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의 온기

토요일 오후, 타일 벽에 부딪히는 물소리


토요일 오후, 골목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섰다. '명성탕'이라는 낡은 간판이 보인다. 페인트가 벗겨져 글씨가 희미하지만, 아직 읽을 수 있다. 계단을 내려가자 특유의 냄새가 올라온다. 유황 냄새, 비누 냄새, 그리고 습기.


입구 문을 밀고 들어서니 탈의실이 나타난다. 오래된 선풍기가 천장에서 돌아간다. 덜컹덜컹, 불안정한 소리를 내며. 계산대엔 할아버지가 앉아 TV를 보고 계신다. "목욕이요?" 고개를 끄덕이자 할아버지가 묻는다. "때밀이 하실래요?" 잠시 망설이다 대답한다. "네, 할게요."


할아버지는 표를 건네며 말한다. "안에 들어가면 실력 좋은 때밀이 아저씨가 계셔요. 먼저 씻고 나서 부르시고." 표를 받아들고 안으로 들어간다.



탈의실은 생각보다 넓다. 나무 사물함이 벽을 따라 늘어서 있다. 어떤 건 문짝이 삐걱거리고, 어떤 건 자물쇠가 고장 나 있다. 바닥엔 물기가 배어 있고, 구석엔 빈 바구니들이 쌓여 있다.


옷을 벗고 탕 안으로 들어간다. 문을 열자 뜨거운 김이 확 쏟아진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타일 벽에 물방울이 맺혀 흘러내리고 있다. 샤워기 소리, 물 흐르는 소리, 그리고 가끔씩 들리는 사람들 목소리.


온탕에 몸을 담근다. 뜨거운 물이 피부를 감싼다. 처음엔 뜨거워서 숨이 막히지만, 곧 익숙해진다. 어깨까지 물에 잠기자 온몸이 이완되는 게 느껴진다. 눈을 감고, 물속에 몸을 맡긴다.


탕 안엔 몇 명이 더 있다. 한쪽 구석에선 할아버지 두분이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알아?" "그러게 말이야. 마트 가면 깜짝 놀라." 목소리가 타일 벽에 부딪혀 울린다.


반대편엔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있다. 아들은 작은 바가지로 물을 퍼서 쏟으며 논다. 철벅철벅, 물소리가 경쾌하다. 아버지는 아들의 머리를 감기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눈 감고 있어. 비누 들어가면 따가워."


그 풍경을 바라보며, 묘하게 평온해진다. 목욕탕은 이상한 곳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벗은 채로 있지만,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각자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함께 있는 느낌.



물에서 나와 때밀이 침대로 간다. 아저씨 한 분이 다른 손님의 때를 밀고 있다. "다음 분 누구세요?" 손을 들자 아저씨께서 고개를 끄덕인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옆 침대에 앉아 기다린다.


잠시 후, 내 차례가 온다. 침대에 누우니 아저씨가 물을 끼얹는다. 따뜻한 물이 등을 타고 흘러내린다. "힘 빼세요." 목소리가 들리고 때밀이 타올이 등에 닿는다.


싹싹싹. 거친 타올이 피부를 문지른다. 따갑지만, 시원하다. 아저씨는 힘 있게, 그러면서도 능숙하게 때를 민다. 등, 팔, 다리. 순서대로 타올이 지나간다. 회색빛 때가 뭉쳐 나온다.


"때가 많네요." "다들 그래요. 요즘 사람들 바빠서 목욕탕 자주 못 오니까." 물을 다시 끼얹고, 비누칠을 시작한다. 거품이 몸을 덮는다.


마사지를 받으며 생각한다. 아저씨의 손은 거칠지만, 따뜻하다. 수십 년간 이 일을 해온 손. 그 손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는다.



때밀이가 끝나고 다시 탕에 들어간다. 이번엔 냉탕이다. 차가운 물이 온몸을 감싼다. 뜨거웠던 피부가 식어가는 게 느껴진다. 숨이 멎을 것 같지만, 곧 상쾌해진다.


탕 한쪽에 할아버지들은 여전히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주제가 바뀌어 있다. "손주가 이번에 대학 붙었어." "어머, 축하하네. 어느 학교?" 웃음소리가 퍼진다. 타일 벽이 그 웃음을 품는다.


물속에 앉아 천장을 올려다본다. 페인트가 벗겨진 천장, 습기로 얼룩진 벽, 오래된 타일. 모든 게 낡았지만, 모든 게 익숙하다. 이 공간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살아있다. 매주 토요일이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


탕에서 나와 샤워를 한다. 머리를 감고, 비누칠을 하고, 물로 헹군다. 깨끗해진 몸이 가볍다. 거울 앞에 서니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다. 목욕탕에서 나온 사람 특유의 얼굴.



탈의실로 나오니 선풍기가 여전히 돌아간다. 덜컹덜컹. 사물함 앞에 앉아 천천히 옷을 입는다. 서두르고 싶지 않다. 이 공간에, 이 시간에 조금 더 머물고 싶다.


계산대를 지나며 할아버지께 인사한다. "수고하세요." 할아버지는 손을 흔든다. "또 오세요."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온다. 햇빛이 눈부시다. 몸에서 김이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골목을 걸으며 생각한다. 명성탕은 아직도 연탄으로 물을 데운다고 한다. 보일러가 아니라, 연탄으로. 그래서 물이 더 부드럽다고, 할아버지가 말했다. 연탄으로 데운 물, 할아버지의 손길, 타일 벽의 온기. 그런 것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몸에서 비누 냄새가 난다. 목욕탕 냄새. 그 냄새를 맡으며 생각한다. 다음 주 토요일에도 가야겠다고. 명성탕이 문을 닫기 전에, 할아버지가 계신 동안.


창밖을 보니 해가 기울고 있다. 목욕탕엔 지금쯤 저녁 손님들이 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일주일의 피로를 씻어내러. 그리고 탕 안에서, 누군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누군가는 때를 밀고, 누군가는 그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을 것이다. 타일 벽에 부딪히는 물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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