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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가 Oct 24. 2021

브런치 작가 합격소식을 알릴 수 없는 이유

다른 사람은 괜찮아도 가족은 모르길 바라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우와! 다들 여러 번 도전해야 한다는 브런치 작가 신청에 한 번에?' 

'작가'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작가가 되었구나. 화면을 터치하는 손이 떨려왔다. 

손 끝에서 발끝까지 찌릿했다. 이게 온몸으로 느끼는 희열의 '전율'인가 싶었다.

우울한 날들을 보내던 몇 달 전만 해도 '작가'가 되리라는 상상을 해본 적 없었다. 겉으로는 잘 지내 보여도 속으로는 뭉개져 있는 감정들을 어딘가에 배출해야 내가 살 것 같았다.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고 내 안에 감추고 살았던 이야기를 풀어헤쳤다. 그리고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살포시 문을 두드렸었다.  

'저, 여기 들어가도 될까요?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만....'


'잠깐만, 이 감정을 오래 함께 나누고 싶은데! 누구한테 얘기하지?' 

기쁜 일이라면 당연히 가족에게 제일 먼저 알려야 마땅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비활성화되어있는 SNS에 기록으로 남길요량으로 메일 화면을 캡처한 사진을 업로드했다.  


남편에게 말하지 못한 이유는 그의 반응이 내가 바라는 반응이 아닐 것 같았다. 그는 내 꿈보다는 자신의 일과 돈, 성과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속마음으로는 나가서 돈이라도 벌지라고 내뱉고 있을지도 모른다. 집안일과 육아는 인정받기보다는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사회와 결여된 경력단절녀, 집에서 편히 쉬는 사람, 아내이자 엄마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부모님께 합격 소식을 알릴까? 

'아니야, 알리고 나면 피곤해질 수도 있어.'

내 글을 읽고 괜한 걱정을 할까 신경 쓰인다. 부모에게 말하지 못했던 속사정들을 모두 알고 나면 어떤 마음이실지.. 생각만 해도 먹먹해진다. 

'우리 딸은 글을 쓰는 작가예요!' 하며 체면도 살리고 자랑하는 낙이라도 드리고 싶지만,

내가 쓰게 될 글들은 내 안의 상처, 아픔, 감정 쓰레기들을 꺼내어 치유하며 성장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기에 부모님께 읽어보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공개하기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다.


아이가 잠든 그날 밤, 은은하게 비추는 간접 조명 아래서 맥주 한 캔을 따고서 홀로 축배를 들었다.

"잘했다. 잘했어. 이제 시작이야."  



"너 어디 글 쓴다고 하지 않았어? 엄마도 한번 보자~ 인터넷 어디 들어가면 볼 수 있어?"

작가가 되고 2년이 지났나 보다. 얼마 전 엄마와 통화하면서, 요즘 뭐하고 지내냐는 말에 그냥 글 좀 쓰고 있다고 대충 넘긴 그 말을 엄마에겐 대충이 아니었나 보다. 딸이 어떤 글을 쓰는지 궁금해했다.

하아.. 보여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뭐 대단한 글은 아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에요. 그냥 간단히 어디 카페나 식당 간 곳들에 대해 소개하거나 후기 남기는 거예요.

나중에 보여드릴게요."

"아. 뭐. 그런 걸로도 돈 번다고들 하더라. 너도 그런 거야?"

"아니에요. 그런 건 광고, 홍보 글 올리는 거라서 그런 거와는 달라요"

    

가족에게 말하지 못하는 마음이 씁쓸하고 서글프긴 하지만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눈치 보지 않고 신경 쓰지 않고 진솔한 이야기를 끝까지 써내려 갈 수 있을 테니까.

아는 지인은 살아생전 자신의 모든 기록들을 흔적 없이 지워버리고 싶다고 했다. 이를테면, 학창 시절 사진과 주고받은 편지들, 연애편지, 결혼사진, 휴대폰 속 저장된 몇 년 전 자신의 사진들과 아이 사진들까지도... 조금씩 천천히 비워내는 중이라고 한다. 세상을 떠날 때 '나'라는 사람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살아생전 내 이름을 남기고 떠나고 싶다. 그동안은 꿈도 없이 사는 대로 생각하며 살았다. 무채색에 가깝게 지냈던 날들을 보냈기에 앞으로는 뚜렷한 색채를 가진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내 가족이 글을 보고 신경 쓰고 서로가 불편해한다면 나는 글을 쓰는 소재를 바꿔야 하겠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며 글을 써야 할 테니 말이다. 그럼 글은 내 글이 아니다. 내가 쓰는 글이지만 글 쓰는 행위 자체가 내가 원하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 억지스러움이 되는 것이다. 내가 가진 색채는 점점 옅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오래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이다.

이내 싫증을 느끼고 그만두게 될 것이다.


나의 글로 인하여 공감과 위로, 힘이 되는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는 인정받는 작가가 되고 싶으면서도 가족만은 몰랐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한다. 브런치 작가 합격을 알릴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못된 심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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