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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Feb 26. 2024

옴팡지게 눈 뒤집어쓴 날

이럴 때도 저럴 때도 있는 게 인생

조금 춥다 했더니 밤 사이 눈이 소복이 왔다. 많이도 쌓였다. 온 세상이 크리스마스가 다시 온 듯 하얗게 변했다. 아파트 정문을 나서는데 아름다운 풍경에 기분이 좋아졌다.


“안녕하세요~”


눈을 열심히 치우고 계시는 경비아저씨께 인사를 드렸다. 눈이 조금 쌓여있긴 했지만 아저씨가 열심히 치워주신 덕분에 걸을 만한 길이 있었다. 조금 걸어 아파트 단지를 지나니 길이 사라졌다. 대신 누군가가 먼저 밟은 발자국을 길 삼아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에도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우산까지는 챙겨 오지 못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버스 정류장 바로 앞으로 차가 훅 지나갔다.


“악!”


순식간에 길에 얼음과 물 그리고 검댕이 뒤섞인 물이 파도처럼 쏟아졌다. 타이어 열 때문에 살짝 녹은 축축하고 더러운 물과 얼음이 몸에 확 튀었다. 점퍼에 검은 얼음 덩어리가 달라붙었다. 더 심각한 건 점퍼가 차마 가려주지 못했던 발목 부분이었다. 차갑고 검은 물이 내 발목을 타고 양말로 들어가는 게 너무 느껴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내 앞 뒤에 있던 사람들 모두 같은 상황이었나 보다. 다들 옷을 털고 우산을 고쳐 썼다. 버스정류장 바깥쪽에 있던 줄이 인도 안쪽으로 훅 당겨졌다.


“허허허”


당황했지만 일단 웃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렇게 파도만 한 눈을 맞았는데 새로 산 점퍼 덕분에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생각은 내 맘대로니까. 조금 지나니 버스가 왔다. 조심조심 눈을 피해 버스에 탔다.


‘오예!’


출근길 버스엔 항상 자리가 없었다. 아주 가-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만 앉아서 갈 수가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나는 따뜻한 버스 뒷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눈을 옴팡 뒤집어쓰다가도 따뜻한 자리에 앉아서 가게 되는 것, 그게 바로 인생인 건가.‘


눈을 뒤집어썼다고 해도 빈자리가 없다는 보장은 없다. 빈자리에 앉았다고 해도 눈을 다시 뒤집어쓰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나쁜 일이 있으면 곧 지나간다는 것을 명심하고 잘 흘려보내고, 좋은 일이 있으면 마음껏 즐겨야겠다. 그리고 지금은 따뜻한 자리에서 잠깐 눈 붙일 수 있는 이 시간을 즐겨야겠다.


이 생각을 하고 곧 눈을 감았다가 출근을 했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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