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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섬, 홀로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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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므 Nov 01. 2024

창작지원작  『바다가 건넨 ㅁㅇ』 중

여름 한낮이다. 바다에 들어가자 웻슈트가 기다렸다는 듯이 물을 냉큼 빨아들인다. 찌릿하다고 해야 할지, 차갑다고 해야 할지 모를 물의 감촉이 설익은 몸에 파고든다. 어느 바닷물이든 발을 꼭 담가야 직성이 풀리던 과거의 내가 슬며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쇄골 부근을 뚫고 정맥을 연결했던 히크만 카테터는 그동안 내게 샤워만 허락했었다. 오늘은 바다가 호수 같다. 바다를 바라보는 내 눈빛이 마음에 걸렸을까. A가 군말 없이 서핑 웻슈트를 입혀주었다. 카테터를 제거한 지 오늘로써 딱 스무날째다. 수평선까지 깔린 푸르른 카펫이 잔잔하다.

 

물에 들어가는 게 좋다. 내 몸에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생의 감각, 물에 몸을 담그자 거짓말처럼 몸이 반응한다. 물살이 만져진다. 물의 장력이 종아리에 닿는다. 찬 기운이 발가락을 훑는다. 옅은 물결이 보드에 닿고 그 소리가 귀로 스민다. 물결이 보드의 옆면을 만나 살짝씩 부딪혀 촤륵…, 그리고 찰랑. 파도가 얕게 부서진다. 바람 한 점 없다. 나긋나긋하게 나를 받아준다. 친절한 파도를 지나쳐 성큼성큼, 물이 허리까지 잠기면 멈춘다. 숨을 고른다. 보드의 가운데를 두 손으로 뜀틀 짚듯이 짚는다. 모랫바닥을 도움닫기 삼아 살짝 발을 구르면 보드에 내 몸이 얹힌다. 보드의 꼬리와 나의 발목을 연결하는 줄, 리쉬도 단단하게 여몄다. 태평양에 나아가는 큰 선박이 부럽지 않다. 나만의 쪽배, 이 서프보드만 있으면 이제 발 닿지 않는 곳도 서슴없이 나아갈 수 있다.

 

다섯 번째 기념일에 서프보드를 선물 받았다. 날렵하면서도 둥그런 앞코는 더없이 멋졌다. 중고였지만 쓰다듬는 것조차 아까웠다. 한 번이나 탔을까. 한 달여 뒤 받게 된 암 진단 때문에 내 보드는 집에 주저앉았다.

 

파도를 타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다를 느끼려고 서프보드에 오른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몸에 힘을 빼고서 뒤로 벌렁 누워본다. 등을 수면 위에 붙이듯이 눕는다. 바다가 내 모든 살갗을 두루두루 안아준다. 물결이 꿀렁, 바다가 묵직한 힘으로 나와 보드를 수면 위로 잠시 들었다가 내려놓는다. 이 묵직한 힘을 사람들은 물결이라고 부른다. 내 삶에 다가온 물결 가운데 타격이 가장 컸던 너울성 파도였다. 기척도 없이 병이 나를 덮쳤다. 오는 줄도 모르게, 큰바람 없이 갑작스럽게 덮치는 큰 물결이었다. 내 병명 앞에는 급성이란 단어가 붙었다. 엎드려서 패들을 하니 등에 닿는 여름 태양이 차츰 얼굴을 달리한다. 따스했다가 뜨끈해지더니 이제는 따끔거리기 시작한다. 볕에 몸이 그을려간다. 물속으로 뛰어들 때다.

 

풍덩!

 

바닷물 안에서 내 몸 전체가 부피로 존재한다. 나의 부피감을 확인하는 순간이 필요했다. 절실했다. 내 존재는 병으로 인해 지워진 것과 다름없었으므로. 사회에 있었던 내 자리는 빈틈의 흔적도 없이 금방 채워졌다. 병을 지닌 사람에게 지속가능한 업무가 주어질 이유는 없었다. 우습게도 ‘나’라고 불리는 존재로서의 감각이 희미해졌다. 사회의 바깥으로 튕겨 나왔다는 사실, 입으로 넘어가던 음식이 그대로 위로 쏟아져 나오던 나날, 그 사이에서 내 존재는 갈피를 놓쳤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내 영역은 몸뿐이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가늠 없이도 생은 지속되었다. 의식하면서 숨 쉬는 것이 아니었으니, 내가 물성으로 존재하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그래…, 이 느낌이지.’

가물었던 몸이 반가운 비를 맞는 식물처럼 한껏 물기를 먹는다. 새끼발가락에서 정수리까지 푹 담근다. 바다 한가운데에 내 몸이 존재한다. 발끝에 닿는 물이 선뜻하다. 이건 해 볼 만한 일이다. 완전한 생의 감각이다. 바닷물 안에서 내 몸 전체가 부피로 존재한다. 물속에서는 폐호흡의 관성이 통하지 않는다. 수면 위로 고개를 꺼내 들고 숨을 들이마신다. 손을 휘저으면 물살이 팔 안쪽으로 흘러 지나간다. 수면에서 발목을 힘 있게 구르면 바다 표면에 물장구가 첨벙.


