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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미숙 Jun 07. 2020

원기소

元気(げんき=겐키)+素

   

나이가 들수록 챙겨 먹는 영양제도 많다. 한꺼번에 먹으면 소화에 무리가 갈 정도다. 몸에 좋다는 광고나 누군가의 말이 귀에 들어오면 귀가 얇아진다. 그렇게 많은 영양제를 챙겨 먹으면서도 어릴 적 맛봤던 첫 영양제만 못하다는 생각이 나의 지론이다.


내 인생에 있어서 먹어본 첫 영양제는 ‘원기소’다. 원기소는 전쟁 후 베이비 세대들이 어릴 때 먹었던 어린이 영양제였다. 위키백과를 보니, 1956년부터 생산된 대한민국의 대표 영양제로, 1955년 말 해방 10주년 기념 산업박람회에 출품되어 처음 선을 보였고, 그러다가 1956년부터 본격 생산 시판되었다고 한다. 뜻 모를 영어식 표현의 영양제가 넘쳐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원기소라는 영양제 이름은 촌스럽게 느껴진다. ‘원기소’라는 이름은 일본식 표현이다. ‘원기'는 일본어로 ‘元気(げんき=겐키)’다. ‘소(素)’는 ‘본디’, ‘바탕’, ‘성질’이라는 뜻이 있다. 요컨대 건강의 기초를 다진다는 뜻인 듯싶다.


제법 큰 하얀 통에 ‘원기소’라고 빨간 글씨로 눈에 띄게 크게 쓰여 있었고, 그 안에 누렇고 동그란 원기소가 가득 들어 있었다. 뚜껑을 여는 순간 풍겨 나오는 구수한 냄새가 입을 유혹한다. 나는 구수한 냄새의 실체에 대해 오랫동안 궁금해했다. 한참 뒤 원기소의 주성분이 구수한 맛을 내는 보리 곡류의 효소분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보리 분말에 황국균을 섞어 발효시킨 후 아밀라아제와 프로테아제를 함유시켜 소화 촉진 성분을 만들었던 것이다. 영양제라기보다는 소화 촉진에 좋은 성분이었던 거다. 어린들이 원기소를 먹고 소화가 잘되니 잘 먹을 것이고, 잘 먹으니 잘 자랄 것이고, 그럭저럭 아이들에게 좋은 그야말로 원기+소였던 거다. 


 60년대에 아이 엄마들은 경쟁적으로 자기 자식에게 원기소를 먹였다. 시골 촌구석까지 원기소가 보급될 정도라면 원기소의 인기를 가름할만하지 않은가? 가난한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엄마는 시골 동네를 돌며 물건을 파는 방물장수 아줌마한테 원기소를 샀다. 그 아줌마는 날이 추우나 더우나 주기적으로 우리 동네로 들어왔다. 누런 광목 보자기로 싼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다녔다. 여름날이면 땡볕으로 그을린 얼굴을 하고 땀이 흠뻑 젖은 채로, 물 한 바가지 얻어 마시는 첫 집이 방물 박람회장이 되기도 한다. 눈 오고 바람 부는 겨울날이면 귀까지 덮는 남정네들이 쓰는 벙거지를 쓰고 다니며 “새 물건 왔시오! 물건이 아조 좋시오!”하며 외치고 다닌다. 우리는 그 아줌마를 ‘방물 어미’라 불렀다. 방물 어미는 남편을 북에 두고 아이 둘과 피난 내려왔다가 올라가지 못했다고 한다.


 방물 어미가 동네로 들어오는 날이면 아낙네들은 마당이 널찍한 커다란 집 안방으로 모여든다. 구경거리 없는 촌에, 방물 어미 방문은 늘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호기심 듬뿍 품고 있던 내가 그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엄마를 따라나선다. 엄마는 집에 있으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집으로 돌아가는 척하다가는 엄마가 그 집으로 거의 들어갈 때쯤, 슬그머니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방안 가득 둘러앉은 아줌마들이 물건 구경하느라 시끌벅적하다. 엄마는 딸년이 몰래 따라왔는지도 모를 지경으로 방물 구경에 흠뻑 빠져 있다. 펼쳐진 보따리에는 호기심 자극할 만한 물건들로 가득했다. 


