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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미숙 Jun 14. 2020

증춘 아저씨

 우리 ‘물골안’ 동네에 ‘증춘’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정확한 이름은 정춘이가 맞을 것이다.

얘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증춘이’라고 불렀다.

증춘 아저씨는 항상 웃고 다녔다.

화내거나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증춘 아저씨가 유독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계신 곳에는 언제나 증춘 아저씨가 있었다.

나무하러 갈 때도, 모내기할 때도, 추수할 때도, 장터에 갈 때도

언제나 아버지랑 같이 다녔다.


증춘 아저씨는 전쟁 통에 살아남은 아버지 형수님(나의 큰 어머니)의 유일한 피붙이 동생이었다. 

아버지랑 동갑내기로 형님네 집에서 같이 자랐다.

아버지는 형제처럼 살뜰히 증춘 아저씨를 챙겼다. 


증춘 아저씨는 늦도록 장가를 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증춘 아저씨가 장가를 갔다.

변변한 혼례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각시는 어디인지는 알 수 없으나 딴 동네의 말을 못 하는 처자였다.

큰 어머니는 큰 집 아래 도랑 건너편에 오두막 같은 작은 집을 지어 신접 살림을 차려주었다. 

각시는 큰 어머니의 도움으로 살림을 꾸려 나갔다.


아기도 가졌다.

큰 어머니는 아기를 가진 올케에게 일일이 손짓으로 아기 낳는 법을 가르쳤다.

드디어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나는 어머니를 따라 아기를 보러 갔다.

아이 아빠가 금줄을 다는 풍습이 있지만, 대문도 금줄도 없었다.

놀랍게도 아기가 둘이었다. 쌍둥이였던 것이다. 진짜 작은 아기였다.

젖이 모자라 큰 어머니가 암죽을 쑤어서 먹이고 있었다.


큰 어머니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아기를 뒷간(화장실)에서 낳았다고 한다.

갑자기 뒤가 마려워 뒷간에 갔다가 아기가 나오는 바람에 괴성을 냅다 질렀다고 한다.

증춘 아저씨는 나무하러 가고 없었고,

큰 어머니가 소리를 듣고 뒷간에 가보니 아기를 낳고 있었다는 것이다.

얼른 아기를 군용 담요에 싸가지고 산모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와 조치를 취했는데,

잠시 후 또 뒤가 마렵다고 하는 순간 또 한 명의 아기가 나왔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기들은 아주 짧은 생을 살았다.

그 후...

아기들을 떠나보낸 아기 엄마도 오두막을 떠났다.

 그때부터 증춘 아저씨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웃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술에 취해 울면서 온 동네를 다니며 땡깡을 부렸다.

그러더니 엄동설한에 각시를 찾는다고 집을 나섰다.

그 뒤로 감감무소식이었다. 


아버지의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지?

밥이나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동지섣달 혹한에 혹시 어찌 되지나 않았는지?...


틈만 나면 아버지는 증춘 아저씨를 찾아 나섰다.

동네마다, 장터마다, 차부마다 사방팔방 찾으러 다녔지만 허탕이었다.

우리가 서울로 이사를 올 때까지도 아버지는 증춘 아저씨를 찾지 못했다.     


나는...

담배 한 개비 물고 한 숨 쉬듯 내뱉는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아버지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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