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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Oct 22. 2023

개 같은 사람들 #1

제주 기담집1

 

 해 질 녘이었다. 나는 차량 간 접촉 사고 현장에 있었다. 운전미숙에 의한 가벼운 추돌이었으므로, 피해 사항 조사 외에는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었다. 같이 출동한 경위님이 사건을 마무리하는 동안, 무전이 울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개 물림 신고가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제주도의 조그마한 동네에서는 대부분 개를 마당에서 키웠고, 개 물림 사고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 개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역할-방범-을 수행했다. 그래서 사나웠다. 도시에서 놀러 온 천진난만한 여행객들이 호의를 가지고 접근했다가, 혹은 길을 잘못 들었다가 물리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들개에게 물리는 사고도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들개를 본 적은 없었다. 내 근무지는 시내에 인접한 해안가 동네이기 때문이었다. 녀석들은 주로 인적이 드문 산간지방에서 모여 살았다. 가끔 서에 들리면, 들개를 만나본 동료들이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고는 했다. 웃어넘겼지만, 개중 몇몇은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십몇 년쯤 전부터, 유기견이 급증했다는 말을 들었다. 일부는 버려진 채로 죽었고, 일부는 동네의 떠돌이 개가 되었다. 나머지는 들개가 되어 고양이, 꿩, 심지어는 노루 같은 야생동물을 사냥했다. 그 들개들이 무리를 이루고, 새끼를 낳으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 사람 손을 전혀 타지 않은 개체들은 더 사납고 공격적이기 때문이었다. 대담해진 녀석들은 축사에서 기르는 닭, 송아지, 망아지 따위를 잡아먹거나, 사람과 산책에 나선 소형견을 덮치기도 했다. 사람에게 길들었던 동물이, 버림받은 뒤에는 다시 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개새끼들이 왜 자꾸 사람을 무는 거야.” 

 현장으로 향하는 도중 경위님이 볼멘소리를 했다. 내가 그와 같이 근무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는 언제나 불평불만을 달고 사는 것 같았다. 그럴 거라면 왜 경찰을 직업으로 삼았는지 궁금했다.

 “뭐, 현장에 가 봐야 좀 알 것 같습니다.”

 “이 개들을 너무 오냐오냐하면서 키우니까 그래.” 그에게 내 말은 안중에도 없었다. “요즘에는 유모차에 죄다 개새끼들만 타고 다니잖아. 사람들이 애는 안 낳고 개나 키운다니까. 사람 자는 곳에서 같이 자질 않나, 사람인 것처럼 옷을 입히질 않나. 그런데 얘네가 주종관계가 확실한 동물이거든. 자기보다 급이 낮다고 생각하면 그냥 물어 버리는 거야.” 

 “아, 그렇습니까.” 나는 주종관계와 낯선 사람을 무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따지지 않았다. 대신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세 살배기 리트리버를 떠올렸다. 감자를 구워 먹을 때 넙죽넙죽 받아먹길래 이름도 감자라고 지었다. 감자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사실 돼지고기였다. 그러나 개한테 돼지라고 부르기는 적잖이 오해의 소지가 있었기에, 녀석은 감자가 됐다.


 감자는 업무차 자주 방문했던 동물보호소에서 만났다. 그곳에서는 주로 유기견을 관리했다. 운동장만 한 창고 건물에 녹색 철창 케이지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빈자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의 개는 내가 지나갈 때 짖거나 서서 꼬리를 흔들었다. 자기 꼬리를 따라 돌거나, 만져달라는 듯 배를 드러내는 녀석도 있었다. 자신을 버린 주인이 좋아했던 애교였을 것이다. 그 모든 소란에도 구석에 웅크린 채, 미동도 하지 않는 녀석이 눈에 띄었다. “다음 주까지 입양이 안 되면 안락사하는 수밖에 없어요.” 보호소 직원이 황갈색 털 뭉치를 보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나는 그녀의 차가운 태도에 섬찟했다. 돌이켜 보면, 달마다 몇 번씩 안락사가 행해지는 곳에서, 동물들에게 정을 주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자는 유기견이었다. 보호소에서 재입양이 되었지만, 다시 파양된 상태였다. 산책 중에 다른 개를 물었다고 했다. 리트리버는 일반적으로 순한 견종이라고 생각했기에 의외였다. 마치 불치병을 진단받은 환자처럼, 늘어져 있는 녀석의 모습이 처연했다. 다만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녀석은 자신에게 닥칠 쓸쓸한 운명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임시 보호라도 할 요량으로 집에 데려왔다.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처음 제주도에 들어와 경찰 일을 시작했을 때, 떠돌이 개 신고가 많아서 놀랐었다. 간혹 개를 풀어놨다가 잃어버리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유기견이에요. 보호소 직원이 말했다. 실제로도 섬 곳곳, 이곳에 개를 버리지 말라는 현수막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섬까지 건너와서 개를 버릴 필요가 있었을까. 개들은 버려져도 냄새를 좇아 집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혹시라도 개가 집에 다시 돌아올까 싶어 바다를 건너 버리고 가는 것일까. 나는 희미하게 풍기는 냄새를 좇아, 코를 하늘로 치켜들고, 바다를 건너는 개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경찰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마주하는 일이 많았고, 이 역시 그중 하나였다. 

