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강아지 또리가 들어온 날부터 강아지 산책이 소소한 일상이 되었다. 추운 겨울날은 귀찮기도 하다. 견종이 보더콜리인 또리는 하루 종일 산책만 기다린다. 하는 수없이 영하 10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잔뜩 껴입고 딸내미와 동네 한 바퀴 돈다.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부는 날이면 우리 아파트 옆길 대로변은 골바람이 불어와 더 추웠다.
어릴 적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나의 고향은 눈이 많이 오는 산골마을이었다. 겨울이 되면 아버지가 때는 군불로 따뜻하게 데워진 아랫목에서 나와 학교에 가는 게 정말 고역이었다. 온갖 학교 가지 않을 꾀를 내었다. 고무신이 찢어져서 학교에 갈 수 없다고 한 적도 있다.
내 신발은 사계절 내내 여자아이들이 신는 코 고무신이었다. 봄여름 가을에는 별 탈 없었지만 겨울에는 고무가 얼어 늘어나지 않는 데다가 여러 겹 껴 신은 양말 때문에 코가 쉽게 찢어졌다. 학교에 가기 싫었던 나는 찢어질락 말락 하는 고무신을 이내 찢어버렸다.
식전 댓바람부터 난리가 났다. 아버지는 왜 진작 신발을 사주지 않았느냐며 어머니를 나무랐고, 어머니는 조신하지 못한 딸년이 고무신도 아껴 신지 못한다고 야단을 쳤다. 공부 잘하고 모범생이었던 오빠는 여동생을 챙겨 등교해야 하는데 혼자 가겠다고 징징거렸다. 나는 이불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보며 뭐 뾰족한 수가 있겠나 하고 꼼짝 않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아버지 신발을 신기더니 손을 끌고 동구 밖으로 달려 내려갔다. 아직 열지도 않은 구멍가게 문을 두드렸다. 그 가게는 많지는 않지만 없는 게 없는 잡화점이었다. 어머니는 식전부터 미안한데 신발 좀 사러 왔다고 사정을 했다. 가게 아줌마가 신경질을 내며 미닫이문을 드르르 열고는 상품의 구비 상태를 말했다. 여자 고무신은 없고 털신은 있다고, 고무 신발 둘레에 털이 있었기 때문에 털신이었다. 나는 이참에 겨울이니까 털신을 사주겠지 하는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간 어머니는 털신 한 켤레와 검정 남자 고무신을 한 켤레를 발견했다. 어머니는 두말 않고 남자 고무신을 샀다.
정말 학교 가기 싫은 날, 나는 남자 고무신을 신고 눈 쌓인 학교 길을 터벅터벅 걸어갔다. 청소당번이었던 나는 청소가 거의 끝나갈 무렵 복도 신발장에 있던 나의 남자 고무신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선생님한테 말해봐야 없어진 신발을 어찌하겠는가? 양말을 많이 신고 오긴 했지만 맨발로야 어찌 10여 리가 넘는 눈길을 걷겠는가?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있던 나에게 우리 분단 아이가 옆 반 남자 애가 내 고무신을 신고 막 교문 밖을 나가고 있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맨발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냅다 달려 나가 소중한 나의 남자 고무신을 무력으로 빼앗았다. 그 아이 신발도 누군가가 훔쳐 신고 가버렸던 것이다. 그 애는 우리 동네보다 더 깊은 산골인 ‘불당골’에 사는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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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 날리는 겨울날이면, 학교 앞길 눈 덮인 언덕배기를 맨발로 울면서 달려 넘어가던 그 아이의 뒷모습이 짠하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