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만 걸친 채로 동생을 만나러 나갔다. 당황한 나는 동생의 머플러를 빌려 허리에 감고 민망함을 감추려고 했다. 흘러내리는 머플러를 추스르면서 그 자리를 떠나지도 못했다.
[겉옷을 입지 않는 것은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자신의 직장에서의 지위나 사회적인 신분에 문제가 생기고 난처하고 힘든 처지에 서게 되는 꿈이다] 검색.
요즘 나는 새로 구한 일자리 때문에 역대급으로 고민 중이다. 앞으로 8년. 내 인생에서 그럴듯한 직업은 이게 마지막일 거라는 다짐으로 구한 일이다. 그 이후에는 입의 풀칠을 위해 몸을 움직이는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을 작정이다. 아직은 부모에게 걱정을 덜 끼쳐야 하고, 엄마의 직업을 말해야 하는 일이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그럴듯하게 보이고 싶었다.
호기롭게 일을 시작했으면서, 3주 만에 항복.
이 시기가 제일 힘들다. 3개월만 지나면 익숙해진다. 나이 들고, 체력 안 되는 너에게 이만한 일도 없다. 허드렛일보다 어디에 말하기도 좋다. 응원의 말이 끊이지 않는다.
세상 물정 모르고 편하게 살아서 그렇다. 네가 먹고사는 게 덜 급해서 그렇다. 다 그 정도 힘은 들여서 일을 한다. 네가 뭘 해 본 적이 없어서 앓는 소리를 하는 거다. 응원의 강도가 심해진다.
나름 합당하게 생각되는 이유를 들어 열변을 토해 보지만 핑계일 뿐이다. 일을 하는 내내- 포기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말하고 싶었나 보다. "정말 이 일이 그냥 하기 싫다"가 아닌, 더 그럴듯한 이유로 타인은 물론 나조차도 납득시키려 했다. 고민하는 시간만큼 나는 솔직하지 못했고, 이유모를 서러움에 우울했다. 챙겨 먹어야 하는 약도 잊고 살았다. 주변은 늘 어수선하고, 일상은 사라졌다.
세상 물정 모르고, 덜 급해서 그렇다는 말이 제일 듣기 싫었다. 나는 ‘듣기 싫다’는 말 대신,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님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리며 그 순간을 모면했다.
그래. 내가 남편 돈으로 살림만 하고 사느라 세상 물정을 모른다. 그렇지만 편하게 살진 않았다. ‘세상 물정 모르는=편안함’의 등호가 성립되는 걸까. 나 역시 다른 전쟁터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네가 힘든 만큼 나도 버텨가며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살았다. (나를 타인에게 설득시키려는 말을 멈추어야 한다. 각자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마음 하나 편하자고, 나머지 편안함을 포기하고 집을 나왔다. 중요한 그 한 가지를 가지기 위해 평생의 모든 용기를 끌어 모았다. 아직도 일상의 편안함을 운운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는 덜 급한가 보다. 나중에 이 일을 안 한 것을 땅을 치며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건 그때 걱정하고 싶다. 어른들이 하는 말,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말처럼 인생이 흘러감을 안다. 그럼에도 남들에게 그럴듯하게, 당연한 명제처럼 하는 말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 걸 하고, 마음 편한 것이 제일 중요해 라고 말하고 살고 싶다. 우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