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노르웨이의 입국심사는 세계 최고다. 여러 면에서
장장 19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을 극복하고 우리 가족은 무사히 오슬로 가르데르모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근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입국 심사를 받으러 가고 있는데 사람들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뭐지 이 불길한 느낌은?'
줄은 크게
1. 노르웨이 18세 이상 국민이며, 전자 출입국 등록을 한 사람
2. EU 가입국 국가 사람
3. 그 외 사람
이렇게 나뉘어 있었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3. 그 외 사람 줄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게다가 우리는 카타르 항공을 타고 온 터라 대가족이 많은 중동국 사람들이 대부분 앞줄에 있었다. 오슬로 공항의 출입국관리사무소 사람들은 이제까지 봤던 출입국 관리사무소 사람들 중 최고였다.
무지하게 (선별적으로) 꼼꼼했다.
내 앞 줄의 중동국가 가족 한 팀을 심사하는 데 거의 30분이 넘게 걸렸다. 아니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고 해도 맞을 것이다. 우리가 심사를 다 끝나고 갈 때까지 한 가족이 다 마치지 못했으니까. 여권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면서 어떤 나라에 갔었는지, 왜 갔었는지를 꼼꼼하게 물어봤다. 누가 봐도 외국 여행에 신이 난 부유한 가족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른부터 아이까지 정말 꼼꼼하게 체크를 했다. 하지만 유럽 국가 사람이거나 미국 사람의 경우는 달랐다. 정말 빠른 입국 심사가 이뤄졌다. 살짝 인종차별의 냄새가 나기도 했다만, 테러 위험국이니까 그런가 보다 싶었다.
근로시간 준수에 진심이었다.
사람이 엄청나게 많이 밀려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팀의 심사가 끝나면 출입국 관리소 사람들은 조용히 블라인드를 쳤다. 그리고 3~5분 정도 쉬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나라 같으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싶었다. 비행기 하나에서 사람들이 내려서 2시간째 입국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데도 칼같이 휴게 시간을 지켰다. 빨리빨리가 익숙해진 한국인인 나로서는 정말 답답해 죽을뻔했다. 하지만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그게 노르웨이 시간이라는 걸.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다행히 유럽 국가들 심사가 다 끝나서 우리는 유럽 심사관 쪽으로 가게 되었다.
"Hi Hi~"
심사관은 웃음을 한껏 머금었지만 의심스러운 눈빛은 거두지 않은 채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봤다.
"여행으로 온 거냐, 비즈니스로 온 거냐?"
"여행이야."
"어디로 갈 건데?"
"노르웨이 이곳저곳을 둘러볼 거야. 게이랑에르랑 등등."
"얼굴 좀 보여줘. 참고로 이제부터는 마스크를 안 써도 돼."
"응 여기, 우리 아기 얼굴도 보여줄게."
"어디서 머무를 거야?"
"호텔은 여기저기에 있어. 말했다시피 우리가 여러 군데를 돌아다닐 거라서."
"아. 그랬지! 알겠어."
"언제 돌아가?"
"14일에 돌아가."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 좀 보여줄 수 있어?"
"응 여기 예약 내역이야."
꼼꼼하게 준비해서 프린트까지 해서 망정이지, 돌아가는 비행 편이 뭐냐고 물어봤을 때는 정말 이런 것까지 물어보냐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저런 절차에 불만을 가졌지만 열심히 대답하고 있는 와중에 심사관이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다.
"너희 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잘 없지? 아마 생소한 경험일 거야. 우리는 이렇게 시골 나라까지 사람들이 오는 이유에 대해서 정말 궁금(curious)해. 그래서 입국심사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거니 이해해줘."
"응 알겠어."
"심사는 다 마쳤어. 게이랑에르 구경도 잘하고~ 모쪼록 좋은 여행돼!"
"고마워!"
이렇게 한 10분 정도 걸려서 우리의 입국 심사가 끝이 났다. 이 때는 ‘시골’ 이라고 노르웨이를 지칭한 심사관의 말이 잘 이해는 되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차차 깨달았지만 말이다. 남편은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신뢰성이 대단해서 입국심사는 프리패스할 거라고 자신만만했지만, 노르웨이는 그 예상을 보기좋게 빗나갔다.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한국인들의 입국심사는 미국인들보다는 많이 걸리고, 중동국가 사람들보다는 많이 짧게 걸린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심사관 말대로 세 가족 모두 마스크를 벗고 노르웨이 공기를 마셨는데
"으앗! 너무 춥잖아!!"
노르웨이 기온이 영상 25도까지 오른다는 일기예보를 체크하고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온 우리는 바로 추위에 시달렸다. 일단 공항이 오슬로 시내와는 40분 정도 떨어진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고, 그날이 햇살이 따스한 날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온이 15도 언저리였던 것 같다.
"노르웨이의 여름은 여름이 아니네!"
아이가 추울까 봐 내 목도리와 외투를 둘둘 둘러준 뒤 우리는 짐을 찾으러 바깥으로 나갔다.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 비행기의 짐들은 모두 공항 맨 바깥쪽 멈춰진 컨베이어 벨트에 서 있었다. 그렇게 많은 캐리어들이 벨트 위에 가만히 있는 광경이라니. 살면서 처음 봤던 풍경이었다.
부랴부랴 우리 짐을 챙기고 화장실에 잠시 다녀오고선 렌터카를 찾으러 갔다. 렌터카 찾는 것은 아주 쉬웠다. 렌터카 업체들이 공항과 연결된 곳에 모여 있었고, 안내도 잘 되어 있었다. 렌터카 업체 창구로 가서 우리 이름을 대고 국제 면허증과 한국 면허증을 같이 주니 몇 가지 사항만 체크하고는 바로 차 키를 내어주었다.
신기한 것은 바로 그다음이었다. 아이 카시트도 함께 예약했던 우리는 밖으로 나가서 카시트 담당 직원을 만나게 되었는데, 아이 나이를 말해 주었더니 자신은 어떤 카시트가 좋을지 모른다며 우리에게 알아서 가져가라고 하는 게 아닌가.
"흠.. 여기 사람들은 별다른 체계가 없구나. 허허"
그래서 그중에서 가장 적당하고 비싸 보이는 카시트를 골랐다. 안전을 위해(?) 카시트 설치도 직접 하란다. 다행히 설치가 쉬웠던 카시트인지라 남편이 가볍게 카시트를 설치하고서는 짐 정비를 조금 하고 우리는 바로 첫 번째 목적지인 릴레함메르(Lillehammer)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