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위의 저녁

퇴근길 정육점, 칼날이 만드는 하루의 끝


저녁 여섯 시, 정육점 앞에 사람들이 모인다. 퇴근길 손에 든 에코백과 장바구니. 아직 정장 차림인 남자, 운동복 차림의 여성, 마트 봉투를 든 할머니. 각자의 하루를 마치고 이곳에 모인다. 유리문을 열면 특유의 냄새가 밀려온다. 차가운 공기와 섞인 고기 냄새, 그리고 소독약 냄새. 정육점의 저녁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쇼케이스 앞에 줄이 늘어서 있다. 불고기용, 국거리용, 구이용. 정갈하게 놓인 고기들이 형광등 아래에서 빛난다. 사장님의 손이 분주하다. 덩어리 고기를 집어 올려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 칼을 쥔 손이 망설임 없이 움직인다. 샤샥, 샤샥. 칼날이 고기를 가르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터져 나온다. 날카롭지만 둔탁하다. 금속과 살이 만나는 소리. 그 소리 사이로 사람들의 목소리가 섞인다.


"이거 오늘 들어온 거예요?"


"네, 오늘 새벽에 받은 거예요."


"그럼 육백 그램만 주세요."


저울 위에 고기가 올라간다. 디지털 숫자가 깜빡이며 무게를 재고, 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고기를 비닐에 담아 건네는 동안 다음 손님이 벌써 주문을 외운다. "등심 오백 그램요. 구이용으로요." 멈추지 않는 흐름. 칼질, 저울, 비닐. 그 사이를 돈이 오가고 영수증이 찍힌다. 정육점의 저녁은 이렇게 빠르게 흘러간다.



도마 위에서 고기가 쓰러진다. 덩어리에서 조각으로, 조각에서 한 끼의 재료로. 칼날이 지나간 자리마다 붉은 단면이 드러난다. 결을 따라 가르는 손놀림이 능숙하다. 몇십 년을 이 칼을 잡았을까. 사장님의 손등에는 세월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칼집 자국, 화상 자국, 굳은살. 저녁마다 이 도마 앞에 서서 누군가의 식탁을 준비한 손이다.


"조금만 더 주세요."


손님의 말에 사장님이 칼을 한 번 더 내린다. 저울이 육백이십 그램을 가리킨다. "이 정도면 되시겠어요?" 손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비닐 안에 담긴 고기를 받아 들고 돌아서는 뒷모습. 그 손에 든 비닐 안에는 오늘 저녁이 들어 있다. 누군가와 나눌 식사, 혼자 먹을 저녁, 내일을 위해 냉동실에 넣어둘 고기. 저마다의 이유로 이곳을 거쳐 간다.


쇼케이스 앞에 선 여자가 고민한다. "이거요, 이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부위가 애매하다. 사장님이 묻는다. "불고기 하실 거예요?" "아니요, 국 끓이려고요." "그럼 이쪽이 나아요." 칼이 다른 부위를 가리킨다. 여자가 다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주문이 확정되는 순간, 칼이 다시 움직인다. 샤샥, 샤샥. 도마 위에서 고기가 나뉘고, 하루가 나뉘고, 저녁이 만들어진다.



정육점의 시간은 독특하다. 낮에는 한산하지만 저녁이 되면 붐빈다.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 오늘 저녁 무엇을 먹을지, 내일 무엇을 준비할지 결정하는 곳. 칼질 소리 사이로 일상의 계획들이 오간다. "오늘 애들이 고기 먹고 싶대서요." "남편이 출장 가기 전에 고기 좀 구워줘야죠." 각자의 이유가 도마 위에서 모양을 갖춘다.


창밖으로 어둠이 내려앉는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퇴근 시간의 차들이 지나간다. 정육점 안은 여전히 밝다. 형광등 아래에서 고기가 빛나고, 칼날이 반짝인다. 줄은 여전히 길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지쳐 있지만 조급하지는 않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일정. 고기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면, 비로소 저녁이 시작될 것이다.


사장님이 잠깐 숨을 고른다. 다음 손님을 받기 전, 칼을 가는 시늉을 한다. 쇠붙이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린다. 칼날이 다시 날카로워진다. 준비가 끝나면 다시 손님을 맞는다. "어서 오세요. 뭘 드릴까요?" 똑같은 인사말. 하지만 매번 다른 주문. 오늘도 정육점은 이렇게 저녁을 만들어낸다.



마지막 손님이 나간다. 문이 닫히고, 정육점에 잠깐의 정적이 찾아온다. 사장님이 도마를 닦는다. 물줄기가 도마를 적신다. 붉은 물이 흘러내린다. 하루 동안 고기를 잘라낸 흔적들이 씻겨 내려간다. 칼도 닦고, 저울도 정리한다. 쇼케이스 안의 남은 고기들을 정리하고, 냉장고에 넣는다. 내일 또 누군가 이 고기를 사갈 것이다. 내일 저녁에도 이곳은 다시 분주해질 것이다.


밖에서 본 정육점은 이제 조용하다. 불빛만 환하게 켜져 있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정육점을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이곳은 하루의 끝과 저녁의 시작이 교차하는 장소다. 칼날 아래에서 무수한 저녁들이 만들어진다. 도마 위에서 나뉜 고기들은 지금쯤 각자의 식탁 위에 올라 있을 것이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 국물이 끓는 소리,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저녁 여섯 시의 정육점. 그곳은 단순히 고기를 파는 곳이 아니다. 하루를 마감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잠깐 머무는 곳. 오늘 저녁을 준비하는 곳. 칼날 아래에서 일상이 만들어지는 곳. 도마 위의 고기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누군가의 저녁이고, 귀가이고, 하루의 마침표다. 그리고 내일이면 다시, 칼날이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로 저녁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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