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고요 속을 걷다

하루의 끝, 다시 길 위에서



퇴근길 다리를 건넌다.

햇살은 이미 저물었고,

강물 위에는 도시의 불빛이 길게 번진다.


하루가 끝났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쉽지만,

이제는 그 아쉬움까지도

부드럽게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산책을 시작했을 때 나는

그저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숨고 싶었다.

도망치듯 길 위로 나섰고,

걷는 동안만큼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걷다 보니 서서히 깨달았다.

고요는 도망쳐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천천히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걸.


조용히 걸음을 옮기는 그 시간 속에서

내 마음은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었다.



다리 위에서 문득 생각한다.


“오늘의 나도 잘 걸어왔구나.”


누구보다 바쁘게 보낸 하루였지만

그 안에서 마음을 내려놓을 몇 순간을 만들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

주머니 속 휴대폰이 잠깐 울렸다.

메시지를 확인하려다 이내 다시 넣는다.


잠시라도 세상과 거리를 두고 싶었다.

대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초승달이 걸려 있다.

어제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모양.

우리의 하루도 그렇다.

크게 다르지 않은 반복 속에서도

조금씩 나아가고,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걷는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조용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하루는 충분히 의미를 가진다는 것.


그리고 짧은 동행의 온기가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머문다는 것.


이제 걷는다는 건

단순히 이동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돌보는 시간이 되었다.


일의 무게가 조금 덜어지고,

생각이 조금 느려지고,

그 느려진 틈 사이에서

나는 다시 나 자신에게 돌아왔다.



고요는 멀리 있지 않았다.

매일 같은 길 위에서,

익숙한 풍경 속에서,

그저 나를 바라봐 주는 마음 안에 있었다.


오늘도 나는 걷는다.

내일의 나를 만나기 위해.



“삶은 멈춰 서 있을 때 더 깊어진다.

그리고 그 고요 속에서,

비로소 나를 듣게 된다.”

— Hyuns Note




본문하단 이미지.jpg


이전 11화다시 나를 향해 걷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