 “개 팔자가 사람 팔자보다 났다니까. 가족이다, 뭐다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면서 무슨 상전이 따로 없어.”

 경위님이 몇 마디 더 구시렁댔다. 마음 같아서는 시끄러운 노래를 틀어버리고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말이 없다 싶더니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경위님이 가로로 든 휴대전화에는 화려한 특수효과와 숫자가 난무하며 괴물들이 죽어 나갔다. 나는 침묵에 감사하며, 운전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내비게이션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길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러나 내게는 익숙한 동네였는데, 멀지 않은 곳에 내가 사는 오피스텔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다니며 이 근처에 카페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빨갛게 타들어 가던 노을이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저 분인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3층 규모 카페 앞에 서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카페 옆에는 야외 수영장이 있었는데, 크기가 작은 어린이용이었다. 그 옆에 주차장이 있었고, 주차장 옆에 똑같이 생긴 펜션이 몇 채 있었다. 펜션 방문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카페인 것 같았다. 나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경위님과 함께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키가 180cm는 넘어 보이는 남자로, 그림자에 가려 반만 보이는 얼굴은 수척했다. 나이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아무렇게나 기른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왔고,  턱과 코 밑에 듬성듬성 수염이 나 있었다. 눈 주변이 움푹 파여 있었는데, 눈알은 커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색이 바랜 청록색 점퍼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신고자분이시죠?” 내가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퀴퀴한 담배 냄새가 났다.

 “네.”

 “개에 물리셨다고요? 괜찮으신가요?”

 “큰 상처는 아닌데요.” 그가 무표정으로 말했다.

 “다행이네요. 병원에 안 가보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오늘은 괜찮을 것 같고, 내일쯤...”

 “저 신고자분, 상처를 한 번 봅시다.” 경위님이 끼어들었다. 그 남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짜고짜 바지를 벗어 내렸다. 그의 얇은 다리와 트렁크형 속옷이 드러났다. 다리엔 털이 아주 많았는데, 피부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가 뒤로 돌자, 왼쪽 무릎 뒤편에 선명한 상처가 보였다. 마치 인감도장을 찍은 것처럼 위쪽에 두 개, 아래쪽에 두 개의 빨간색 점이 나란히 있었다. 상처 근처가 살짝 부어오른 듯했다.

 “어휴, 세게 물리셨네요.”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며 말했다. 

 “증거를 남겨야 하니까, 사진을 좀 찍도록 하겠습니다.” 

 “그, 어디에서 어쩌다가 물리신 거예요?” 경위님이 수첩을 꺼내 들며 물었다.

 “저 길에서 이쪽으로 걸어오다가 물렸습니다.” 바지를 올려 입은 뒤, 그는 손가락으로 카페 옆 좁은 샛길을 가리켰다. 가로등이 없어서 길은 어둡고 으스스했다. 오직 카페에서 나오는 따뜻한 불빛이, 길의 언저리를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것 같은 좁은 길이었다. 길의 끝에는 대형 버스가 한 대 서 있었는데, 멀리서 봐도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고물이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었고, 앞 유리에는 커다랗게 ‘스카이다이빙 시범단’이라고 적혀 있었다. 샛길의 오른편에는 커다란 트레일러가 세 대 있었다. 캠핑카 뒤에 다는 트레일러 같았는데, 길이는 너비 7m, 높이 2.5m쯤 돼 보였다. 트레일러 앞에는 빨래가 널려 있었고, 수도꼭지와 물이 담긴 대야가 있었다. 크고 긴 전기선들이 바닥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는데, 몇 개는 발전기처럼 보이는 큰 기계로 향했다. 그 옆에는 가스통이 호스를 통해 트레일러 안으로 연결돼 있었다. 사람이 사는 간이 집 같았다. 마당이라고 부를 법한 공간에는 각종 잡동사니가 있었다. 거대한 수족관 안에는 작은 수족관들이 들어있는데, 모두 깨진 것들이었다. 개를 가둬 두는 철제 케이지가 몇 개 있었는데, 전부 비어 있었다. 구석에는 소형 보트도 한 대 있었다. 역시 낡고 고장 난 것이었다. 이외에도 온전하지 않은 플라스틱 의자들, 정체 모를 끈들, 나무 장작 등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왜 저 길로 오신 거예요?” 경위님이 물었을 때 나는 그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경위님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추궁하는 말투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저 길 뒤쪽 트레킹 코스를 걷다가, 카페를 보고 잠깐 쉬려고 오는 길이었습니다.”“저 길에서 이쪽으로 오셨다고요?” 혹시 어떤 개가 물었는지 기억하세요?” 나는 샛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며 물었다. 그때였다. 쇠사슬이 끌리는 소리가 나더니 별안간 어둠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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