황을
나의 ‘게으름’ 탓으로 돌렸다.
단 한 명도, “당신은 좀 어때요?”라고 묻지 않던
서늘한 계절이었다.
(2탄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