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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미숙 Jul 06. 2020

장닭과 할머니

그들은 막걸리 한잔하는 친구였다-1970년

해마다 여름이면

서울서 교회 사람들이 우리 산골마을로 내려와 탁아소를 운영했다.

올 때마다 장난감이랑 옷가지들을 잔뜩 가지고 왔다.

물건 중에 새것도 있었지만 주로 미국에서 온 헌것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너도 나도 좋은 것을 골라 가지려고 했다.

우리 엄마도 못지않았다.


엄마는 빨간색 모직 코트를 얻어서 망토 모양으로 내 외투를 만들어 주었다.

옷감 재질이 모직이다 보니 따뜻했다.

학교에 갈 때나 동네방네 놀러 다닐 때나 노상 그것만 입고 다녔다.

외투가 그것밖에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동네 단짝 친구 옥현네 집에 사나운 장닭이 한 마리 있었다.

마을 사람 누구도 그 장닭을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사납게 쪼아댔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집 장닭이 나만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도 무서워 그 집 뒤편 언덕으로 돌아서 집으로 가기도 했다.

옥현이랑 놀 수도 없고 지름길인 그 집 앞을 지나갈 수도 없으니,

고민이 말이 아니었다.    


그 집에는 사나운 장닭만 있었던 게 아니다.

옥현이 할머니는 장닭보다 더 사나웠다.

놀러 가기만 하면 괜스레 심술을 부리면서

긴 곰방대로 우리를 쫓아내 버리기 일쑤였다.

곰방대로 대가리를 한대 얻어맞으면 눈물이 찔끔 난다.    


할머니는 늘 상 막걸리에 취해 볼이 벌겋게 달아 있었고

허연 머리를 산발하고 있었다.

얼마나 막걸리를 좋아했던지 막걸리에 밥을 말아 드시는 것도 봤다.

막걸리가 떨어진 날이면 장닭처럼 며느리인 옥현 엄마를 쪼아댔다.    


동네에서 그 할머니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어린 맘에 할머니를 좋아하는 존재는 장닭 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할머니는 툭하면 드시다 남은 막걸리를 장닭에게 먹였다.

막걸리를 얻어 마신 장닭은 마당에서 홰를 치며 난리 법석을 피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사납게 쪼았다.

사나운 것이 똑같이 닮았다고 생각했다.(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그 할머니는 우리 아버지의 고모, 즉 고모할머니였다)


할머니와 장닭이 무섭다 보니, 옥현네 집에 놀러 갈 수 없어 우울해졌다.

엄마한테 할머니가 장닭한테 막걸리를 하도 많이 먹여서 장닭이 나를 더 세게 공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대뜸,


“그 옷 때문이야!

옷 색깔이 빨간색이어서 그런 거야,

장닭은 빨간색을 보면 더 흥분을 하잖니!”

 

할머니한테 얻어 마신 막걸리로 취해 있던 장닭이

더군다나 빨간색을 보았으니 더 흥분했던 것이다.

이유를 알았으니 빨간색 외투만 보이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옥현네를 지나가거나 놀러 갈 때면 외투를 벗어 지푸라기에 감추고는

살금살금 장닭 앞을 지나쳤다.

장닭은 조금이라도 빨간색이 보이기를 바라는 듯 나를 노려보곤 했다.

그 집을 지나칠 때마다 나는 할머니랑 장닭이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갔다가 여느 때처럼 나는 외투를 벗어 지푸라기에 숨기고

그 집 앞을 깨금발을 하고 걸어갔다.

겨울 한낮의 해가 마을을 하얗고 눈부시게 비추고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나는 갑자기 지붕에서 날아와 나의 정수리를 쪼지 않을까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장닭이 보이 지를 않았다.

나는 지푸라기에서 살짝 빨강색 외투를 드러내 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사히 그 집을 지나 집으로 와서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는 알고 있었다.

어떤 군인 아저씨가 와서 잡아갔다는 것이다.

장닭은 어찌나 날렵했던지 마을 남자들이 몇 번이나 잡으려고 했다가

허탕 치기 일쑤였다.    


잡히기 며칠 전부터 장닭은 대청마루 밑에서 꼼짝 않고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먹을 것을 주어도 먹지 않았고 좋아하던 막걸리도 마다했다고 한다.


며칠 전, 마을에 장사가 났었는데…

옥현네 할머니의 장례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날부터

장닭은 시름시름하더니

그냥 군인 아저씨한테 몸을 맡겼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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