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Haru Oct 28. 2022

이혼 결정

20년의 고민, 3분의 결정

“너무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어”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해서 말하는 거지?”

“응” / “그래. 알았어.”

그렇게 이혼이라는 단어는 현실이 되었다. 3분도 채 걸리지 않은 시간이었다.


현실은 15일의 시간이 흘렸을 뿐인데, 그 순간의 상황이 거짓말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밤새 수고한 선풍기가 잠시 쉴 수 있도록 전원을 끈다. 창문을 열고, 잠시 바람을 불어오길 기대하지만 나의 인내는 그리 길지 않다. 끊이지 않는 매미소리, 뜨거운 햇볕과 피부에 와닿는 진득한 묵직함이 나를 지치게 한다. 땀을 흘리며 일하는 것이 꺼려지진 않지만, 일상의 태도와 감정선을 유지하려면 다른 계절보다 곱절의 인내가 필요하다. 내 감정이 더위에 휩쓸리지 않게 노력한다.

나는 여름이 싫어한다. 여름은 버티는 삶을 닮았다. 한계치를 넘는 더위와 짜증에도 ‘너는 네 할 일을 해야지’, ‘힘들어도 어쩔 거야. 세상은 계속 흘러하고 있어’라며 나를 채근한다. 내 인생의 대부분의 시련과 고난은 여름에 찾아왔다. 여름에는 남편을 만났다. 그다음 해 여름밤엔 그와의 결혼을 없던 일로 하고 싶어 밤새 울었다. 생후 1개월 아이의 입원,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 그리고 나의 이혼 결정, 집을 나온 것도 무더운 여름이었다.

20년의 결혼생활이 흐릿하고 막연한 감정으로만 기억된다. 더는 무엇도 할 수 없음에 기권을 선택했는데 어디를 얼마나 맞고 K.O패를 당했는지 기억이 없는 복서가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거울에 비치는 고된 중년의 내 얼굴과 삐거덕거리는 몸이 시간의 흐름을 증명할 뿐이다.      


남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는 여전히 그를 모른다. 연애를 할 적에 친구들은 그를 이 세상 매너가 아니라고 감탄했었다. 물고기를 잡기 위한 여느 강태공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장점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시댁에서 가장의 경제적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막내지만 장남이자 막내딸 역할을 담당했다. 책임감과 섬세함으로 물론이고, 자신을 배려와 희생으로 갖춘 사람이라 주장했다. 우리는 노래 가사처럼 제법 잘 어울렸고, 모든 집 안의 미션을 완수했다. 정작 내 집의 지붕에 비가 새는지는 모르고 말이다.


이혼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 싸움이 잦은 것은 아니다. 나는 남편과 많이 싸우지 않았다. 너무 싸우지 않았다. 대응할 용기가 없어서였는지 나에게 적대적일 반응이 싫었던 건지 모르겠다. 처음에 몇 번은 나도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말의 마지막엔 늘 나의 패배였고 항복 선언이었다. 한 번도 결과가 좋았던 적이 없었던 나는 그 상황에 적응했다. 입을 닫고 평화를 가장했다. 점점 찡그린 얼굴과 눈을, 거친 얼굴을 도저히 바라볼 수가 없었다. 자연스러운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알맹이가 없는 말들만 늘어놓았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었다. 그래서 더 갑작스러운 이혼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이전 01화 초라하기 싫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