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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Oct 22. 2023

개 같은 사람들 #5

제주 기담집1

 개들이 죽은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다시 그 카페에 들렸다. 예상했던 대로 CCTV에서는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다. 최소한의 빛도 없는 환경에서 일반적인 카메라는 무용지물이었다. 나는 그날 밤 내가 봤던 붉은 안광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CCTV를 통해서는 언제 그 사건이 일어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죽음과도 같은 침묵뿐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개에게 물렸던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 개들이 죽었다고요?” 남자가 대답했다.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들개한테 물려 죽었나 보죠.” 그가 그렇게 말할 때, 아니, 말하기 전부터 씨익하며 웃고 있었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머릿속에서 그의 창백한, 히죽이는 미소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는 소리 내서 웃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 들개 포획 작전이 시작됐다. 개들이 죽은 일이 매스컴을 타고 공론화됐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개 주인이 작정하고 언론에 제보한 모양이었다. 뉴스에서 쉬지 않고 들개의 위험성을 떠들어댔다. ‘개 학살 사건’이라느니, ‘들개들의 왕국’이라느니, ‘동족상잔의 비극’ 같은 참신한 스토리를 추가한 자극적인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덕분에 그 사건을 담당했던 나의 파출소도 제법 시끄러워졌다. 감사하게도, 개 주인은 우리의 노고를 잊지 않았다. ‘경찰의 부실 수사’, ‘미흡한 초동 대응’ 따위의 제목을 단 후속보도가 이어졌다. 경위님이 불려 가 한소리 들은 건 말할 것도 없다. 나는 불똥이 내게 튀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경위님은 따로 내색하지 않았다. 외려 덤덤했다. 단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태우던 그에게 가서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경위님?” 허공을 응시하던 그가 깊게 연기를 빨았다. “나야 뭐 위에서 기라면 기는 거지.”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몰려와 귀찮게 했다. 나는 그렇게 많은 애견단체, 동물복지단체, 동물보호단체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개 주인, 기자, 심지어는 시의원도 행차했다. “저희 파출소에서는 초동 조치만 했고요, 수사는, 현재 서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경위님은 눈에 띄게 친절해졌다. 세간의 관심에 힘입어 서에서의 수사가 확대됐지만, 명백한 증거가 나온 것은 아니었다. 개 주인이 개들의 시체를 처리해 버렸기 때문에, 부검할 수도 없었다. 어디까지나 ‘들개의 소행’으로 추정이었지만, 사람들에겐 이미 그게 기정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개가 아니고서야 무엇이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겠냐마는.

 작전이라고 해 봤자 덫을 놓는 것뿐이었다. 들개는 유해 야생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총기를 이용해 사살할 수는 없었다. 마취총을 쏘기엔 거리를 좁히기 어려웠고, 포획하기엔 너무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몇 마리 잡히는가 싶더니, 이내 그 영악한 개들은 덫을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실상은 유기견이나 목줄을 풀어 둔 반려견들이 포획 틀에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운 좋게도, 내 관할에서 들개 관련 사건은 더 이상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물보호소에서 신고가 접수됐다. 동물 보호단체와 보호소 직원들 간에 시비가 붙은 모양이었다. 


 경위님과 내가 동물보호소에 도착했을 때, 근처에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포획된 들개의 살처분을 반대한다는 동물단체의 항의였다. 보호소 밖은 사람들로 붐볐다. 직원들과 보호단체 사람들이 서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모든 개는 반려동물입니다!” 확성기를 통해 누군가가 소리쳤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공무원들이었다. 물론 카메라들도 빠지지 않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저건 또 뭐야.” 경위님이 말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얼굴이었다. 개에게 물렸던 남자가 동물단체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카메라 앞에 서 있는 남자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지저분한 머리는 깔끔하게 정리됐고 얼굴엔 생기가 돌았다. 깔끔한 옷차림에 권위마저 느껴졌다. 나는 도저히 그 남자의 정체가 가늠되지 않아 경위님을 쳐다봤다. 그 역시 혼란스러운 듯했다.

 “사람에게 개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는 없습니다!” 남자가 확성기에 대고 비장하게 소리쳤다. “개가 가축을 사냥하고 사람을 공격하는 건 지극히 본능적인 행동입니다. 도덕적 인식이나 윤리적 기준을 갖출 수 없는 동물에게 인간의 감정적인 잣대로 처벌하는 건 합당하지 않습니다. 안락사를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개를 방치, 학대하거나 관리를 소홀히 한 견주, 모견에게 호르몬제를 주사하며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게 하는 공장형 펫샵, 그로 인해 쉽게 개를 사고팔며 소비하는 사회문화와 개를 쉽게 버릴 수 있는 시스템, 이를 비롯해 중성화, 유기견 문제를 방관하는 지자체. 결국 들개를 만든 모든 원인은 인간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잘못을 개에게 돌리며, 개들의 권리를 짓밟는 파렴치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현재 안락사 예정인 들개의 양도와…”

 나는 그의 연설을 지켜보는 경위님의 입술이 씰룩대는 걸 놓치지 않았다. 

 보호소 안은 이미 수많은 개로 붐볐다. 사람들의 소음과 분위기가 개들 역시 흥분시키고 있었다. 개들이 짖어 대는 소리로 보호소 밖만큼이나 시끄러웠다. 몇몇 녀석들은 입마개를 하고 있었다. 들개였다. 그런데 그들 중 한 마리의 개를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케이지 안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그 익숙한 형체는 분명 감자였다. 감자는 내 냄새를 맡고 고개를 돌렸지만, 이전처럼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지 않았다. 다만 케이지 안에서 멀뚱하게 나를 바라봤다. 나는 감자가 있는 철창 쪽으로 다가갔다. 선뜻 이전처럼 손을 내밀 수 없었다. 그렇게 잠시 서로 바라볼 뿐이었다. 이윽고 감자는 체념한 듯 고개를 떨궜다. 마치 형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 같은 모습이었다.

 “여기서 뭐 해?” 경위님이 걸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아, 예. 저 잠깐….”

 “일단, 보호소 측에서 안락사를 좀 미루기로 얘기 나왔으니까, 정리하고 가자고.”

 “경위님, 혹시 개 감옥을 만드는 건 어떨까요?”

 “뭐?”

 “들어보니까 개한테 권리가 있다는 것도 일리가 있더라고요. 근데 권리가 있으면 의무도 있어야 하잖아요? 자기 행동에 책임도 져야죠. 일종의 개 교화시설을 만들어서, 죄지은 개들을 교육하는 거죠. 자기 잘못도 좀 뉘우치게끔 하고.”

경위님의 얼굴이 불독처럼 구겨졌다. 그때, 보호소 밖에서 누군가가 고함을 쳤다. 와장창하며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개들이 환호했다. 

 “에이씨, 또 뭐야?” 경위님이 투덜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나도 경위님의 뒤를 따랐다.

 “오늘따라 개새끼들이 말썽이네요. 그렇죠?” 

 경위님이 이번에는 놀란 강아지 얼굴을 하고 나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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