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이 돌아왔다,
우리 집 빼고 2탄

편집되지 않는 시간

by 빵쉬크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아빠의 육아판타지를 가장한,

잔혹한 편집의 미학이다.

아빠가 48시간 동안 아이를 돌보며

‘좌충우돌’ ’ 고군분투' '극기훈련' 하는 모습은

끝내 뭉클한 휴먼 다큐로 마무리한다.

한때 대한민국은 그 48시간의 쇼에 열광하느라

진짜 육아의 처절한 비명은 소음취급도 받지 못했다.


문득 의문이 생긴다.

일주일 중 나머지 120시간, 그 애들은 누가 돌보지?

그 방대한 시간은 방송으로 볼 수 없으니

스치듯 생각난 아주 단순한 질문인데,

왜인지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마냥 쓴다.


반복되고, 지루하고, 드라마도 없고,
눈물도 클라이맥스도 없이 그냥 이어지는 일상.

그럼에도 아이들은 자란다.

발달장애 아이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흔하게.


발달장애 육아에는 그 흔한 기승전결이 없다.

대신 도돌이표만 가득하다.

겨우 한걸음 나아갔다 싶으면,

어느새 귀신같이 처음으로 되돌아와 있다.


웹소설로 치자면 '미회수 복선'의 회차가

너무 많아 그냥 망작이라는 오명 쓰고 퇴출될 판이다.

어제의 성취가 오늘은 리셋이 되는 기이함.

이런 시리즈는 그 어떤 방송국도 편성하지 않는다.
시청률의 문제가 아니다.

대중이 소비하고 싶어 하는 '예쁜 감정'의 규격에

우리 아이는 도저히 끼워 맞춰지지 않기 때문이다.


10년이 훨씬 지났지만

가끔 안양의 그 살벌한 물리치료실을 떠올린다.

아이의 울음을 치료 효과의 지표로 환산하던

폭력적인 손들이 신의 도구로 추앙받던 공간.

"치료과정입니다."

이 한마디로 모든 장면이 면죄부가 되던

안양의 어느 재활병원의 낮.병.동.

방바닥에 등을 붙이고 호명을 기다렸다.

패전국의 군인처럼.

저항할 무기도, 항복을 선언할 문장도 없이.


아이의 울음이 벽을 치고 튀어 오르던 그 공간에서,

서로의 아픔을 위로한다며

불어 터진 컵라면을 나눠 먹던 엄마들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사정을 다 알면서도 굳이 묻지 않았다.

이미 답을 알고 있었거나,

질문 자체가 사치였기 때문이다.

우리 중에 슈퍼맨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기다릴 이유가 없었거나,
영웅이 오지 않는다는 걸 이미 깨달았거나.


슈퍼맨은 없었다.

만약 진짜 영웅이 거기 있었다면,

굳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이 영웅임을 증명할 필요조차 없었을 테니까.


이 글은 그저 기록이다.

우리 집을 제외한 모든 집에

슈퍼맨이 있는 것처럼 말하던 그 시절에 대한,

조금은 시큰하고,

그래도 아직 뜨거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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