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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떡갈나무 Sep 26. 2023

06. 초등학교는 동네 학교로

4학년 1학기 중반에 캐나다로 온 둘째 아이의 초등학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영어를 거의 할 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ESL 과정을 제공하는 학교만 갈 수 있었거든. 일단 사립 학교는 ESL을 제공하는 곳이 거의 없었어. ESL이 아니었어도 캐나다에서 사립 초등학교는 잘 판단해야겠더라고. 대부분 Pre-K (유아원)부터 8학년까지 제공하는데, 유아원부터 함께 학교를 다닌 아이들과 그 가족들의 끈끈함은 뭔가 작은 부족사회 느낌이었거든. 짧게는 5년, 길게는 7년을 넘게 함께 지낸 아이들 사이를 중간에, 그것도 영어가 안 되는 동양 아이가 비집고 들어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어.  


사실 초등학교는 스쿨버스나 라이드로 통학해야 하는 거리 말고 가까운 동네 학교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 공부보단 친구들을 사귀고 영어를 익히고 문화에 익숙해지는 것이 우선인 나이라고 판단했거든. 친구들과 함께 걸어서 하교하고, 중간에 친구들 집에도 놀러 가고, 운동장이나 놀이터에서도 좀 놀다 오고... 그런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비교적 최근에 생긴 깔끔하고 정돈된 커뮤니티 내의 학교를 정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지. 캐나다 공립은 학군제이기 때문에, 주소지의 학교만 갈 수가 있는데, 우리가 임시로 머물던 곳은 학군이 좋지 않았거든. 보내고 싶은 학교 학군지로 하루라도 빨리 이사를 가야 했어. 우리가 있던 곳은 콘도나 아파트가 거의 없고, 렌트 물건도 별로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우린 그저 둘째 학교 하나만을 위해서 덜컥, 아주 급하게, 집을 사버렸지. 계약을 하고 주소지가 이전되고 나서야 학교에 보낼 수 있었어. 그전에 2주쯤 아이가 학교에 '못'가는 상태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것 아니었던 그 시간 동안 나는 막 피가 마르는 것 같았어. 제대로 알아보고 철저히 준비하지 않은 대가를 내 아이가 치르고 있는 것 같아서, 나 때문에 첫 단추를 잘못 채우는 것 같아서. 그래서 캐나다 주택에 대해 잘 모르는 내 눈에도 단점이 훨씬 많이 보이는 집을 '중요한 건 둘째 학교'라며 급하게 계약했던 거야. 우린 결국 1년도 안 되어 그 집을 팔고 이사했지만, 그 당시엔 우리 아이를 학교에 갈 수 있게 해 준 그 집에 정말 감사했어.


둘째 아이가 다닌 학교엔 한국 학생이 없었어. 그래서 1순위였지. 나는 한국 친구가 없으면 영어 습득이 훨씬 더 빠를 거라 생각했거든. 어차피 한국어는 집에서 가족들과 쓰면 되니까.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던 어리석음이라니. 아이 학교 입구에 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출신 국가 국기들이 걸려 있었는데, 세상에나 북한 국기가 걸려있는 걸 보고 사레가 들렸던 기억이 나. 북한 난민출신 아이가 한 명 있었던 거야. 우리 둘째는 학교에 가기 전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 엄마에게 전화해 주세요." 두 문장을 영어로 달달 외웠어. 그 정도로 영어를 알아듣지도, 말할 줄도 몰랐거든. 일주일도 안 되어서 긴장했던 아이가 배가 아파서 교무실에서 전화를 했더라. 배가 아프다는 말은 몰라도 집에 전화해야 한다는 말은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절로 된 건 아니지만, 그 학년을 마치기 전에 ESL이 필요 없는 수준의 영어 실력이 생긴 걸 보고, 어쩌면 이 나이의 언어는 덧칠보다 백지에 그리는 게 더 쉽고 빠를 수도 있다는 걸 알았지. 둘째의 영어엔 어떤 (한국식) 악센트나 문어적 습관이 없어. 아주 어린 나이에 온 것도 아닌데, 그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영어를 하더라고. 한국 친구가 없는 학교 선택이 나쁘지 않았던 거야. 영어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해볼게. 둘째의 적응기에도 사연과 눈물의 스토리가 적지 않거든.


이야기를 할수록 허술했던 나에 대한 반성문 같은데... 부끄러운 시행착오를 기꺼이 공개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되돌아가는 아이들이 적어지지 않을까 싶어. 나의 주변이 잘 되는 것이 결국 내가 잘 되는 길이잖아. 한국 아이들이 외국에서 최소한의 상처와 불필요한 방황을 겪지 않는 것이 결국 나와 내 아이들이 잘 되는 일일테니, 한심한 경험들도 신나게 들려줄게. 대부분이 알고 있듯, 중국과 인도 사람들은 정말 서로 너무너무 잘 뭉쳐. 새로운 가족이 오면 흩어져있던 시스템들이 하나로 쫘악 정렬을 이뤄서 정착의 모든 면을 돕더라. 토론토에서 내가 경험한 한국인들은 안 그랬어. 친근하게 다가오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뭔가 목적이 있고, 정말 유용한 정보는 절대 나누지 않고, 겁을 주거나 무안을 주거나 험담을 하거나 따돌리면서 일단 움츠러들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었지. 한국에서 유명한 수학 강사였던 분이 부업으로 동네에서 수학 교습을 하셨는데, 한국 엄마들은 자기 아이가 과외를 받는 걸 소문내지 말아 달라고, 자기 아이 수업 앞뒤로는 한국 아이들을 가르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머리가 아뜩해진 적도 있어.


불쑥불쑥 튀어나올 넘치는 나의 실수와 눈물의 경험들을 미리 알았더라면 캐나다 티켓을 포기했을까 생각해 볼 때가 있어. 서툴고 아둔했던 그 시절이 내 아이들의 기억에는 대체적으로 행복했던 시간으로, 그런 기회를 허락해 주신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남아있더라. 다양한 친구들 사이에서 성숙한 비교의 시각을 갖게 된 아이들을 보며, 49%의 쓰라림은 있으나 그래도 지금까진 51%는 성공이라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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