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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Oct 22. 2023

개 같은 사람들 #3

제주 기담집1

 근무를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지만, 이미 저녁 여덟 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나는 감자가 집을 적당히만 어질렀길 바랐다. 현관문을 열자, 감자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들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감자를 안아 털을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털이 내 피부를 감쌌다. 내 얼굴을 핥으려는 감자의 혀를 피하며 방안을 둘러봤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슬리퍼 한 짝과 엎질러진 사료와 물 외에는 크게 말썽을 피우지 않았다. “왜 이렇게 얌전히 있었어? 안 심심했어?” 다음 외출 때는 녀석이 혼자 가지고 놀만한 장난감이라도 사야겠다. 이제는 바닥에 누워 배를 드러낸 녀석을 쓰다듬었다. 사람을 이렇게 좋아하는데 두 번씩이나 버려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지친 몸을 이끌고 감자와 산책을 나왔다. 작은 동네는 해가 지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우리는 골목길을 따라 바다로 향했다. 가볍게 달리기를 할 겸, 감자와 즐겨 가는 산책로였다. 길 양옆으로 오래된 주택들이 드문드문 자리를 지켰다. 사람이 살지 않아 폐가가 된 집도 종종 있었는데, 밤이 되니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입구에 그물이 쳐져 있는 집을 지날 때 감자가 멈춰 섰다. 꼬리를 흔들며 어둠 속을 응시하다가 두어 번 짖었다. 도둑고양이라도 봤던 모양이었다. 가로등이 없는 골목을 지날 때 나는 장님과 같았다. 감자의 안내에 의지해 걸었다. 잎이 모두 떨어진 고목들이 머리 위로 가지를 흔들어 댔다. 감자는 전봇대며, 담장이며 냄새를 맡으며 걷다가 바닷가에 다다르자 나를 재촉했다. 뛰고 싶은 눈치였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내 얼굴을 감쌌다.

왼편엔 방파제와 빨간색 등대, 오른편엔 주상절리 절벽으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해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없을 때는 감자의 목줄을 풀어 자유롭게 뛰어다니게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빨간빛으로 반짝거리는 등대 말고는 조명이 없다시피 했다. 개를 풀어 놓기에는 너무 어두웠다. 감자는 똑똑한 개였다. 뛰는 걸 포기하고 나의 보폭에 맞춰 걸었다. 녀석이 기특했다. 늘 시끄럽고 사람이 붐비는 대도시에서 도망치듯 이곳으로 왔었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삶에 만족했지만, 친구도 취미도 없는 삶은 무료했다. 감자는 내 친구이자 취미가 되어줬다.

 방파제 너머에는 작은 항구가 있었다. 낮에는 유람선과 고깃배들이 드나들었다. 반대편에는 높이가 8~9미터는 되는 절벽이 병풍처럼 늘어져 있었다. 그 절벽에는 크고 작은 동굴들이 있었는데, 왠지 께름칙한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절벽이 낮아지는 곳에 산책로의 입구가 있었다. 오늘 신고했던 남자가 말했던 트레킹 코스였다. 나는 해변을 지나 그 입구로 걸어 들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들개에 물렸거나 그랬겠지.” 수화기 너머로 귀찮다는 듯한 목소리가 말했다. 

 “피해자분이 물리실 때, 그 앞에서 보고 계셨다고 하시던대요?” 

 “아 글쎄, 나는 본 적이 없다니까?” 

 “아, 예. 그럼 제가 피해자분께 그렇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전화기에서는 이미 통화 종료음만이 울려 퍼졌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피해자의 번호를 찾았다. 이번에는 어둡고 음침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렸다. 나는 그에게 통화내용을 전달했다. 

 “들개에 물렸다고 했다고요?”

 “예. 그분이 이제, 자기는 모르는 일이다 라고 말씀하셨고요.”

 “...” 그가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일단 피해 사실이 있으시니까, 파출소에 오셔서 소를 제기하시면 그때부터는 이제 저희가 수사를 시작하거든요? 근데 이건 피해자분께서 원하시면 그렇게 하시면 되시고.”

 “...”

 “여보세요?”

 전화는 이미 끊긴 뒤였다.


