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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Oct 22. 2023

개 같은 사람들 #2

제주 기담집1

 

 나는 놀라서 펄쩍 뒤로 물러섰다. 하얀색 개였다. 소형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개는 달려들 기세로 사납게 짖기 시작했다. 동시에 트레일러 사방에서 개들이 튀어나왔다. 크기와 품종이 모두 다른 네 마리, 아니 다섯 마리의 개였다.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하얀 개는 목줄이 팽팽하게 당겨지자 두 발로 서서 으르렁거렸다. 침을 흘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이 씨, 개들이 왜 이렇게 사나워.” 경위님이 말했다. 그는 멀찌감치 떨어져 뒷짐을 지고 있었다.

 “저 개 같은데.”

 남자가 고물 버스 옆에서 짖고 있는 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둠에 눈이 적응돼 어느 정도 식별할 수 있었는데, 시바 잡종 같았다. 주황색에, 성인 남성의 무릎 정도 돼 보이는 키였다. 나는 그 개의 사진을 찍기 위해 다가갔다. 하얀 개가 맹렬하게 짖으며 다시 달려들었다. 겁을 주기 위해 위협적인 몸짓을 해봤지만, 오히려 녀석을 흥분시킬 뿐이었다. 멀리서 줌을 해서 주황색 개를 찍어야만 했다. 화질이 썩 좋지 않았다.

 “확실해요?” 개 짖는 소리 때문에 경위님이 언성을 높였다.

 내가 돌아왔을 때, 그 남자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 개 물림 사건은요, 물었던 개랑 그 개 주인을 확인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걸 확실하게 해 주셔야 해요.” 경위님의 말투에서 미묘한 짜증이 느껴졌다. 언젠가는 그 태도 때문에 징계를 받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 개가 맞다고 하셨고, 그러면은, 언제쯤 물리신 거예요?” 경위님이 재차 질문했다. 개들은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한… 두 시간 정도.” 

 “예? 두 시간 전이요? 근데 왜 이제 신고하신 겁니까?” 나는 둘의 대화를 들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두 시간 전이면 다섯 시 삼십 분경이었다. 그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신고가 늦어지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처음 사고를 겪으면 사람들은 으레 당황하기 마련이다. 경찰과 마주친 경험이 없었던 사람들은 오히려 신고를 꺼리기도 한다. 

 “개에 물린 건 다섯 시 반쯤이었고, 신고는 지금 일곱 시쯤 하셨고.” 경위님이 수첩에 뭔가 끄적였다.

 “혹시 개에 물릴 때, 개 주인분이 있었나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 분이 있었는데, 개 주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있었다고요? 주인은 아니고요?” 경위님이 다시 끼어들었다.

 “주인… 인 것 같기도 하고.”

 “그 사람 뭐 기억나는 거 있어요? 인상착의라든가.” 

 “키는 한…백칠십 정도 돼 보였고, 나이는 오십 대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개에 물리실 때, 그분이 보고 계셨다는 거죠?” 내가 물었다.

 “네.”

 “그런데 아무 조치도, 안 했어요? 그분이?”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허허, 사람이 물렸는데.” 경위님이 혀를 차며 말했다.

 “아니, 자기 개가 사람을 물었는데 괜찮은지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안될 사람이네 이거.”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트레일러 창문 너머 희미한 불빛이 일렁였다. 문을 두드려 볼 요량으로 다가갔다. 그때, 하얀 개가 다시 달려들었다. 쇠사슬로 만든 목줄로 묶여 있었으나, 그 길이가 족히 5미터는 돼 보였다. 그 개를 피해서 트레일러에 다가갈 방법은 없었다. 

 “저기요! 경찰입니다! 안에 계세요?”

몇 번을 반복해서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개들만 더 요란하게 짖을 뿐이었다. 자세히 보니, 개들은 트레일러로 향하는 길목마다 묶여있었다. 목줄이 길어 활동 반경도 넓었다. 개와 마주치지 않고는 트레일러에 출입하기 불가능한 구조였다. 철저하게 외부 출입을 차단하는 용도로 배치해 둔 셈이었다. 말 그대로 ‘경비견’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남자를 문 개는 자기 소임을 다한 셈이었다.

 “그분이 지금은 안 계신 것 같은데요.” 경위님과 남자에게 돌아오며 내가 말했다. 

 “일단은, 저희가 서에 가서, 여기 거주하시는 분 연락처를 찾아서 연락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 지금은 딱히 뭐 할 수 있는 게 없고. 개가 예방접종이 됐는지 확인이 안 되니까, 내일은 병원에 가보시고요. 여기에 신고자분 성함이랑 전화번호 좀 적으세요.” 경위님이 피해자의 인적 사항을 기록하는 동안 나는 현장을 둘러보았다. 카페 건물 기둥 중 하나에 샛길을 찍고 있는 CCTV가 있었다. 일이 수월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개 있는 데를 왜 들어간 거야?” 파출소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경위님이 말을 꺼냈다.

 “글쎄요. 개를 못 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개들이 그렇게 짖어 대는데 가까이 가면 안 되지. 그 개집 옆에 개 조심이라고 크게 적어놨더만.”

 “아 그래요? 저는 못 봤었습니다.” 경위님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는 순간이다. 예컨대, 경험에서 비롯된 노하우나 날카로운 관찰력 따위가 쓱, 하고 튀어나올 때이다. 그는 분명 ‘모범 경찰’은 아니었다. 욕설을 섞는 말투는 무식했고 이따금 던지는 농담은 저급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에게 경찰이라는 직업의식 따위는 없었다. 경위님에게 사건은 단지 처리해야 할 업무이고,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그런데 신고는 왜 늦게 했을까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내가 물었다.

 “뭐,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가, 합의금이라도 챙기고 싶어졌나 보지.” 경위님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당신 같지는 않다고, 머릿속으로 생각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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