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로 풀어보는 고사성어 이야기
난 우리 아파트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그 길이 참 좋다. 특별할 것 없는 그 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우연들이 좋아서일까? 어제 아침엔 세탁소 앞을 지나는데, 안에서 일하고 계시던 세탁소아주머니가 불쑥 밖으로 나오시더니 환하게 웃으시며 아는 체를 하신다. 세탁물 맡기러 몇 번 들른 적이 있는데, 아주머니는 벌써 나를 친한 친구처럼 대하신다.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겐 참 고마운 분인 거다. 이 낯선 공간이 나를 환대해주고 있다는 이 기분 좋은 느낌…
불교의 경전 중 잡보장경(雜寶藏經)은 인연과 비유로 된 이야기를 총 10권으로 엮은 경(經)이란다. 여기에 나오는 말 중에 많이 회자되는 게 바로 ‘무재칠시(無財七施)’가 아닐까 싶다. ‘무재칠시’라… 의미가 직관적으로 와닿진 않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그래서 준비했다. 오늘의 성어로!! 무재칠시(無財七施), 그 한자를 보면 그 뜻을 유추할 수 있으리라.
없을 무(無), 재물 재(財), 일곱 칠(七), 베풀 시(施)
‘무재(無財)’는 ‘재물이 없다’ 요, ‘칠시(七施)’는 ‘일곱 가지 베풂’이다. 그러니까 불가(佛家)에서 흔히 말하는 보시(布施)인 거다. 즉 우리 모두는 비록 가진 재산이 없어도 남에게 줄 수 있는 일곱 가지는 다 가지고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 긴 말을 네 글자로 축약하면 ‘무재칠시(無財七施)’가 되는 거다. 그럼, 이제 그 일곱 가지가 뭔지 궁금하쥬?
하나는 ‘화안시(花顔施)’다. 성 안내는 얼굴, 바로 ‘환하게 웃는 얼굴의 베풂’이란다. 밝은 표정의 얼굴이 한량없는 공양이라나? 누군가가 내게 환하게 웃어주는 상상만으로도 미소가 절로 나지 않는가? 그 세탁소아주머니가 내게 한 보시가 ‘화안시(花顔施)’였네. 멋지당~ 또 하나는 ‘언시(言施)’다. 곱고 부드러운 말, 사랑을 담아 진심으로 전하는 찬사, 그리고 따뜻한 위로의 말로 하는 베풂인 거다. 부드러운 말 한마디는 미묘한 향이라고? 벌써 향그럽다. 있지도 않은 그 향을 찾아 요기조기 킁킁이는 내 모습에 웃음이 터진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열고 내가 먼저 선한 마음을 보내주는 ‘심시(心施)’, 두 눈 가득 호의를 담아 따뜻한 눈길을 건네는 ‘안시(眼施)’, 남의 짐도 들어주고 넘어진 사람도 일으켜주며 그렇게 몸으로 남을 돕는 봉사활동인 ‘신시(身施)’가 있단다. 벌써 다섯 개?
여섯 번째 보시(布施)는 뭔가요? ‘좌시(坐施)’다. 음, 이건 뭐지? 아하… 노인이나 임산부 등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앉을자리를 양보해 주는 것이구나. 그리고 마지막 보시는 ‘찰시(察施)’가 되시겠다. 한자로는 ‘살필 찰(察)’이네? 그렇다.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살펴서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한다. 오호! 그야말로 한량없는 ‘뿌듯함’을 부를 것 같은 일곱 가지 보시가 아닌가.
이 일곱 가지가 몸에 밴 사람의 인생길은 어떨 것 같은가? 부처님은 우리에게 말하고 싶으셨던 게다. 돈 한 푼 안 들이고도 이렇게 보시공덕을 쌓아갈 수 있음을. 이제 핑계도 못 대겠다. ‘지금은 제가 가진 게 없어서 아무것도 못해요. 나중에…’ 겸손을 가장한 비겁한 도망침을 합리화시켜주는 말들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거다.
과연 잡보장경에는 정말 귀담아들으면 밥이 되고 떡이 되는 말들이 그득하다. 유리하다고 자만할 것도, 불리하다고 비굴할 것도 없으며, 태산 같은 자부심은 갖되, 늘 발에 밟힌 풀처럼 자신을 낮추라던 문장도 떠오른다. 그래, 조건 붙이지 말고, 이유 달지 말고, 모든 생각을 다 비우고 살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살면 내 안의 모든 번뇌와 고통이 사라지는 마법이 정말 일어날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한 번 해보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돈 드는 것도 아닌데. 하하.
뭐부터 해볼까나? 화안시? 언시? 음… 우선 ‘찰시’부터? 그래 저 일곱 개 어느 것 하나 어려워 보이진 않네~ 뭐.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금방 다 되지 않겠나. 환하게 웃어보기로 마음먹으면 내 주변도 덩달아 밝아지지 싶다. 부드러운 말 한마디 건네야지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면 이 추운 겨울이 얼마나 따뜻하겠나.
이 ‘칠시(七施)’의 면면을 들여다보면서 얻은 결론은 결국 기본에 충실하라는 것 같다. 우리 일상에서 타인에게 친절하기가 결코 뭔가 대단한 결심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하다 보면 그게 그렇게 큰 전염성이 있어 널리 퍼져나간다는 게 아닌가. 그런 선한 영향력이 가져올 행복감을 어찌 수치로 한량할 수 있으랴.
그런 세상을 꿈꾸는 그대, 일단 한 번 웃어보는 걸로! 환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