부피는 입체적인 물질이 삼차원 공간에서 차지하는 크기를 말한다. 가로, 세로, 높이를 곱하여 세제곱미터로 기록한다. 길이 단위인 ‘㎝’를 세 번 곱하면 부피 단위인 ‘㎤’가 된다. 내 높이는 정수리로부터 발끝까지 163㎝ 정도다. 지금도 호흡해내고 있는 폐와 온몸으로 혈액을 돌려내는 심장, 이들을 감싸는 내 갈비뼈 둘레만큼의 면적에 내 키를 곱하면 나의 부핏값이 나오려나.


병원에서는 하루에 적어도 세 번 체중을 쟀다. 나라는 인간의 무게는 생사의 바늘 눈금 아래 저울로 측정되었다. 음식을 목구멍 뒤로 넘기지 못하니 하루에 1kg씩 빠졌다. 내 부피를 물 안에서 가늠하기까지 얼마만큼의 날카로운 시간이 지났나. ‘나’라는 존재의 부피는 무엇을 세 번 곱해야 값이 나올까. 내 삶을 구성하는 가로, 세로, 높이는 무엇일까?

 

물결이 다시 한번 꿀렁, 물결 하나가 내 몸을 잠시 허공에 띄우더니 떨어뜨린다. 보드에 연결된 리쉬가 내 발목을 슬쩍 당긴다. 환자라는 호칭에 떠밀려 관성으로 살아왔던 나다. 어떤 물결이 예보도 없이 다가올는지 그 누구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다. 잔잔한 물결인지, 너울성 파도인지, 풍랑인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마는 해일인지…….

 

둥둥.

옅은 물결이 보드 아래를 작은북처럼 울리고 지나간다. 인간이란 존재의 '가로 x 세로 x 높이'는 무엇일까? 인간으로서의 부피는? 기억의 부스러기에 덧씌워지는 감정을 곱하고, 거기에 물 흐르는 듯한 시간까지 곱한 것이 아닐까.

 

등, 허리, 허벅지, 종아리, 발목, 발바닥까지 볕이 수직으로 내려 닿는다.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과 선택으로 들끓었던 감정은 내리쬐는 빛의 기울기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진다. 항암과 이식의 과정은 끝이 났다.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자꾸 밀려오는 시간의 물결에 떠밀려 나간다. 왜 나여야만 했느냐고, 들끓었던 억하심정도 서서히 식어간다. 행위의 부산물로서 남겨진 묵은 감정은 힘을 잃는다. 한낮의 태양이 서서히 기울기가 낮추다가 빛을 잃고서 수평선 끝으로 쓰러지듯이 그렇게.

 

보드의 코가 가리키는 방향에 끝없이 이어지는 푸른 선이 보인다. 아직 끊기지 않은 나의 생명선이다. 믿기지 않았던 병을 얻고도 어떻게든 살아내고자 하는 몸이 있었다. 리쉬를 잡아당겨서 보드를 내 앞에 끌어온다. 보드를 잡고 그 위에 다시 올라앉는다. 발바닥에 닿는 바닷물의 느낌이 새삼스럽다. 나를 다시 마주한다. 여전히 내 몸은 한 인간으로서의 부핏값을 가진다. 바다도 삶이고, 삶도 결국 바다다. 이 드넓고 광활한 공간에서 나는 여전히 삼차원으로 존재하고 있다. 빨갛게 드러났던 쇄골의 살갗은 이제 막 봉합되었다.

 

나의 뒷면에 금가루 같은 빛이 쏟아진다. 물결이 가볍게 일렁이며 나를 다시금 들어 올린다. 발과 손으로 물살을 내어 보드의 방향을 바꿔본다. 보드의 코가 이제는 뭍을 가리킨다. 모래사장에 사람들이 보인다. 삶은 나와 멀리 있지 않았다. 내 존재는 계속해서 부피를 잃지 않을 것이다. 팔꿈치를 노처럼 만들어 바닷물에 깊숙이 넣는다. 윤슬도 꿈꾸는 듯한 오늘의 바다, 호수같이 잔잔한 이 물결이 순식간에 해일로 바뀐대도 나는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 서두를 필요도 없다. 느릿느릿 패들을 시작한다. 삶을 향해 간다.

 

수면에서 뭉그러지는 작은 물결 소리, 

그리고 허공으로 꿈꾸듯 번져가는 물보라. 

여름 태양이 육각의 무지갯빛으로 쪼개어져 내린다. 


눈이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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