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덩 Oct 22. 2023

개 같은 사람들 #4

제주 기담집1

 수사는 그렇게 중지됐다. 개에게 물린 남자는 사건 경과에 관한 문자를 받고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간혹 경찰의 수사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행패를 부리거나 개인적인 보복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사실 그의 상처는 심각하지 않았고, 먼 타지까지 와서 사소한 사건에 신경을 쏟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미 서울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날 저녁, 여느 때처럼 주간 근무를 마치고 저녁 늦게 집에 도착했다. 간단한 요기를 하고, 산책을 나섰다. 사료를 너무 많이 줬던 탓인지, 감자는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9시 무렵, 해변에는 우리 둘뿐이었다. 밤하늘에는 유난히 커다란 보름달이 구름에 반쯤 가려져 있었다. 솨아아 하는 파도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렸다. 오늘 바다는 다른 날에 비해 비교적 밝았다. 눈부신 조명을 단 어선들이 가까운 바다에 여럿 떠 있었다.

 감자를 운동시킬 요량으로 근처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집어 던졌다. 감자는 금세 나뭇가지를 물고 돌아왔다. 감자는 뛸 때 행복해 보였다. 그건 내 마음을 간질이는 포근함이었다. 몇 번 반복했을 무렵, 나는 들뜬 기분에 나뭇가지를 점점 더 멀리 던지고 있었다. 내 어깨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 걸 깨달았을 때, 감자는 이미 어둠 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뭇가지는 수풀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재빨리 감자를 불러봤지만, 녀석은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불안감이 해일처럼 엄습했다. 감자는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고, 기척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감자의 이름을 부르며 심연을 향해 다가섰다. 파도 소리마저 잠잠했고 내 떨리는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봤지만 소용없었다. 나무가 우거진 좁은 숲길은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도저히 그곳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주변에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경찰관이 경찰에 전화해 ‘개를 잃어버렸는데요.’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던 중 나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경험해 본 적 없는, 원초적인 생존의 본능이었다. 숲 어딘가, 그 어둠 속에서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직감적으로 그게 감자가 아니란 걸 느꼈다. 그건 분명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장까지 꿰뚫리는 기분이었다. 숨이 가빠졌다.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내 몸이 숨소리를 죽였다. 그래서 숨이 거의 쉬어지지 않았다. 반면에 심장은 어느 때보다 빠르고 강하게 뛰었다. 나는 그 눈빛에 시선을 고정한 채, 후들거리는 다리를 뒤로 옮기려 노력했다. 계속해서 눈의 초점이 흐려지며,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것과 나 사이의 거리는 고작 7, 8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의 입인지, 주둥이인지 모를 것에서 뿜어내는 불결한 입김이 내 얼굴에 닿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때, 빠앙 하는 큰 소리가 울렸다. 깜짝 놀란 나머지 몸이 경련을 일으켰고, 뒤로 넘어졌다. 방파제 옆 항구로 배가 들어가는 중이었다. 다시 숲을 쳐다봤을 때 그 안광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참았던 숨이 터져 나왔다. 나는 뒷걸음치며 해변을 빠져나왔다. 도망치듯 집으로 뛰어왔을 때 입고 있던 옷은 이미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목과 어깨 그리고 허벅지에 쥐가 났다. 

 감자를 잃어버린 것으로도, 그 어둠 속에서 나를 쳐다보던 무언가에 대해서도 경찰에 신고하기는 어려웠다. 기껏 적응하던 직장생활이 어떻게 꼬일지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그 눈빛은 그냥 길고양이나 너구리, 노루 같은 야생 동물이었을지도 모른다. 냉수를 한 잔 들이켜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한편으로는 감자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창문을 통해 거리를 내다봤다. 제법 찬 바닷바람이 부는 그 해변에서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는 감자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러나 도저히, 혼자서는 그곳에 다시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티비를 틀고 채널을 돌렸다. 차가운 맥주를 꺼내 왔다. 평소 좋아하던 축구 중계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오늘 밤 따라 유난히도 동네 개들이 짖었다. 감자는 괜찮을 것이다. 