 그가 파출소에 방문한 건 네시 무렵이었다. 며칠 전 만났던 때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밝은 조명 아래에서 그의 얼굴은 초췌하고, 창백했다. 이목구비는 크고 또렷했고, 광대가 튀어나왔다. 깡말랐지만, 큰 키와 날카로운 인상 때문에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경위님의 도움을 받아, 그는 소장을 작성하고 돌아갔다. 그의 거주지는 서울이었으며, 나이는 삼십 대 중반에 무직이었다. 잠시 여행을 떠나왔다가 순간의 부주의로 일정을 망쳐버린 걸까? 두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이었기에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시 CCTV였다. 나와 경위님은 그 샛길 옆 카페로 향했다. 아르바이트 직원의 연락을 받고 카페 사장이 나왔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에요.”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카페 손님뿐만 아니라 여기 펜션 이용하시는 분들도 몇 번이나 물릴 뻔했다니깐요. 예전에도 어떤 분이 물리셔서 경찰도 왔다 가고 그랬어요.” 휴대전화로 녹화된 영상을 찾으며 그녀가 말했다. 어째선지 조금 신이 난 듯했다. 

 “저기 사시는 분하고는 무슨 관계세요?” 내가 물었다.

 “아주 웬수 사이예요. 저 사람 때문에 저희가 피해를 얼마나 많이 보는데요.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카페 장사도 안되고. 심지어 저 부지가 저희 거라니까요? 불법으로 점유해서 살고 있는 거예요. 저희가 항의라도 하면, 해코지당할까 봐.” 그녀가 순간 목소리를 낮췄다. “에휴, 뭐 어떻게 할 수도 없어요. 다섯 시 삼십 분쯤이라고 하셨죠? 아, 여기네요.” 그녀가 휴대전화를 건넸다.

 화면에서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구도였다. 버스가 화면 아래 절반을 가리고 있었다. 이래서는 개가 무는 장면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화면의 위쪽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봉고차 한 대가 카페를 지나 트레일러 쪽으로 들어섰다. 집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와 운전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윽고, 주인이 차 짐칸을 열고 무언가 꺼내 내려놓았다. 커다란 케이지였는데, 내용물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한 손에 하나씩, 짐칸에서 작은 덩어리들을 집어 케이지에 넣었다. 작업이 끝나자, 봉고차는 떠나고 주인은 그 케이지를 어딘가로 옮겼다. 그때, 누군가 아래쪽에서 뛰쳐나왔다. “저기 저 사람이네.” 경위님이 말했다. 피해자였다. 그를 쫓아 하얀 개가 달려들었다. 카페 여사장이 어머, 어머 하는 소리를 냈다. 화면 속의 그가 간신히 몸을 피했다. 사라졌던 주인이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의 말대로, 주인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남자는 절뚝거리며 화면 밖으로 나갔다. 물리는 장면은커녕, 그를 물었다는 주황색 개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교묘하게 카메라의 촬영을 방해하고 있었다. 

 “저 뒤에서 물리신 거예요? 어떻게 해. 물리는 건 안 보이네.” 여자가 앞에서 끼어들었다.

 “혹시, 저쪽을 찍고 있는 다른 CCTV는 없나요?”

 “없죠. 굳이 찍을 필요가 없으니까요.”“일단 이 영상 좀 보내 주시겠어요?”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물론 이 영상이 증거가 되기는 어려웠다. 정황상 신고자의 진술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지만, 개 주인이 부인할 경우 입증할 방법이 없었다. 증거불충분에 의한 무혐의였다. 그녀가 영상을 보내는 동안, 나는 밖으로 나와 트레일러로 향했다. 인기척을 느낀 개들이 짖기 시작했다. 주인의 모습은 오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샛길을 비추는 다른 CCTV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크게 돌아 샛길 반대편 입구로 향했다. 관광객들이 오가는 트레킹 코스였다. 엄밀히 말해서, 관광객이라면 굳이 코스를 벗어나 그 샛길로 들어설 이유가 없었다. 어느새 튀어나온 주황색 개가 버스 앞에서 으르렁댔다. 남자를 문 개였다. 개 근처에 돼지 등뼈가 나뒹굴었다. 나는 개에게 물리고 카페 쪽으로 뛰어 달아나는 남자를 상상했다. 그 남자는 개가 있는지 모르고 들어갔고, 개집에 있던 저 개가 튀어나오며 침입자의 뒤를 물었을 것이다. 어찌 됐든, 그 남자의 입장에서는 운이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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