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함은 탄수화물에서 나온다

-읽는 라디오

by 하쿠나 마타타

오프닝

남보다는 나에 대해서 내가 잘 알아야 합니다.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어느 시점에서 화가 나는지, 어느 지점에서 눈물이 나는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뭔지, 내가 좋아하는 장소는...... 나에 대해서 내가 잘 알아야 감정 조절도 되고, 주변인들도 편안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남의 눈치 보느라 정작 나에 대해서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생각해 봅니다.



음악

-마야 (나를 외치다)

마야 - 나를 외치다 ㅣ Lyrics / 가사



사연

아이가 하교 들어온 시간이 3시가 다 되었습니다. 아이가 오면 되도록이면 나와서 맞이해 주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혼자서 문 따고 들어와서 대부분 혼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기억이 싫어서 재택근무를 택한 것입니다. 일은 하고 있지만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가 있으니까 재택근무의 장점이지요.

학교에서 열심히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온 아이를 있는 힘껏 안아주면 아이도 좋다고 하고, 저도 아이로 인해 잠시나마 힐링이 됩니다.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아이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소중합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해야 공부를 하고 줄넘기 학원을 가야 하기에 온전히 볼 수 있는 건 저녁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와 웃으며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몸에 기운이 없어서 일어나기가 어려웠습니다. 아이가 저에게 와서 "엄마, 무슨 일 있어?"라고 했지만 아무 일없다고 했습니다. 정말 아무 일 없었습니다. 단지, 기운이 없었을 뿐.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데 괜스레 짜증이 났습니다. 아이의 이야기에 집중을 못한 건 저였는데 괜히 아이에게 "그게 무슨 말이야?"라는 짜증을 부렸습니다. 아이는 다시 천천히 말해주었지만 여전히 저는 집중을 못했습니다. 인상을 쓴 채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제 표정이 거울에 비쳤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표정을 아이가 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이라면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 엄마에게는 어떠한 말도 하기 싫을 것 같았습니다. 바로 일어나서 "엄마 물 한잔 마실게."라고 자리를 떴습니다. 아이는 잘못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제가 잠시 숨 고르기를 해야겠다 싶어 한 행동입니다.

물 한 모금을 마시면서 '내가 대체 왜 그러지?'라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던 것도 아닌데 내 우주인 아이에게 괜한 짜증을 부리고 있는 이유를 찾아내야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침에 눈떠서 커피를 제외하고 먹은 것이 없었습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났으니 10시간 넘도록 빈속이었으니 까칠해질 만도 했습니다. 바로 아이에게 "엄마가 배가 고프네. 아침부터 먹은 것이 없다 보니 괜히 짜증이 났어. 미안해."라고 바로 사과를 했습니다. 저는 잘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사과는 빠르게 합니다. 아이에게도 그렇게 합니다. 아이가 생각하는 엄마의 장점 중 대표적인 것이 빠른 사과라고 할 정도입니다. 사과할 일을 만들지 않으면 되는데 그건 쉽지가 않습니다.


아이에게 말을 하고 바로 밥, 김과 김치만 꺼내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아침은 그렇다 쳐도 점심을 거른 걸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혼자 있다 보니 이런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래도 집에 있는 귤이나 과자 한 봉지는 까먹는데 오늘은 그런 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먹고 나니 기분이 한 껏 좋아졌습니다. 결국은 배고파서 짜증이 났고, 그 짜증은 아이에게 부린 못난 엄마가 되어 버렸습니다. 엄마가 배고파서 그런다는 걸 이해해 주는 어른스러운 딸이라 더 미안해집니다.


친절함은 탄수화물에서 나오나 봅니다. 탄수화물이 들어가니 표정도 부드러워지고, 날 선 말투도 없어집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눈은 다시 하트 필터가 끼워지고, 아이가 왔을 때 못한 포옹을 합니다.


이렇게 나에 대해서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주변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내가 왜 그런지 알아차림 하나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달라집니다. 평소에 나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정리해 두면 힘든 상황이 빨리 정리되기도 합니다. 내가 어느 시점에서 힘들어하는지, 그 힘들어함을 극복하기 위해 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좋아하는 음식을 먹거나, 좋아하는 장소에 가면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지를 생각해 보면서 나를 알아갑니다. 남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사는데 나에 대해서 잘 알아야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음악

-옴므 (밥만 잘 먹더라)

Homme (창민, 이현) - 밥만 잘 먹더라 [가사/Lyrics]



클로징

단출한 밥상이었지만 먹고 상황을 바꿀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까칠함이 지속되어 아이에게 더 큰 상처를 주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이제는 아이가 오기 전에 아주 허기진 모습으로 아이를 맞이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이렇게 또 하나를 다짐합니다.

오늘도 수고 많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큰 행복을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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