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노르웨이 사람들의 장바구니
노르웨이에 도착한 첫날, 일정은 간단했다.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 잠시 밥을 사 먹고, 숙소에 가서 푹 쉬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예상치 못하게 너무 춥다 보니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빨리 숙소로 가서 쉬고만 싶었다. 과감하게 일정을 바꾸고, 마지막 날 먹으려고 했던 라면을 뜨끈하게 끓여먹기로 했다. 그리고 숙소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과일과 채소 몇 가지를 사기로 했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많이 본 식료품 마트는 KIWI와 REMA1000이었다. 숙소 근처에 마침 KIWI 마트가 있어 들렀다.
"어우 추워~"
아이 몸을 꽁꽁 싸매고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마트 안은 깔끔하고 또 풍성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소비세가 25%까지 되기 때문에 외식보다는 집밥을 많이 해 먹는다고 들었는데, 정말 집밥 해 먹기 좋은 음식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샐러드 채소를 고루고루 넣어 팩에 넣어놓은 상품도 있었고, 여러 가지 과일(주로 베리와 망고가 많았다)을 갈아 놓은 샐러드, 정말 많은 종류의 햄과 치즈 그리고 수산물과 수산 가공품들이었다.
몇년 전부터인가 우리나라 마트 수산물 코너에는 '노르웨이산 고등어'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노르웨이는 생선이 많이 잡히겠구나.'
이렇게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정말이었다. 그리고 수산물을 즐기는 나라답게 수산물을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한 제품들이 정말 많이 눈에 띄었다. 그중에서도 내 눈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바로 생선살 스프레드와 생선살 통조림이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빵에 고등어를 얹어 먹는다고 들었는데, 그건 바로 이 통조림이나 스프레드를 얹어 먹는 것이었다. 아이가 통조림을 먹고 싶다고 해서 정어리와 올리브 유로 만든 통조림을 먹어봤는데 우리나라의 참치캔처럼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었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제품은 토마토와 생선으로 만든 통조림이라고 하는데, 참치와 토마토를 버무린 맛 같다고 생각하면 정말 맛있을 것 같다. 그리고 생선살 스프레드란 생선살을 곱게 가공해 치약처럼 생긴 튜브에 넣어 만든 것이다. 이걸 쭉 짜서 빵에 올려 먹는다고 하는데 이런 방식도 생선을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노르웨이 마트에서 생선을 사볼까 하고 서성거렸지만 숙소에 비린내가 너무 심하게 날 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좀 망설여졌다. 그런데 한편에 fish kaker고 쓰여 있는 걸 발견했다. 생선으로 만든 케이크라고? 그럼 생선을 다져서 패티처럼 만든 건가? 하고 하얀 제품을 골랐다. 숙소에 와서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살짝 두르고 구워보니 많이 통통한 생선 전 느낌이 났다. 뼈가 없다 보니 먹기도 쉽고, 다 다져서 모양을 잡아놓은 것이다 보니 요리하기도 편했다. 이런 식으로 노르웨이 사람들이 수산물을 자주 접하고 맛보겠구나 생각하니 그 사람들이 조금은 더 부러워졌다.
또한 눈여겨볼 점은 수산물만큼 유제품의 종류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여행하면서 정말 많은 양과 염소들을 길에서 보았고, 소들은 풀어 키우지 않아 몇 마리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낙농업의 규모가 정말 큰 것 같다는 짐작을 했다. 슈퍼마켓에서 보았던 대부분의 유제품들은 'TINE'라는 회사 제품이었는데, 이 회사는 노르웨이의 13,000명이 넘는 낙농업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는 회사라고 하니 그 규모를 대략 짐작해 볼 수 있겠다.
노르웨이에서 유명한 유제품은 바로 '브라운 치즈'다. 여행을 하면서 염소를 키워서 치즈를 만드는 농가에 가서 그들이 직접 만든 브라운 치즈를 맛본 적이 있는데 맛이 엄청 진해서 놀랐다. 첫맛은 캐러멜 같은데 끝 맛은 꽤 눅진했다. 치즈를 좀 더 많이 끓이고 발효해서 갈색이 나도록 만든 것이라고 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아침에 크래커나 빵에 브라운치즈를 올리거나 생선스프레드를 올려 아침을 먹는다고 한다. 선물용으로 그 집에서 두 덩이를 구입했다. 그리고 나름 냉장보관을 한다고 숙소 여기저기를 이동하면서 냉장고에 넣곤 했는데, 그만 중간에 머물던 숙소에 치즈를 두고 나오고 말았다. 아쉬운 대로 마지막 날 숙소 근처에서 장을 보면서 'TINE'회사에서 만든 브라운 치즈 덩어리를 샀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다. 오히려 농장에서 맛보았던 것보다 좀 더 순한 맛이어서 한국 사람들이 잘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노르웨이 유제품에서 눈에 띈 것은 '락토프리' 유제품이 대중화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화가 잘되는 우유' 같은 몇몇 제품들로만 한정되어 있는데 반해 노르웨이에서는 락토프리 우유는 물론, 요거트, 쿠키, 빵에 이르기까지 락토프리 제품이 우유로 만든 거의 모든 제품에 포함되어 있었다. 유제품을 즐기는 사람들 답게 이런 부분에서 굉장히 앞서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중에 우리는 거의 매일같이 요거트를 사 먹었다. 화장실을 잘 가야 여행이 편안하니까. 그런데 유제품 질이 정말 좋았다. 아이는 매번 거의 바닐라나 초코 맛을 골랐는데 맛보니 그리 달지 않았다. 어느 날은 실수로 초코 맛인 줄 알고 그래놀라가 섞인 요거트를 골랐는데 그래놀라와 견과류가 상당히 실하게 들어가 있어서 놀랐다. 그리고 플레인 요거트는 정말 맛있었다. 요거트를 먹고 우리 세 가족 화장실을 잘 다녀왔으니 그 효능도 의심의 여지가 없고 말이다.
아참 노르웨이 과일은 베리류 빼고는 대부분 수입해서 오는 것이었다.
"노르웨이에도 오렌지가 있네?"
하면서 골랐던 오렌지는 스페인 산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북유럽 국가들은 1년 중 여름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고, 일조량이 적어서 과일을 키우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이 날은 그걸 모르고 오렌지를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다음날 잘라서 먹어보니 물 건너온 과일이라 그런지 약간 푸석한 느낌이 있었다.
이 날 이후로 나는 거의 매일 마트에 갔다. 어떤 날은 과자를 사러, 어떤 날은 저녁거리를 사러, 어떤 날은 다음 날 점심도시락을 만들 빵과 햄을 사러 말이다. 장보는 일은 참 즐겁다. 특히 다른 나라에서 내가 접해보지 못한 식재료를 만나는 건 더 색다른 일이라서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