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 닳은 자리

골목 지하 구두수선집, 걸어온 시간을 고치는 곳


계단을 내려가면 구두수선집이 나온다. 지하 반층쯤 되는 위치, 골목 모퉁이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유리문 너머로 좁은 공간이 보이는데, 천장은 낮고 벽은 수선을 맡긴 구두들로 가득하다. 주인을 기다리며 벽에 걸린 구두들.


문을 열면 냄새가 먼저 온다. 가죽과 접착제가 섞인, 오래된 공간만이 가진 냄새다.



주인은 작업대 앞에 앉아 허리를 숙인 채 구두를 들여다본다. 손에 쥔 도구가 능숙하게 움직이고, 망치가 굽을 때리는 소리가 작고 규칙적으로 들린다. 똑, 똑, 똑. 금속 소리가 좁은 공간에 울리는 사이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소리가 희미하게 섞인다.


주인은 말이 없다. 손님이 들어와도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구두를 건네받으면 한참을 뒤집어보고, 밑창을 살피고, 굽을 확인하면서 진단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틀 걸려요."


짧은 대답에 손님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가면, 다시 망치 소리만 남는다.



작업대 위에는 온갖 도구들이 널려 있다. 송곳, 칼, 줄, 접착제, 실. 주인의 손이 도구를 집어 들고 구두 밑창을 벗겨낸다. 가죽이 천천히 떨어져 나가면서 낡은 밑창 아래 원래의 가죽이 드러난다.


얼마나 걸었을까. 닳고 닳아서 본래 모습을 잃은 굽을 주인의 눈이 오래 본다.


벽에 걸린 구두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다. 검은 구두, 갈색 구두, 여성용 하이힐, 남성용 로퍼. 어떤 것은 굽이 심하게 닳았고, 어떤 것은 끈이 떨어져 나갔다. 누군가의 출근길, 누군가의 면접장, 누군가의 결혼식을 함께했을 구두들이 이곳에 와서 쉰다.


주인이 새 밑창을 잘라낸다. 가죽을 칼로 자르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리고, 접착제를 바르면 톡 쏘는 냄새가 퍼진다. 주인은 밑창을 붙이고 망치로 두드린다. 다시 똑똑똑 소리가 시작되는데, 그 리듬이 급하지 않다. 천천히, 정확하게.



실을 꿰는 작업이 시작된다.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실을 통과시키고, 손가락에 힘을 주어 실을 당긴다. 한 땀 한 땀, 기계가 아니라 손이 하는 일이다. 시간이 걸리지만 주인은 서두르지 않는다. 이 일을 몇십 년을 해왔고, 손이 기억한다.


손님이 또 한 명 들어온다. 손에 든 구두가 많이 낡았다. 주인이 받아서 살피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고칠 수 있어요?" 손님이 묻는다.


주인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한다. "해봐야죠."


확답은 아니지만, 포기도 아니다. 손님이 안도한 표정으로 구두를 맡긴다. "이거 제가 첫 직장 다닐 때 산 건데요." 주인은 대꾸하지 않지만 귀는 듣고 있다. 그 구두에 실린 시간을.


손님이 나가고 다시 조용해지면, 주인이 방금 맡은 구두를 작업대 위에 올린다. 천천히 뒤집어본다. 굽이 한쪽만 심하게 닳았다. 걸음걸이가 기울었던 모양이다. 가죽은 벗겨지고 실밥은 풀렸지만, 버릴 정도는 아니다. 고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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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을 내는 시간이 온다. 구두에 크림을 바르고 천으로 닦는데, 원을 그리며 문지르는 손놀림이 부드럽다. 가죽이 조금씩 빛을 되찾는다. 완전히 새것처럼 되는 건 아니지만, 다시 신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주인은 완성된 구두를 벽에 걸어둔다. 주인이 찾아올 때까지.


해가 지고 골목이 어두워져도 지하의 구두수선집에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다. 주인은 마지막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도구들을 정리하고 작업대를 닦는다. 가죽 부스러기와 실 조각들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문을 잠그기 전, 주인이 벽의 구두들을 한 번 둘러본다. 오늘 고친 것, 내일 고칠 것, 다음 주에 찾아갈 것들. 주인은 그 구두들이 다시 거리를 걸을 날을 생각한다. 누군가의 발에 신겨져 다시 어디론가 향할 그 순간을, 굽이 땅을 디딜 때마다 나는 소리를.



계단을 올라 골목으로 나오면, 뒤돌아보이는 지하의 불빛이 희미하게 보인다. 좁은 공간, 낡은 구두들, 묵묵한 주인. 그곳은 단순히 구두를 고치는 곳이 아니다. 걸어온 시간을 고치는 곳이다.


내일이면 또 누군가 계단을 내려올 것이다. 손에 구두를 들고 "고칠 수 있을까요?" 묻는 목소리와 함께. 그리고 주인은 대답할 것이다. "해봐야죠." 짧지만 든든한 그 말과 함께, 망치 소리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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