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여행기
11월 마지막주 토요일 오후, 우리의 결혼식을 축복해 주듯 봄처럼 따스한 햇살이 결혼식장인 성당 곳곳을 비춘다.
분주했던 결혼식을 마치고 친구와 가족들의 배웅을 받고 2시간을 달려 공항에 도착한다.
밤늦은 시간의 공항 내부는 조용하고 한가하다. 의자에 앉아 남편은 내 머리에 촘촘히 박힌 실핀들을 빼준다.
신혼여행지인 필리핀 세부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은 시각이다. 호텔에 들어가 침대에 그대로 쓰러진다.
새벽부터 신부화장을 하고 하루종일 결혼식을 하고 세부까지 오느라 몸이 녹초가 되었다.
포실포실한 촉감의 흰색 린넨 이불속에 쏙 들어가 있으니 포근하고 시원하다.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든다.
아침에 눈을 뜨니 레이스 커튼사이로 황금빛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고요한 호텔방에 남편과 단둘이 누워 있으니 참 행복하고 편안하다. 이제야 결혼한 실감난다.
아침을 먹고 호텔 비치로 나가니 에메랄드 빛 바다와 푸른 하늘이 눈부시다.
이렇게 맑고 깨끗하고 강렬한 햇살은 처음이다.
우와!!! 하늘 좀 봐~.
동남아라 햇살이 이렇게 강렬한가봐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물속에 들어가니 깊지도 않고 물도 따듯하고 놀기에 딱 좋다.
신이 난 우리 둘은 바다속에서 몸을 담그고 놀다가 비치에 구비된 2인용 보트에 올라탔다.
보트에 누우니 무심히 피어오른 하얀 몽게구름과 티하나 없는 파아란 하늘이 천국이 따로 없다.
깨끗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고요한 바다위에 떠서 세월을 낚는 강태공처럼 한가로이 시간을 보냈다.
비치에는 우리 단 둘 뿐이라 마치 우리가 비치를 전세 놓은 것만 같다.
"사람들이 없네~"
"한가해서 더 좋다."
남편과 수다를 떨며 비치 의자에 앉아 총천연색 열대 과일이 듬뿍 들어있는 새콤달콤한 생과일 쥬스도 맘껏 먹고 오후를 즐겼다.
저녁무렵 원없이 놀고 호텔방에 들어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여기저기 몸이 따깝다.
몸을 살펴보니 피부색이 빨갛게 변해 있다.
그제야 알아 차렸다.
그 이쁜 비치에 왜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는지를...... 흑흑
몸이 따끔거려 이불이 닿을 때마다 괴로웠다.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아팠고 우리 둘은 밤새 차렸 자세로 얼음 상태가 되어 누워있어야했다.
다음날 호핑투어가 예약되어 있었지만 옷이 피부에 스치기만 해도 쓰라려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금쪽같은 신혼여행 하루를 속절없이 방에서 날렸다.
그 후 남편과 나는 햇볕이 무서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덮고 다녔다.
17년전, 동남아 여행을 처음했던 우리 부부의 화상 해프닝은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남겼다.
얘들아~
햇볕에 나갈때는 썬크림 꼭 발라야 한단다.
10주년 기념으로 신혼여행지를 다시 찾자고 약속했지만 바쁜 일상에 밀리고 여건이 여의치 않아 지키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20주년 때는 꼭 다시 세부를 찾고 싶다. 그 때는 코로나도 종식되기를 소망한다.
"여보~~옹
우리 다음 여행때는 낮보다 밤에 더 뜨겁게 보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