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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Oct 22. 2023

신비의 도로 #6

제주 기담집1

P.s

 아주머니와 헤어지기 전 뻔한 질문을 던졌어. 자전거를 왜 타냐고.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냐고. 고민도 하지 않고, 그녀는 말했어. 물론 위험하다고. 주변에서 크게 다친 사람도 있었다고. 그런데도 자전거를 타러 나올 수밖에 없대. 자전거를 타기 전 자기는 골방에 드러누워 후회나 하며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대. 스스로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일들에 가슴 아파하면서. 어느 날 티비에서 자전거 종주를 하는 사람을 보고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대.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였지만 그녀는 정말 진지했어. 처음에는 많이 넘어지고 멀리 가지도 못했대. 그런데 첫 번째 종주를 마치고, 앞으로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대.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자신감 말이야. 결국 우울했던 그 시간은 그녀 스스로가 만들었다는 거야. 행복과 불행을 그렇게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전거 타는 걸 멈출 수 없었대. 정아. 세상에는 저렇게 멋지게 나이 드는 사람도 있어.

 누군가 자전거는 인생과 같다는 진부한 말을 해도 나는 끄덕일 수 있을 것 같아. 우리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계속 나아가야 해. 오르막길이 있었다면 분명 내리막길이 나올 거야. 늘 안전하고 무사하게. 지금의 여정이 끝나면 더 긴 레이스를 달려야 하니까.

 언제 또 편지 쓸지 모르겠어. 그렇다고 해서 내가 널 잊어버린 건 분명 아닐 거야. 언제 다시 이 섬에 올지도 모르겠어. 만약 온다면 서핑을 배워보려 해.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를 기다리는, 무용한 시간이 때때로 필요하니까. 어쩌면 나는 그냥 보드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서 바다에 떠 있기만 할지도 몰라. 그때까지 잘 지내. 

 사랑과 용기를 담아, 너의 친구가.


 몇 달이 지나고 다시 섬에 왔다. 시간을 내서 찾아갔지만 그 카페를 찾을 수 없었다. 분명 카페가 있었던 자리였는데, 건물조차 찾을 수 없었다. 아니, 그 카페가 있었다고 느껴지는 그 장소 자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카페는 분명 ‘그곳’에 존재한다. 내가 인식할 수 없을 뿐이었다. 적외선이나 미립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자신이 분명히 했던 행동이 부정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잠근 줄 알았던 열린 가스 밸브나 분명 먹었는데 양이 줄지 않은 영양제 같은 경우 말이다. 이건 착각이나 깜빡함과는 다르다. 분명히 ‘기억’은 있다. 누군가 내 기억에 장난을 쳤거나 가스 밸브를 몰래 열고 영양제를 채워 놓은 것이다. 세탁소는 그대로였다. 그렇다고 카페에 관해 물어보며 들쑤시고 다닐 수는 없었다. 내 범죄를 자수하는 것과 다름없을 테니까. 며칠을 고민한 뒤, 나는 여행객 행세(나름의 변장이었다)를 하고 다시 그 카페를 찾아 나섰지만 역시 소용없었다. 그 다음번에도. 마치 입국이 거부된 범죄자가 된 기분이었다. 서퍼들의 소행일까? 알 수 없었다. 어째선지 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의 고글 뒤 눈동자가 나를 따라다니는 것만 같다. 당신들 역시 그 카페를 찾을 수 없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편지를 읽은 이상 이미 공범이 된 셈이니까. 그 아인슈페너를 다시 마실 수 없는 건 조금은 아쉬운 일이었다. 언제까지나 그 일에 매달릴 수는 없으므로, 나는 그 편지를 끼워 놓을 만한 적당한 카페의 적당한 책을 찾는 중이다. 아니다. 직접 그 신비의 도로에 가서 ‘정’에게 편지를 전해주는 편이 오해를 풀기에는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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