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 시의 반죽

동네 빵집, 손으로 빚어지는 하루


새벽 네 시, 골목에 불이 켜진다. 동네 빵집이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시간, 가장 먼저 깨어나는 곳. 셔터를 올리는 소리가 고요를 깨고, 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간다. 에어컨도, 난방도 아닌 오븐의 온기가 공간을 데운다. 하루가 시작되는 온도다. 반죽을 꺼내는 소리, 앞치마를 두르는 소리만 들릴 뿐, 빵집의 아침은 말없이 시작된다.



작업대 위에 밀가루가 뿌려지고, 하얀 가루가 표면을 덮는다. 냉장고에서 발효된 반죽을 꺼낸다. 부푼 반죽이 손에 올려지는데, 공기를 머금은 특유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주인의 손이 반죽을 누르면 공기가 빠지는 소리가 작게 들린다. 손바닥으로 밀고, 접고, 다시 밀면서 반죽이 매끈해진다. 같은 동작이 반복되는데, 수십 년을 해온 손놀림이다.


발효된 밀가루 냄새가 공간을 채운다. 새콤하면서도 고소한, 살아 있는 반죽의 냄새다. 이스트가 숨 쉬며 만들어낸 향. 아침마다 이 냄새가 골목을 적신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도 이 냄새는 퍼져나간다. 빵집이 깨어났다는 신호이자, 곧 오븐이 달궈지고 빵이 구워질 것이라는 예고.


반죽을 나누어 하나하나 무게를 맞춘다. 저울 위에 올려놓고, 손으로 떼어내고, 동그랗게 빚는다. 단팥빵이 될 반죽, 크림빵이 될 반죽, 소보루빵이 될 반죽. 아직은 모두 같은 모습이지만 주인은 안다. 어떤 것이 어떤 빵이 될지를. 반죽의 탄력과 공기의 양, 발효의 정도를 손끝으로 만져보면 알 수 있다.



단팥을 반죽 안에 넣는 과정은 조심스럽다. 손가락으로 중앙을 누르고, 단팥을 올리고, 반죽을 오므리면 봉긋한 모양이 만들어진다. 입구를 꼼꼼하게 눌러 붙여 단팥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한다. 완성된 반죽을 팬 위에 하나, 둘, 셋, 일정한 간격으로 놓는다. 구워지면 부풀 공간을 계산한 간격이다. 팬이 가득 차면 오븐 안으로 들어간다.


오븐 문이 열리면 뜨거운 열기가 쏟아진다. 주인이 팬을 밀어 넣고 문을 닫는다. 타이머를 맞추면 이제 기다림의 시간이다. 오븐 안에서 반죽이 부풀고, 색이 변하고, 빵이 되는 동안 주인은 다음 반죽을 준비한다. 식빵 반죽을 꺼내 긴 틀 안에 넣고 뚜껑을 덮는다. 네모나게 구워질 식빵이 다음 오븐에 들어갈 차례를 기다린다.


타이머가 울리고 오븐 문을 열면 갓 구운 빵의 열기가 밀려온다. 단팥빵이 노릇하게 익었다. 계란물을 발랐던 표면이 윤기 있게 반짝인다. 주인이 팬을 꺼내 식힘망 위에 하나씩 올려놓는다. 따뜻한 빵에서 김이 오르고, 빵이 숨을 내쉰다. 구워지며 갇혔던 열이 천천히 빠져나가면서 빵 냄새가 진하게 퍼진다. 달콤하고 구수한 냄새가 새벽 골목을 따뜻하게 적신다.



일곱 시가 되면 문을 열고, 아직 따뜻한 빵들을 진열장에 하나씩 놓는다. 단팥빵, 크림빵, 소보루빵, 식빵, 버터롤. 프랜차이즈 빵집처럼 화려하지 않다. 화려한 포장도, 긴 이름도 없이 그냥 단팥빵이고, 그냥 식빵이다. 하지만 단골들은 안다. 이 빵이 어떤 맛인지를.


첫 손님이 들어온다. 할머니다. "식빵 한 개요." 주인이 갓 구운 식빵을 집어 봉투에 넣으면서 말한다. "따뜻해요." 할머니가 봉투를 받아 들고 손에 전해지는 온기를 느낀다. "잘 먹을게요." 할머니의 뒷모습이 골목으로 사라진다. 손에 든 식빵의 온기가 할머니의 아침을 데울 것이다.


손님들이 하나둘 늘어난다. 출근길 직장인, 등교 전 학생, 장 보러 나온 주부가 각자의 이유로 이곳에 들른다. "단팥빵 두 개요." "크림빵 하나, 소보루빵 하나요." "식빵이 제일 맛있는데." 짧은 주문과 짧은 대화 속에 익숙함이 묻어난다. 매일 보는 얼굴, 매일 듣는 목소리로 만들어지는 단골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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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이 지나고 오후가 오면서 빵이 하나씩 줄어든다. 진열장이 비어가지만 주인은 추가로 빵을 굽지 않는다. 오늘 만든 만큼만 팔고, 다 팔리면 끝이다. "내일 또 오세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빵집이다. 재고를 쌓아두지 않는 대신, 내일 새벽이면 다시 반죽을 꺼내고 오븐을 켜고 빵을 구울 것이다. 매일 아침 새로 시작하는 일이다.


해가 기울면서 진열장에 몇 개 안 남은 빵만 남는다. 주인이 작업대를 닦는다. 밀가루를 털어내고, 도구를 정리하고, 오븐을 끄면 열기가 천천히 식는다. 하루가 마무리되는 시간이지만 냉장고에는 내일의 반죽이 발효되고 있다. 천천히 부풀어 오르며 내일 아침을 준비한다.


문을 닫기 전, 주인이 잠깐 진열장을 본다. 빈 자리들. 오늘 누군가의 아침이 되고, 간식이 되고, 저녁이 된 빵들의 자리. 손님들의 손에서 식탁 위로 옮겨간 빵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기를, 따뜻한 한 끼가 되었기를, 오늘 하루를 버틸 힘이 되었기를 주인은 바란다.



골목이 어두워지고 빵집의 불이 꺼진다. 하지만 내일 새벽 네 시면 다시 불이 켜질 것이다. 셔터가 올라가고, 오븐이 달궈지고, 반죽이 손에 올려지면서 또 하루의 빵이 만들어질 것이다. 손으로 빚어지고, 정성으로 구워지고, 따뜻하게 건네지는 프랜차이즈 아닌 동네 빵집의 빵.


단팥빵 하나에는 주인의 새벽이 들어 있고, 식빵 한 조각에는 오븐의 온기가 남아 있다. 그 온기가 누군가의 손으로, 누군가의 식탁으로, 누군가의 아침으로 전해진다. 빵집은 단순히 빵을 파는 곳이 아니다. 새벽부터 시작된 정성을 나누고, 손으로 빚은 하루를, 오븐에서 구워낸 마음을 건네는 곳이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그 마음은 계속될 것이다. 골목의 불빛처럼, 새벽의 온기처럼, 갓 구운 빵의 냄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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