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떡갈나무 Oct 06. 2023

13. 이런 거 배우려고 온 거구나

캐나다 교육이 부러웠던 일들 몇 가지 더 말해볼게. 우선 'Artist of the Month'. 둘째 아이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 어릴 때부터 눈썰미가 좋아서 한 번 본 건 여간해서 잘 잊어버리지 않고, 또 뭔가를 비슷하게 따라 그리는 것도 잘했지.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따라 그리면서 색감이나 스킬을 익히고, 그런 다음에 자기 그림을 그리잖아. 우리 아이도 그렇게 보티첼리나 고흐의 그림을 따라 그렸어.


지리 시간에 지도를 그리거나 역사 시간에 유명한 장군의 그림을 그럴듯하게 그려 넣는 것을 본 담임 선생님이, 둘째에게 '너를 우리 학교의 '이 달의 예술가'로 정해서 너의 작품을 학교 입구에 한 달간 전시하자'라고 제안했어. 둘째 아이는 색연필화, 파스텔화, 볼펜으로 그린 그림, 자화상, 유화 등 여러 그림들을 그렸어. 그리고는 한 달간 학교의 예술가가 되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맛보았지.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미술 전시회에 학교 대표로 전시도 하게 되었어. 아직 어린아이에게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계획할 수 있게 해 주고 나머지는 전혀 간섭하지 않으니, 아이는 스스로 뭔가 알아보고 공부하고 고민하고 그러면서 자기만의 색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진짜 경험을 하더라. 미술 과외 선생님이 없는 곳에 사는 것이 오히려 득이 되었어.


이런 방식은 큰 아이가 다차방정식을 배울 때에도 구경할 수 있었어. 우린 방정식을 왜 배우는지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잖아. 그런데 방정식의 기초만 가르친 후에, '생활 속에서 쉽게 만나는 곡선 물체를 하나 정해서, 그 물체를 방정식으로 표현하라'는 과제를 내주더라. 아이는 스케이트화 한 짝을 화면에 띄워놓고, 발목부터 스케이트날과 리본까지, 모든 곡선을 여러 방정식의 선으로 표현했어. 자연스럽게 여러 방정식을 사용하게 되고, 나중엔 어떤 곡선을 보면 어떤 방정식을 쓰겠구나... 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나 보더라. 스케이트화 화면에 깨알같이 다닥다닥 써놓은 수십 개의 방정식은 내게 정말 충격이고, 또 너무 부러웠던 경험이야.


어느 날엔 '음악 클럽 아이들이 ㅇㅇ 아트 센터에서 아이들이 뮤지컬을 하니, 시간 되는 분들은 보러 오시라'는 이메일을 받았어. 한국에서 엄마들이 모두 달라붙어서 마치 어른의 경쟁 같았던 음악제 경험이 떠올랐지. 아니, 뮤지컬을 하는데, 부모는 구경만 해도 되나? 간식이라도 사서 돌려야 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클럽 시간에 자기들끼리 감독을 정하고 배역을 정하고, 또 뮤지컬 반주를 위한 오케스트라를 꼼꼼하게 꾸렸더라고. 부모들은 정말로 '구경'만 하고 돌아왔어. 클럽 담당 선생님이 피트 밴드의 지휘를 한 것만 제외하면, 어른의 손길이 전혀 없었던 거지.


또 기억나는 일은 탄원서 운동이었어. 캐나다엔 북한 난민들이 많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 사람들이 불법으로 입국한 것이 드러나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맨몸으로 추방을 당하게 된 일이 있었어. (북한에서는 법을 어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대. 그래서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난민 입국 수속 때 모두가 거짓말을 한 거야.) 그 소식을 알게 된 아이가 학교 학생들에게 탄원서 서명을 받아서 정부에 제출하고 싶어 했어.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학교에서 변호사에게 미성년자가 서명한 탄원서의 법적 효력 등을 확인한 후에, 전교생의 이메일 주소를 아이에게 준 거야. 이메일로 모두에게 알리고, 며칠간 탄원서 부스를 만들어줄 테니 무작정 종이 들고 돌아다니지 말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서명을 받으라고. 


어쩌면 무모하기도 하고 어쩌면 그냥 지나가는 생각일 수 있는 아이의 의견을 학교의 교장선생님까지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시면서도 모두 아이의 공으로 돌리는 과정은 내겐 좀 감동이었어. 이 과정의 모든 단계를 아이가 주도하게 하고, 귀 기울여 들어주고,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기꺼이 도와주는, 어쩌면 진짜 교육의 모습. 듣자마자 '쓸데없는 소리 말고 네 할 일이나 신경 써!'라고 무시해 버렸던 내가 정말 크게 배운 일이기도 해. 이래서 여기 아이들은 그렇게 자존감이 높은 건가 싶기도 했고. 이 자존감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할게.


이런 모든 일들이 한국처럼 중요한 '수능'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학생에 대한 존중은 정말 수준 자체가 달랐어. 물론 캐나다에도 문제아들이 있고, 입이 떡 벌어지는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도 있어. 그런데 내가 느낀 큰 차이점은, 아이들에게 우선 '책임'의 무거움을 가르친다는 거였어. 커닝을 하니 정말 얄짤없이 퇴학시키고, 작은 양이라도 표절한 과제를 내는 아이는 당연히 0점 처리하고. 그런 걸 직접 겪는 학생도, 곁에서 보는 학생도, 어떤 '행동'의 대가를 피할 수는 없다는 걸 배우기 때문에 쉽게 '객기'를 부리지 못하는 것 같았어.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아무리 학생회 임원이어도, 아무리 유명한 집 아이여도 예외가 없더라. (적어도 우리 아이들 학교에서는.)


캐나다 조기 유학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만 했던 것 같아서 좋았던 기억도 풀어본 거야. 캐나다 교육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기도 했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12. 엄마가 아이를 믿어줘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