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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햇살 코치 Sep 09. 2022

돈과 화해하다

나쁜 기억에서 자유로워지기

"엄마, 나 아이펜슬 사야겠어."

딸이 거실로 나와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순간 딸에게 사줬던 패드용 펜슬이 떠오른다.

"너 펜슬 있잖아?"

"어 그건 그림 그리려고 산거고. pdf에는 잘 안 써져."


딸의 대답에 머릿속에 돈이 떠오르며 표정이 굳어진다.

  "쓸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냐? 무슨 펜을 또 사?"

나도 모르게 목소리 톤을 높여 말한다.


"아니, 그게.... 기존 펜은 정교하지 않아서 글씨가 잘 안 써진다고!!!"

딸은 짜증을 내며 쌩하니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는다.


내가 보기에 불필요한 것들을 사달라고 할 때면 자주 오고 가는 대화다.

딸이 무언가를 사달라고 하면 마음부터 무거워진다.

'아이패드용 펜슬은 몇십만 원 할 텐데....."

가격을 지레짐작하고, 걱정이 앞선다.

아이와 실랑이할 것을 떠올리니 벌써 머리가 아파온다.

 


얼마 전 아이가 물었던 말이 떠오른다.


"엄마는 돈은 안 써야 한다고 생각해?"

"아니, 필요한데 써야 한다고 생각해."


내 대답에 아이가 말한다.

"엄마는 너무 인색해. 엄마를 보면 돈을 쓰면 안 될 것 같아."


아이의 말을 되새기며  내 모습을 돌아본다.

'내가 그렇게 보이는구나. 내가 정말 그런가?'


돈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떠올려본다.

-돈은 중요하지 않아.

-돈을 좇는 건 고상하지 않아.

-돈은 나쁜 거야.

-돈은 아껴 써야 해

-나는 부자가 될 수 없을 거야.

-돈을 버는 건 어려워


돈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그동안 돈에 연연하지 않으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 밑바닥에는 '돈이 부족하다'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여있었다. 여우의 신포도처럼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외면하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어린 시절을 반추해 보았다.


어린 시절 가장 싫은 일은 아버지에게 돈을 달라고 말하는 거였다. 학교에서 필요한 용품이 있어 돈이 필요할 때면 그날부터 걱정이 시작된다.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하지? 돈 없어서 못준다고 하시면 어쩌지?'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버지의 눈치를 살핀다. 용기를 내 말을 꺼내려는 순간, 아버지의 찡그린 표정과 짜증석인 목소리가 머릿속에 떠올라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그대로 꿀꺽 삼킨다.

그렇게 하루 이틀 망설이고 망설이다 결국 당일 아침 책가방을 매고 말하곤 했다.

"그런 게 있으면 미리 말을 해야지. 학교 가는 날 아침에 말을 하면 어떡하냐?"

예상대로 아버지는 화를 내시고 나는 눈물이 글썽거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못 하고 아버지 앞에 서있다.


한 번은 작업복을 입고 방에 서 계시던 아버지가 바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만 원짜리 두장을 던져주셨다. 구겨진 지폐 두 장이 휘리릭 바닥에 떨어졌고 나는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굽혀 그 돈을 주웠다. 때 묻고 구겨진 지폐가 내 마음처럼 여겨져 자괴감이 느껴졌다. 그 순간의 느낌은 돈에 대해 가장 또렷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원초적 수치심, 신경증적 죄책감, 근본적 무력감은 아동기에 부정적 경험을 겪은 사람들의 핵심 감정이 된다. 일반적인 감정은 어떤 자극과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데 비해 핵심 감정은 자극과 상황에 상관없이 마음의 바탕을 이룬다.
- 나는 왜 나를 함부로 대할까, 문요한


아버지가 화를 내며 주시는 돈을 말없이 받아야만 할 때 느껴지는 수치심, 괜히 내가 돈을 달라고 해서 아버지를 화나게 했다는 죄책감, 학생인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 차곡차곡 쌓아졌다. 그리고  '우리 집은 가난해', '나는 돈이 부족해'라는 생각을 나았고 성장해서 어른이 되고 가정을 이룬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수십 년도 더 지난 일이고 아버지는 이 세상에 계시지도 않건만, 어린 시절 경험을 사진으로 찍어 저장해 놓고 지금도 내 안에서 무의식 중에 재현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과거에 머물면 우울해지고 과거 경험과 신념을 미래에 투사하면 불안해 지기 마련이다. 인간의 뇌는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옛날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은 동굴 속에 비친 그림자를 현실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고도 말했다.


나는 지금 과연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조용히 자문해 본다.

동굴 밖으로 나와 지금, 여기를 살고 싶다.


과거와 작별하기 위해 어린 시절 기억 속 장면을 떠올린다. 그 장면을 한 장의 흑백사진으로 바꿔 액자에 끼우고 저 멀리 마음으로 보낸다. 사진은 점점 작아서 점만해 지더니 이내 사라진다. 사진과 함께 돈에 대한 부정적 생각도 희석되어 답답한 마음이 가벼워진다.


"돈아~ 그동안 미워해서 미안해. 사실 나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딸이 보낸 구매 링크를 눌러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펜이 훨씬 저렴했다. 펜을 사주고 열린 마음으로 딸과 대화를 마무리하니 마음이 상쾌하다.


#돈 #명상 #nlp #나쁜기억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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