아줌마들에게 인기를 끈 물건은 단연, 향기가 좋은 여성의 대명사 ‘가루분’이었다. 울 엄마 향취의 근원도 가루분에 있었던 거다. 나도 엄마 몰래 얼굴에 두드려 허옇게 바르고는 엄마한테 엄청 혼난 적이 있는 그 가루분이었다. 엄마 향취의 근원인 가루분을 언젠가는 한번 발라봐야겠다는 음모를 품고 있던 어느 날, 엄마가 제법 많은 빨래 거리를 이고 개울가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얼른 윗방으로 들어가 장롱 깊숙이 숨겨둔 가루분을 찾아냈다. 혼자 일을 도모하기에는 버거웠으므로 두 살 터울인 동생을 끌어들였다. 우리는 장롱에 붙어 있던 금이 간 거울을 보며 서로 두드려 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시덕거렸다. 완전범죄를 위해 얼굴은 우물가에서 지울 수 있었지만, 방안 가득 퍼진 가루분 냄새에 고자질 당해 들키고야 말았다. 그날, 부엌에서 나온 검게 그을린 부지깽이는 주연의 역할을 혹독히 해내었다. 

깡촌 살림살이에 물건 값을 한꺼번에 주는 이는 별로 없었다. 할부로 방물 어미가 올 때마다 조금씩 갚아 나가는 방식으로 물건을 샀다. 우리 엄마는 상처에 바르는 빨간약, 염증에 바르는 옥 토정끼, 자신의 필수품인 구르므(영양크림)랑 가루분을 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방물 어미가 새로운 물건인 ‘원기소’를 잔뜩이고 왔다. 그러더니 웬만한 집은 거의 원기소를 샀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엄마는 장남이고 외아들인 귀한 아들을 더 건강하고 씩씩하게 키우기 위해 일말의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원기소는 방방곡곡에서 대한민국 건아들을 키우는 그야말로 대표 영양제였다.


나도 원기소를 먹었다. 먹긴 했는데 비공식적 방법을 통해서였다. 엄마는 원기소를 동생과 나의 손이 닿을 수 없는 높은 벽장에 숨겨두고 엄마 손으로 직접 덜어서 오빠에게 먹였다. 그럴 때마다 오빠는 어리고 가녀린 동생들의 부러움을 샀다. 

눈요기와 부러움만으로 나의 욕구가 채워질 리 없었다. 또 다른 음모가 나의 심중에 도사리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와 오빠가 부재한 틈을 노리고 있었다. 나는 후환을 막기 위해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던 동생과 공모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사친회(師親會)가 있었다. 반장이었던 오빠의 모친이 참석하는 게 당연했다. 곱게 가루분으로 분단장을 하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엄마가 십여 리 떨어진 학교로 출발했다. 나는 ‘산소벌퉁이’(동네 맨꼭대기에 있던 벌거숭이 산소)에서 벌판 쪽 개울 징검다리를 건너는 엄마를 내려다보고는 회심을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손이 닿지 않는 벽장으로 올라가기 위한 작전을 짰다. 사실, 엄마가 명절 때면 으레 껏 고아 만든 갱엿 좀 더 먹어 보려고 여러 번 했던 짓(?)이었다. 윗방 장롱에서 베개를 가져다가 쌓고 동생이 무너지지 않게 잡으면 내가 그 위로 올라가 벽장에 다다르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원기소는 동생과 나의 은밀한 ‘간식’이 되었다. 


뭉턱뭉턱 줄어드는 원기소 통의 상태를 보고 엄마가 의심의 눈초리를 하기 시작했다. 고자질 잘하던 동생이 시치미를 떼고 있으니 증거를 찾을 턱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법 익숙한 방법으로 저질렀던 절도 행각(?)은 베개를 치우지 않는 실수로 말미암아 들키고야 말았다. 


그때부터 어디다 감추어 놨는지, 동생과 나는 더 이상 원기소 구경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오빠도 동생들 앞에서는 원기소를 먹지 않았다. 

아마도

“쥐도 새도 모르게, 게 눈 감추듯” 

먹었을 거라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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