 다음 날, 감자를 찾기 위해 해변으로 나섰다. 언제라도 비를 쏟아낼 것처럼,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 꼈다. 바다는 안개를 짙게 품었다. 아침부터 개를 데리고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감자와 같은 리트리버였으나 털의 색이 달랐다. 그들은 해변을 가로질러 트레킹 코스로 향해 달렸다. 나는 서둘러 그들을 뒤따랐다. 기억을 더듬어, 어제 봤던 눈빛이 있었던 곳으로 향했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마치 창문처럼, 내가 서 있던 해변을 향해 시야가 탁 트여 있는 공간이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일회용 종이컵이나 담배꽁초 같은 자질구레한 쓰레기들뿐이었다. 오솔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새들이 정신없이 울어 댔다. 가끔 덤불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감자의 이름을 불러보았으나 대답은 없었다. 이렇게 감자를 찾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걷던 중 어디선가 소란이 들렸다. 그 트레일러가 있는 샛길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고물 버스로 다가섰다. 버스 옆 주황색 개는 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낮잠을 자는 듯했다. 트레일러에 다다르자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경위님을 보고 반가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 옆에서는 50대 정도로 보이는, 머리가 흰 남자가 다른 순경에게 악을 쓰고 있었다. 카페 여사장과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 몇몇이 멀찍이 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너가 여기 웬일이냐?” 내가 다가가자 경위님이 아는 체를 했다.

 “아, 저 여기 근처 삽니다. 산책 나왔다가 우연히 왔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오늘 야간 근무 아니십니까?”

 그는 퍽 피곤해 보였다. 경위님이 말없이 턱으로 현장을 가리켰다. 그다지 유쾌한 광경은 아니었다. 개집에 묶여 있던 그 사나운, 하얀색 소형견이 축 늘어져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았고, 파리가 꼬였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다른 개들도 마찬가지로 모두 죽어 있었다. 주황색 개 역시 자는 게 아니었다. 몸이 괴상하게 꺾인 채 숨이 끊어져 있었다. 목과 얼굴 근처에는 피가 엉겨 있었다. 다행히 감자는 그곳에 없었다.

 “주인은 어젯밤에 이 트레일러에 없었대. 시내에 있는 다른 집에서 자고 왔다나 봐.” 경위님이 말했다.

 “들개가 그런 걸까요?” 내가 물었다. 

 “글쎄, 들개가 가축들을 공격하는 일이 있긴 한데… 보통은 중산간 지방에서나 그러지. 여긴 시내하고도 가깝잖아. 내 생각에 개는 아닌 것 같은데. 아니면 아주 큰 개거나. 물어 죽인 게 아닌 거 같단 말이지. 커다란 발톱 같은 거로. 콱.”

 순간 어제 봤던 붉은 안광이 떠올랐다. 감자도 끔찍한 일을 당한 건 아닐까? 그랬다면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경위님과 현장을 뒤로하고 왔던 길로 나왔다. 감자를 빨리 찾아야 했다. 그러나 어떻게? 무작정 길을 따라 걸으며 감자의 흔적을 찾았다. 놀랍게도, 개의 변을 발견했다. 사람의 것과 크기가 비슷했다. 옆에는 밟힌 풀들이 누워 있었고, 그 흔적은 수풀로 향했다. 내 키만큼 자란 풀들을 헤치고 나아갔다. 가시를 세운 가지들이 무성하게 우거진, 작은 터널의 입구가 보였다. 허리를 굽혀 들어갈만 했지만, 구불거리는 길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망설여졌다. 그 터널은 마치 날카로운 이빨들이 가득한, 쩍 벌린 채 희생양을 기다리는 거대한 주둥이 같았다. 가지 사이사이 거대해진 거미줄에 벌레들의 사체가 가득했다. 독사에게 물릴 가능성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 트레일러 개들을 죽인 게 들개라면, 아직 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왜인지, 그 터널 안으로 기어 들어가는 감자의 모습이 계속해서 상상됐다. 마음을 다잡고 발을 내디뎠다. 

 한껏 예민해진 신경에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나도 흠칫했다. 대부분은 새였다. 한번은 뭔가 쉭쉭 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지만, 폴리에스터 재질 옷의 겉감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였다. 모퉁이를 몇 번 돌자 출구가 나왔다. 문득 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어렸을 때 자주 읽던, 추리소설 속 탐정 흉내라도 내고 싶었던 걸까? 팔과 다리는 긁힌 상처들로 아렸고, 배는 고프다 못해 속이 쓰렸다. 툭, 툭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콧잔등에 빗물이 떨어졌다. 비 맞는 건 딱 질색이었다. 서둘러 발걸음을 돌렸다. 아무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와 보호소에 전화를 걸었다. 종종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거나 시내에서 발견되는 일이 있으니, 일단은 기다려 보자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그들이 화를 내거나 적어도 타박을 줄줄 알았다. 따지고 보면 감자가 제 발로 나간 게 아니던가. 감자의 밥그릇과 물그릇이 완전히 비어있었다.


이전 09화 개 같은 사람들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