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살것인가
2024년이 100일이 남았던 그날, 남편과 TV를 보고 있는데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남편 / "한국 가면 가전 다 새로 살 거야?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전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나/ "나는 웬만하면 가전은 다 여기서 처분하려고. 컨테이너 이사로 가전이 왔다 갔다 두 번 하면 가전도 많이 상해."
남편 / "세탁기는 일체형 보다 분리형이 더 났다고 하던데, 일체형이 설치하기가 그렇게 힘들데"
나/ "세탁기는 일체형 살 생각은 없어. 그리고 냉장고 용량은 지금보다 줄여서 사고 싶어. 우리는 냉동식품도 잘 먹지 않아서 냉동고가 크게 필요가 없고, 냉장고 용량이 크면 상한 음식만 계속 나오고..."
남편/ "침대는 어떻게 하지?"
나/ "한 번에 돈 들어갈 곳이 많으니까 당분간은 토퍼만 깔고 자는 건 어때? 난 식기세척기는 꼭 샀으면 좋겠어. 로봇청소기도... 요즘에는 음식물 건조기계도 많이 쓰더라?"
그러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유투버들이 올려둔 여러 가지 가전비교, 침대추천 등 우리가 주고받았던 대화 내용과 관련된 여러 영상들을 봤다.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신혼가구들은 많이 처분한 상태다. 신혼 때 장만한 가구 중 가지고 온 것은 서랍장, 책상, 책장, 정도이다. 남편과 나는 가지고 갈 가전, 가구와 새로 살 것들에 대해 의견이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TV는 사지 않는다'는 하나로 의견이 모아졌다. 워낙 남편과 나는 아이들 미디어 제한을 두기도 하고 TV를 계속 틀어 두지도 않기 때문이다. 신혼 때 샀던 40인치 TV가 고장 나지 않고 여전히 제 역할을 잘하고 있어서 이것을 계속 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소파를 사고 싶지 않다. 거실에는 테이블과 쉴 수 있는 1인용 카우치를 두 개 정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는 정말 필요할 때까지 구매하지 않기로 했다. 요즘 공유차량들도 많고 이곳에 오기 전 우리는 차를 주말에만 썼고 주말에도 주차와 차 막힘 때문에 아이들 유모차 끌고 대중교통으로 많이 이동하고 다녔다.
약 4년간의 이곳 생활에서 물건이 줄기는커녕 더 늘어난 기분이 든다. 이곳에 올 때 사 왔던 여러 물건들 중 여전히 새것인 상태인 것들도 있다. 12월이 될지 1월이 될지 모르는 이삿짐을 꾸릴 때 어떤 것을 비우고 가지고 갈지 여전히 모르겠다. 사실 아직 귀국이 피부로 와닿지 않아서, 혹은 이곳을 당장은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이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회사에서 해주는 집, 학교 지원 덕에 4년간 집과 학비 걱정이 없었는데 이제 한국에 가면 '사교육'과 대출금 상환에 이자를 매달 내야 하는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에 비하면 외식, 여행, 식자재 비용부담이 적어서 여유를 부리던 이곳의 삶에서 한국으로 가면 금전적으로 확 조여질 상황이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자금에 맞추느라 애정 없는 물건을 사서 집안을 채우고 싶지 않다. 다시 주재원에 나가지 않는 이상 이번에 살림살이들을 다시 사면 정말 오래도록 쓸 물건들이기 때문에 선택과 구매에 신중하고 싶다.
새로운 나라로 이주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내가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니 막연한 두려움은 없다. 오히려 이곳을 떠나 귀국하면 이곳의 시간은 이제는 다시없을 시간이기에 나는 한국에서 이곳의 생활과 시간을 많이 그리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