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부모의 투자전략
내 포트폴리오는 오래전에 리밸런싱 됐다.
"자의로"라고 말하면 좀 있어 보이니까 그렇게 하자.
사실은 시장이 나를 강제 청산시킨 것에 가깝지만.
화려한 패션 섹터에서 장애라는
언더밸류드 마켓으로의 이동했다.
내가 원한 적 없는 섹터로의 강제 편입.
누군가는 다각화라고 부르겠지.
나는 그냥 딸이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다고 부른다.
투자 철학이 바뀐 게 아니라, 시장 자체가 바뀐 거다.
지금 내 감정 상태를 굳이 차트로 그리라면
— 횡보장이다.
급등도 없고 급락도 없는,
그렇다고 안정적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지루한.
이게 단련된 건지 소진된 건지 —
매일 아이 옆에서 차트를 들여다보는 사람은
본인이 어느 쪽인지 알 수가 없다.
변동성에 너무 오래 노출되면 무감각해진다.
업계에선 리스크 내성이 높아졌다고 표현한단다.
참 좋은 말이다. 그냥 무뎌진 거라고 하면 될 것을.
손절은 했다. 감정적으로.
미련이라는 포지션을 들고 버티는 건 물타기다.
내가 손절한 건 — 내 서사였다.
문학도가 되고 싶었던 여자, 옷을 만들고 싶었던 여자.
아이의 첫 진단서가 나오던 날,
그 포지션은 그냥 조용히 반대매매 당했다.
의사 한 문장이 인생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데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것도 시장가로.
눈물 한 번 흘리니 체결되었다.
손절 이후의 현금. 나에게 현금 포지션이란
— 아무것도 아직 베팅하지 않은 상태.
분노도 체념도 희망도, 전부 유보 중인 상태.
장애계에 발을 들인 부모들이 으레 장착하는
그 ‘수용’이라는 불티나는 종목을
이 쥐꼬리만 한 현금을 쥐고 매수를 고민 중이다.
시장을 보면서, 뛰어들 타이밍을 재는 척하면서.
장애계라는 이 마켓이란,
비효율이 구조화돼 있고, 정보는 비대칭이고,
큰손들은 복지예산을 쥔 관료들이고,
개미들은 지쳐서 그냥 주는 대로 받는 곳이니까.
그래서 난 이 시장에서 비판적 관찰자이다.
당사자이면서 관찰자.
안에 있으면서 밖에서 보는.
이게 전략인지 체념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존버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관망 투자자에 가깝다.
장애 부모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는 것들 —
연대, 공동체, 서로의 눈물을 확인하는 그 의식들
—에 선뜻 진입하지 않으니까.
종목이 비슷해 보여도. 같은 진단명이라도.
공감은 하되, 동질감은 거래하지 않는다.
이건 그냥 내 리스크 관리다.
'Long-term hold(장기보유)'라고 정신승리한다.
길게 보면 오를 거라고.
아이도, 나도, 이 이상하고 비효율적인 마켓도.
오늘 밤은 그냥 그렇게 믿기로 했다.
차트 따위는 신경 끄고,
목표주가는 설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