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눈물젖은 빵
그때는 국민학교였던 시절, 나 국민학교 6학년때 학교급식이 처음 시작되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두들 점심도시락을 싸와서 점심시간에 옹기종기 모여 먹었었다. 아버지의 택시운전으로 6남매를 키우던 우리집은 다른 친구들의 도시락 반찬에 비해 단조로웠지만 친구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니 그것도 괜찮았다.
서울지역에서 지정되어 시범으로 학교급식을 운영하였던 우리 국민학교에서는 곧 졸업할 6학년에게 우선권이자 선택권을 주었다. 하지만 비싼 급식비를 낼 엄두가 나지 않았던 나는 여전히 도시락으로 점심시간을 맞을 수 밖에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우리 분단에서 나만 빼고 모두들 급식을 받으러 갔었던 기억이 난다. 하필 제일 뒷자리에 앉아서 앞자리가 모두 비어있는 책상을 보고 있자면 어찌할 바를 몰라 멀리 허공을 바라봤었다. 학교급식을 신청해서 먹는 학생의 비율이 높았으므로 각자의 자리에서 급식을 받아 먹었으니 예전과 같이 모여서 먹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그날 옆자리 짝꿍이 받아온 급식에는 밥을 놓는 자리에 빵이 올라가 있었다. 안보는척 곁눈질로 보면서 군침을 흘렸었던 것도 같다. 아직까지도 그 빵의 모양과 샌드되어있던 크림의 향, 심지어 맛있게 먹는 짝꿍의 얼굴도 기억이 난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와 친하게 지냈던 여학생이었는데 이 친구도 아마 내가 신경이 쓰이지 않았을까. 그 빵을 무려 반이나 남겨서 그대로 낸 걸 보면..
밤새 막내 남동생이 아파서 엄마가 늦잠을 자게 된 어느날 도시락 대신 쥐어주신 천원으로 나는 크림빵과 초코렛우유를 사가지고 등교하였다. 늘 그랬지만 그날은 더더욱 점심시간이 빨리 오기를 바라며 오전수업을 겨우겨우 마쳤다. 드디어 점심시간, 나는 자랑스럽게 크림빵과 초콜렛우유를 꺼내어 먹기 시작했는데 그날 왠일인지 새로운 짝꿍은 점심을 먹지 않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나는 고민에 빠졌다. '빵을 나누어 먹어야 할까? 그럼 우유는 어떻게 나누어 먹지? 나누어 먹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고민을 하다보니 나는 이미 빵을 다 먹은 후였고 미안했지만 그렇게 점심시간은 흘러갔다.
종례시간에 선생님이 "친구가 곤란해 하고 있으면 도와주는게 진정한 우정이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는다는 말의 뜻을 알았으면 좋겠구나." 라고 뭉뚱그려서 말씀을 하셨지만 나는 그게 나에게 하는 말씀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종례시간 내내 얼굴을 푹 숙이고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면서 '나도 크림빵 한 개 다 먹어보고 싶어서 그랬는데..'라는 생각과 '그때 나처럼 얘도 참 힘들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기전 짝꿍에게 나눠먹지 않아서 미안했다는 사과를 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던 선생님의 따뜻한 눈빛으로 나는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크림빵하면 떠오르는 이 추억들은 내가 빵을 배우고, 빵을 만들고, 빵을 가르치면서도 종종 생각이 났다. 그때 점심급식으로 짝꿍이 먹던 크림빵은 내가 빵 공부에 관심을 갖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 빵의 폭신함과 크림의 부드러움 등등을 상상하고 꼭 만들어서 먹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내 점심이었던 크림빵은 빵의 순기능인 '나눔'에 대해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말이다. 이는 내가 나중에 아프리카에 가서 현지들과 같이 빵을 만들고 나눌 수 있었던 그 마음을 갖게 해준 씨앗이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