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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이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된다

새삼 깨달은 것들

by 서이담

인스타그램에서 배려는 지능의 문제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아… 정말 그런 건가?‘ 싶었는데 요즘은 ’정말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내게 일어났던 몇 가지 일들 때문이다.


몇 주 전, 주말에 잠시 집을 비웠다가 돌아왔다. 남편과 아이가 없길래 연락을 해보니 집 근처 키즈카페에서 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구나. 하고 외출하면서 가져온 것들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다급한 전화 벨소리가 들렸다. 정리하느라 받지 못했는데 몇 번 더 전화가 오고는 끊어졌다. 그리고는 카톡 하나가 왔다.


[재민이가 팔이 부러진 것 같아. 앰뷸런스 불렀어요.]


놀랐다. 남편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아이와 키즈카페에서 놀다가 순식간에 아이 팔을 접질렸는데, 아이가 너무 아파하는 걸 보니 팔 뼈 어디 한 군데가 부러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곧 구급차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혹시 바로 수술을 하거나 입원을 해야 할 수 있으니 집에서 짐을 싸서 뒤따라 가기로 했다.


짐을 싸서 병원에 가 보니 상황이 말이 아니었다. 아이는 울고 있고, 남편은 반쯤은 정신이 나가 있었다. 많이 놀랐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오니 오히려 침착해졌다. 의사는 엑스레이를 찍어 보더니 아이 팔을 맞춰봐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아이 팔을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더라도 부러진 팔을 그대로 두면 붓기가 심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처치실로 아이를 옮기더니 마취도 하지 않은 채 뼈를 맞추기 시작했다. 아이는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흐느끼며 소리를 질렀다. 나와 남편은 아이의 팔과 다리를 붙잡고 버텼다. 그리고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뼈가 맞춰지지 않았다고 했다.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잠시 침대로 가 대기하라는 이야기를 했다.


조금 대기를 하고 있는데 의사가 다시 우리 자리로 왔다. 의사는 담당 전공의 선생이 지금 자리에 없어 월요일에나 돌아오는데, 돌아와서도 아이 수술이 긴급도나 중요도가 낮아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이인지라 뼈가 바로 자리를 잡을 수 있어 빨리 수술하는 게 필요한데, 이 병원에서는 수술 스케줄이 언제 잡힐지 모른다고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저희는 병원을 소개해드릴 수는 없어요. 보호자 분께서 직접 찾아보셔야 해요. 이게… 의료법 위반이어서요.”


가능할 줄 알았다. 해야 하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여러 응급실에 전화를 돌려봤지만 모두 ‘전원(병원을 옮기는 것)에 관련된 것들은 의사 선생님들 간에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라는 답을 주었다.


‘아니 분명 법 때문에 우리가 병원을 알아봐야 한다고 했는데 이건 무슨 소리람?’


아득한 구덩이 같은 데에 빠진 기분이었는데 문득 한 줄기 희망처럼 같은 팀 동료의 남편이 정형외과 의사라는 게 생각났다.


‘그 병원에라도 수술이 가능한 지 물어볼까?’


그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이러이러한 상황이라고 그래서 병원을 빨리 찾아야 하는데 지금 방법이 없어서 근무시간이 아닌데 연락했다고. 미안하다고. 혹시 알아봐 줄 수 없냐고. 그랬더니 그 친구가 고맙게도 바로 전화를 주었다. 의사였던 남편이 전화를 바꾸어 받더니 지금 현재 상황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차라리 소아정형외과가 있는 A, B 병원 응급실로 바로 찾아가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고마웠다.


전화를 끊고 나서 문득 이 친구와 내가 이렇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라는 게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만약 직장에서 원수가 되었다면, 언성을 높이는 사이라면 이렇게 연락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친구의 남편이 의사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이렇게 연락을 하리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살다 보니 이렇게 도움 받을 일도, 저렇게 도움 줄 일도 있었다.


직장에서 타인 그러니까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겪으면서 나는 그를 욕하면서도 조금은 부러워했다. 저럴 수 있다는 것이, 저렇게 앞뒤 가리지 않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게 내게는 없는 부분이라 그랬다. 그런데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다른 걸 배웠다.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건 그가 자신감이 넘쳐서라기보다는 근시안적 사고를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상대방이 적이 되거나 방어적이 될지라도 자신은 아무 영향이 없다고 생각하는 오만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어쩌면 그 근시안적인 시각과 오만함 때문에 충분히 도움을 청하며 나아가야 할 일도 도움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나를 깎아가며 어처구니없는 일에도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대응하고 도움이 필요한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당시에는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상대방도 내게 호의적으로 변하며, 호의적으로 변한 상대 혹은 그 상대의 부서 사람들에게 신임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협업의 기초를 차근차근 쌓아가게 된다. 어쩌면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뜻하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이걸 일찍부터 깨달은 사람들은 이를 실천하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조금 늦게나마 깨닫게 된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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