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마음이 급합니다.
안부 전화드릴 때마다 어머니께선 손주 소식을 궁금해하셨다.
"네, 어머니. 네네 현용이 아직이요 (...... 어머 그러니? 아... 이제 두 돌도 지났는데, 어째 이리 늦지?......) 그러게요. 다음에 병원 갈 일 있을 때 선생님께 한번 여쭤볼게요. 너무 걱정 마세요. 네 어머니.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와 통화하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 마음도 조급하긴 마찬가지였다. 첫째는 두 돌이 되도록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육아서에는 두 돌쯤에는 보통 두 단어가 연결된 간단한 문장을 만든다고 쓰여 있었다. 아무리 아이마다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두 돌이 되도록 단어 하나도 제대로 말 못 하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속도 터지고, 혹시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맨날 책도 많이 읽어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하루 종일 말도 많이 해주는데 뭐가 문젤까... 예방접종을 맞으러 간 길에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선생님, 근데 현용이가 말을 안 하네요."
"의사표현을 전혀 안 하나요?
"모든 것을 '으흥~으흥~'이라는 이상한 소리로 표현해요. 제가 못 알아들으니까 짜증내고, 벽에 머리를 쿵쿵 박아서 이마에 멍이 들고 그래요. 정말 너무 힘드네요. "
"음... 이제 두 돌 되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고 6개월 후에도 아이가 말을 하지 않으면 그때 다시 병원에 한 번 나오세요."
6개월이 지나자 아들은 좀 더 다양한 손짓, 발짓을 하고, '엄마'라는 한 단어를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게 다 였다. 그 외의 단어는 아무리 가르쳐도 따라 하지를 않았다. 여전히 '으흥~ 으흥~' 하는 특이한 소리를 내며 모든 물건과 사람을 '으흥~'으로 불렀고, 짜증과 문제행동은 점점 늘어만 갔다.
결국 다시 병원을 찾았고 의사 선생님은 언어치료 선생님께 가져갈 서류에 사인을 해 주셨다. 클리닉에서 만난 치료사는 부모가 가정에서는 한국말을 사용하고 밖에 나가면 영어를 사용하는 이중언어 환경에 살고 있어 아이가 혼란스러워 언어지연이 나타난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종종 이런 경우가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치료를 해보자고 했다. 몇 가지 테스트를 하고 상담을 한 후 우리는 주 2회 언어치료를 시작했다.
언어치료시간에 뭔가 아주 특별한 걸 하는 것은 아니었다. 두 돌 반 된 아이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았다. 그래서 수업을 길게 못하고 30분씩 진행했는데 보통 2-3개의 활동을 했다. 처음 시작은 색을 가르치는 것부터였다. 치료사의 말로는 색깔이 시각적으로도 눈에 띄는 자극이라 아이들이 처음 배우기 좋은 단어들 이라고 했다. 색색의 동그란 플라스틱 코인 중 두 개를 양손에 골라 들고는 치료사가 묻는다.
"어떤 게 빨간색이지? 하나 골라볼까?"
아이가 하나를 고르면 그 색을 정확한 발음으로 입을 크게 해서 말을 하며 보여준다. 그렇게 여러 세트를 반복한다. 나중에는 아이가 단어를 따라 할 수 있게 계속 유도하며 따라 하지 않으면 다음 문제로 넘어가 주지 않았다. 그다음은 역할놀이, 사인 랭귀지로 표현하기, 동물농장 놀이 같은 것을 했었는데 치료사는 아이가 하는 놀이에 내레이션을 붙이듯이 계속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 아, 사자는 거기에서 놀고 싶었구나', ' 우와~ 토끼는 자동차를 타고 가는구나.'와 같이 아이의 행동이나 생각을 계속 말로 표현해 주었다. 치료사 선생님이 놀이시간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이가 놀이를 스스로 이끌어 가는 것이었다.
치료사 선생님이 언젠가 하루는 나에게 "It takes two to talk (대화를 하려면 두 사람이 필요해)"를 빌려주시며 꼭 읽어보라고 하셨다. 제목을 보는 순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알겠지만 당연히 대화에는 두 사람이 필요하다. 아이가 말을 하게 하려면 둘이 함께 말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나중에 알고 보니 언어치료 쪽의 부모 지침서로 정말 유명한 책이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아이에게 책도 많이 읽어주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노래도 많이 불러주며 아이와 놀아주려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혼자 하는 것이지 아이와 함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초보 엄마는 아이와 놀아준다며 '엄마의 마음에 드는 활동'을 아이에게 주입시켰었다. 아이가 하고 싶은 쪽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고, 엄마 구미에 맞는 활동을 골라(혹은 아이가 배웠으면 하는 것들을 골라) 아이에게 가르치려고 했다. 육아서와 우아달(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배운 대로 아이의 반응에 기민한 엄마가 되기 위해 아이가 말하기 전에 불편을 해결해 주었고, '으흥, 으흥'으로 말할 때 '물 줄까? 사과? 장난감??' 모든 옵션을 읊어가며 '으흥'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치료사 선생님이 강조하는 것은 기다리기였다. 말을 가르치고 아이와 대화를 하려면 나도 인내심을 갖고 느긋하게 아이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아이가 주도적으로 놀이를 이끌고 아이가 스스로 말을 할 때까지 엄마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했다.
처음 시작이 어려웠지만 한 번 입이 터지고 나니 단어 수가 느는 건 금방이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짧은 책은 외워서 읽기도 하고, 문장도 꽤 자연스러워졌다. 의사표현이 원활해지자 짜증도 줄고 문제행동도 사라져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모른다. 정말 집에서도 열심히 노력한 끝에 6개월 차 언어치료 세션이 끝나고 아이는 더 이상 치료받으러 오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는 엉성한 발음이지만 '반짝반짝 작은 별' 노래를 조금 따라 할 수 있게 되었고, 삼사십 개의 단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지금도 기다려 주는 것과 아이가 이끌어 가는 것 이 두 가지는 여전히 나에게 중요한 양육 포인트이다. 말하기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상황에서 부모는 아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혼자 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부모가 해 주는 게 열 배는 정확하고 백배는 빠를지라도 그걸 지금 당장 해결해 주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아이의 언어 지연과 언어 치료를 과정을 통해 제대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