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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Haru Oct 28. 2022

초라하기 싫어서

점점 초라해지는 기분이다

“아빠, 별일 없죠? 잘 계시죠?”

“오랜만에 목소리 듣네. 왜 이렇게 전화가 없었어?”

“날씨도 너무 덥고 안 하던 일에 힘이 드는지, 퇴근하면 진이 빠져서 아무것도 못하겠어......”

“아무리 피곤해도 전화 한 통이 그렇게 어려워?” / “그러게요......”     


문제. 위의 통화 내용에서 어색한 부분을 찾으시오. 정답은 ‘없다’이다.

나이 든 부모(특히 몇 해 전에 배우자를 먼저 보내고 혼자 있는 아빠)를 챙기라는 말이니, 그의 말은 충분히 합당하다. 나 역시 피곤하고 바쁘다고 해서 전화할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단순히 게으른 탓이요, 어쩌면 하기 싫음이 반영된 의도된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통화에서 ‘이기적인 태도’의 서운함을 먼저 느끼는 사람이다. 얼마 전, 20년 결혼생활을 끝내고 혼자된 딸에게 당신을 챙기라고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아빠의 선택과 집중이 본인일 수 있을까. 놀라울 따름이다.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다. 제일 많은 안부전화와 없는 엄마 대신 많은 상차림과 가족의 화합 등을 도모하느라 당신의 맏딸의 삶도 충분히 고단하다 말하고 싶다. 속으로 불만을 키우는 것보다 그때그때 말을 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정신건강에도 관계에도 좋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그게 어려운 사람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예의라는 포장으로 나의 솔직함도 서운함도 감추며 살고 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무안하고 서운하지만 전혀 내색하지 못한다.


나는 조리사 일을 하고 있다. 전업주부로 살던 나에게 만만치 않은 직업군이다. 4시간의 최저시급. 손가락 마디는 관절염으로 아프지 않은 날이 없다. 피곤한 몸을 속이고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당도 높은 음료를 마신다. 특히, 더운 여름 뜨거운 열기 앞에선 몸과 마음이 매번 지는 싸움을 한다. 백기를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남은 하루는 인생을 비관하는 일에 할애한다.

불행히도 나는 솔직함의 무기는 갖고 있지 않다. 늙은 부모의 걱정이 태산처럼 쌓일까 걱정되어 하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나이 50에 식당일을 하는 내 상황이 구질구질해 보여 평범한 직장으로 꾸몄다. 그러게 왜 현실도 모르고, 뭐가 잘났다고 이혼을 했냐는 비난이 듣기 싫었다.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그 말을 상상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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