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의 에세이 톺아보기
친애하는 독자분들께서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 궁금하다. 언젠가 좋은 기회가 된다면,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다면 정말 흥미로울 것 같다. 각설하고, 내가 두 개의 에세이를 읽고 내린 결론은, '구별하기 너무 쉽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엄마'는 '세이'가 '엄마의 냄새'는 내가 썼다.
아마도 이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독자분들이 많다고 짐작된다. 물론,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해서 틀린 건 아니다. 앞서 보았듯이, '세이'는 정말 사람처럼 글을 쓰기 때문이다. '세이'가 쓴 '엄마'는 탄탄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엄마는 언제나 나를 안심시켰다."는 첫 문장부터, "지금은 내가 엄마의 힘이 되어야 한다."는 결말까지. 마치 한 편의 성장 드라마와 같다. 어렸을 때는 몰랐던 사실을, 나이가 들며 깨닫는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엄마의 눈가에는 주름이 잡혔다.
굳이 아쉬운 부분을 꼽자면, 결말이 조금 성급한 느낌이 있다. "이제는 내가 엄마를 지켜줄 차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가 다소 뜬금없이 느껴진다. 자신이 겪은 일화(사건)를 덧붙여서, 그러한 생각이 들었던 이유를 자연스럽게 납득시켰다면 어땠을까 싶다. 물론,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 누군가는 크게 개의치 않는 부분일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잘 짜인, 크게 모난 곳 없이 무난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기대었다', '앞길을 밝혀주었다', '넘어지지 않기를 바랐다'와 같은 표현이 주는 따뜻한 느낌이 글 전체에 통일감을 준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깨달음을 통한 변화도 있다. "지금은 내가 엄마의 힘이 되어야 한다." '엄마'와 '나'의 관계가 뒤바뀐다. 우리가 경험했거나, 경험 중이거나, 경험할 순간이다.
"마치 작은 등불처럼"이나, "엄마의 모습이 점점 더 크게 다가왔다.", "주름에 담긴 무게" 같은 표현들도 좋았다. '등불'은 상투적인 표현일 수 있으나, 비유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기특했고, "엄마의 모습이 점점 더 크게" 다가오는 장면은, 뒤에 "결코 쉽지 않았을 그 순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라는 문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좋았다. 점점 더 커졌다는 말은, 더 가까워졌다는 말과도 같다. 가까워져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엄마의 눈가에 보이는 작은 주름"이다.
내가 가장 공감했던 문장은, "엄마는 항상 나를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면서까지도 나를 지켜주었다는 사실을."이었다. 내 에세이를 쓰며 떠올랐던 생각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주제를 곱씹었을 때, 내게 '엄마'는 나를 위해서라면 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해주는 존재였다. 대충 때우려 했던 끼니를 정성 들여 차려주시고, 비싸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좋은 품질의 물건을 구매하신다. 어렸을 때는 유난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 떠올려보면 정성이었고, 그 정성을 위해서 무언가를 포기했을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우리가 '엄마'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희생'이나 '헌신', 그리고 '뒤늦은 깨달음' 같은 키워드들을 공유하는 이유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