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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섬, 홀로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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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므 Nov 01. 2024

시작

창작지원작  『바다가 건넨 ㅁㅇ』 중

 -부제: 한 번쯤은, 울릉


배가 출발했다. 439명이 정원인 쾌속선이다. 내 승선표에는 ‘씨스타 5, 1층 일반석 사2’라고 적혀 있었다. 강릉항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이 넘었을까. 울릉도 저동항까지는 세 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잠시 잠이 깼다. 1층 선실 가운데 자리에서 반쯤 감긴 눈으로 창밖을 둘러봤더니 기묘하다. 창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멀미약 기운으로 몽롱한 와중에 선박 양측 유리창으로 보이는 것이라곤 바다뿐. 잠결인 듯, 꿈결인 듯 배가 울렁인다. 나는 지금 어디쯤일까?

 

길을 잃었던 적이 있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그 어느 날에 놓쳤다. 키가 큰 나무 사이에 주저앉아 쇳소리가 나도록 울었다. 내가 왜 살아왔을까. 죽어버리면 모든 기억조차 다 사라질 거고 나도 사라지면 그만일 텐데……. 충혈된 눈으로 걷고 또 걸었다. 집으로 가는 방향을 잃어버린 듯이 걸었다. 마음은 자리를 못 잡고 허공을 맴돌았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잃었다고 여겼다. 생의 끝을 생각했다.

 

배 밑판에 물결이 부딪힌다. 부웅- 떴다가 아래로 털썩, 다시 위로 부웅 떴다가 아래로 털썩. 큰 물결이 배에 닿을 때마다 무중력이 내 몸을 들었다가 놓는다. 바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배가 출발했더라도 상황에 따라 회항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선체를 흔드는 바다의 기세가 대단하다. 뱃멀미는 각오했었다. 선체 탑승 한 시간 전에 마시는 멀미약을 먹었고 귀밑에도 스티커 같은 멀미약을 붙였다. 귓가에 돌림노래처럼 남의 구역질 소리가 들린다. 준비를 단단히 했는데도 겁이 난다. 불안이 느껴질 때 제일 중요한 건 호흡이다. 물결의 파동이 선체 밑바닥으로부터 내 몸을 훑으며 수직으로 흔든다. 눈을 감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쉰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 다독인다.

 

내 삶이 끝나버리면 어떻게 될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믿고 싶은 것과 믿고 싶지 않은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그것들의 간극은 컸다. 눈이 가려졌다고 해도 어둠 속에서 더듬거려서라도 조금씩 나아가야 했다. 그 질문의 답은 결국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다. 그 누구의 삶도 아닌 내 삶이니까.


삼 년 전이었다. 항암, 이식, 장기간의 입원으로 몸이 바닥을 쳤다. 내 발로는 한 번에 100미터를 채 걷지 못했던 때다. 그때 안목해변 카페 창가에서 눈에 들어온 건 강릉항이었다. 배가 막 도착했었을까. 꽤 많은 사람이 커다란 가방을 들거나 캐리어를 끌면서 해변으로 쏟아져 나왔다.

“우리도 언제 울릉도 가자.”

마음보다 입이 먼저 말을 뱉었다. A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누구도 내 생의 유효기간을 점칠 수 없던 때였다. 꽉 막힌 듯한 가슴 안에도 의구심이 떠다녔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내 발로 다시 마음껏 걸어 다닐 수 있을까? 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끝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을 때 한참을 주저앉았다. 바닥에는 풀과 나무가 있었다. 씨를 심으면 당장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그 어느 날에는 푸릇한 싹이 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기로 했다. 잎은 물론이고 언젠가는 꽃과 열매까지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막연한 희망,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에 담기로 선택했다. 내 삶도 여기서 끝은 아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오늘 드디어 그곳으로 간다. 민둥산 같던 머리는 이제 긴 단발 머리칼로 덮였다. 삶의 끝을 넘나들던 저릿한 기억이 넘실댄다. 물결의 봉우리에 오르면 3초 정도 허공에 몸이 붕 떴다가, 물결의 골에서는 몸이 털썩 떨어진다. 눈을 감은 채 한 가지 사실에 전념해 본다. ‘나는 깊은 수심의 동해를 지나가고 있구나. 내가 발 딛고 있는 선체 아래로 파도가 지나가고 있구나. 곧 나는 내가 바라던 그곳에 발을 디딜 거다.’

 

눈을 뜨면 앞 좌석의 등받이가 그대로지만 몸은 선체에 얹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시각신호와 이동과 균형감각 신호의 불일치가 일어나는 순간이다. 여기에 작은 상상을 더한다. 보이지 않는 물결을 머릿속에 그린다. 서프보드를 배에 깔고서 작은 파도를 넘는 거다. 나는 이 파도를 넘을 수 있는 사람이다. 숨만 잘 쉬면 된다. 물결 따라 몸이 붕 뜰 때 ‘후읍-’ 숨을 들이마셨다가는, 털썩 떨어질 때 ‘푸-’하며 작은 소리로 호흡을 맞춘다. 내 몸이 다시 ‘부웅-’하고 몸이 허공에 잠시 뜨는 듯하다가 빠르게 털썩.

 

얼마만큼 왔을까. 설핏 잠이 들었다가 또다시 깼다. 아직은 비몽사몽이다.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는데 선체 중앙에 시커먼 한 덩이가 보인다. 서서히 몸집을 불려 간다.

‘저게 울릉도… 인가?’

선체 창에 어렴풋이 보이는 섬의 윤곽이 낯설다. 이렇게나 멀리 와야 만날 수 있다니. 이만 오천 년 전에 태어난 화산섬이 내게 눈을 맞춘다. 내륙에서 전혀 보지 못했던 외양의 바위섬이다. 이제야 우리나라 동쪽 끝에 거의 다다랐다. 한 나라의 방위 끝으로 다가가면 심장이 두근댄다. 포르투갈의 호카곶에서도 그랬다.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 유럽의 끝이라는 상징적 의미에 마음이 울렁였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발길을 서둘러 돌리지 못하고 석양을 지켜봤다. 발을 디디는 그 모든 곳이 엄연히 모두 ‘땅’인데도 ‘끝’이란 말이 붙으면 애틋해졌다.

 

“잠시 후면 울릉도 저동항에 도착합니다."

 

퍼뜩 잠이 달아난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선내가 기대감으로 술렁인다. 우리나라 영토의 동쪽 끝에 독도와 울릉도가 있다. 행정구역상으로 경상북도 울릉군. 강릉에서 이곳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185km 정도이다. 세 시간 반 정도의 운항이 드디어 끝났다. A는 떠나기 며칠 전까지 갈 수 있겠냐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항암 부작용으로 울렁증을 심하게 겪었던 나를 염려했었다. 그때마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한국 사람이면 독도랑 울릉도는 한 번쯤 가 봐야지.”

 

삼 년 전 강릉항 카페에서 부러운 눈으로 여행객을 바라보던 나, 오늘의 나는 그 여행객이 되었다. 새삼스럽게 내가 끝이라고 믿었던 순간을 곱씹어본다. 보이지 않는 것을 좇는다고 그것이 신기루를 잡는 허무맹랑한 일만은 아니었다. 내가 삶의 끝에서 놓지 못한 것은 보이지 않는 미래였다. 모든 끝의 꽁지에는 투명한 시작이 매달려있다.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다고 해도 올곧게 믿어냈다.

 

이제 배 밖으로 나가 한 발을 내디디면 그곳이다.

우리나라 동쪽 끄트머리 땅이 내 눈앞에 있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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