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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섬, 홀로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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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므 Nov 01. 2024

균형

창작지원작  『바다가 건넨 ㅁㅇ』 중

“으, 무서워요…….”

“뭐가 무서운데?”

“물에 빠지는 거요.”

“물에 빠지면 어떻게 되는데?”

“숨을 못 쉬어요.”

“물속에서 3초는 견딜 수 있을 텐데?! 자전거를 탈 때, 생각하면서 타?”

“네.”

“생각하면서 탄다고? ‘나는 지금 자전거를 탈 거다, 타고 있다….’ 이렇게?”

“아, 아뇨.”

“처음이 어렵지, 자전거처럼 그냥 타는 거야.

 

그렇다. 서핑은 그냥 타는 거였다. 보드가 아니라 파도를 탄다. 파도 위에 보드가 있고, 그 위에 몸이 얹혀 있을 뿐이다. 살아있는 파도 에너지를 이용한 스포츠, 서핑은 2020년 하계 올림픽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근력 강화, 지방 연소는 물론이고 조정감, 지구력, 균형감 향상까지 가져온다니 운동으로서의 조건은 완벽하다. 자연물인 바다를 그대로 활용하는 무동력 스포츠이기 때문에 친환경 스포츠라고도 말한다.

 

운동은 좋아해 본 적이 없지만 물의 질감만은 좋아했다. 내 살갗 어딘가가 물을 가를 때 일어나는 그 촉감을 좋아했다. 팔을 움직여서 노처럼 휘이- 젓고, 허벅지와 무릎을 움직일 때면 손바닥, 발바닥에 물길이 닿았다. 바다에서 더 오래 있고 싶었다. 서핑을 배우자고 남편의 손을 잡아끌었다. 남편은 파도를 알아서 잡아탄 지 오래였다. 백혈병이 나의 근육과 살을 잡아먹은 탓에 나는 한참 진도가 뒤처졌다. 다시 용기를 냈다. 서핑을 다시 배워보기로.

 

“넘어질 것 같다고 생각하니까 넘어진 거야. ”

“넘어지는 게… 무서워요.”

죽음 가까이에 갔었던 기억 때문일까. 잔잔한 바닷물 속에서는 얼마든지 웃을 수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커 보이는 파도 앞에서 그렇지 못했다. 서핑 선생님이 파도에 보드를 얹어주려는 순간에 심장이 마구 뛰었다. 불안과 함께 겁이 솟았다. 그다지 크지 않은 파도였고, 위험할 것도 없는 깊이였다. 단단한 파도였는데도 보드 위에서 두 발로 일어나지 못했다. 파도를 믿을 수 없었다.

 

“그동안 이것보다 어려운 것도 다 해냈잖아?”

나의 서핑 선생님, 투병 이전부터 지금까지 나의 흥망성쇠를 다 지켜본 사람이었다. 가볍게 보태는 이 한마디에 지난했던 항암의 기억 몇 장면이 내 머리를 툭 치고 갔다. 봄에 돋아나는 푸른 새싹을 보듯 내 머리카락의 길이를 기특하게 바라봤던 선생님이다. 머리카락의 길이가 꼭 삶의 징표처럼 여겨지던 시절을 그 누구보다 가까이서 응원해 줬던 사람이었다. 막냇동생에게 알려주듯이 말을 이었다.

 

“넘어지는 게 무서우면 안 타면 되는 거지. 파도 위에서 완벽하게 균형이 유지되는 건 1초도 힘들 수 있어. 계속 균형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뿐이야.”

그랬다. 서핑 중계 영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마음껏 물결을 타며 이리저리 움직이다가도 몇 분이 지나고 나면 보드와 몸은 제각기 갈 길을 가곤 했다. 날고 긴다는 서퍼도 결국은 물에 빠졌다. 파도 위에서의 ‘완벽한 균형’이란 지속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자전거를 배울 때도 비슷했다. 넘어지는 것이 싫어서 자꾸 브레이크를 밟고 다리를 땅에 내렸다. 그렇지만 자전거가 나아가기 위해서는 발을 떼지 않고 계속 페달을 밟는 수밖에 없었다. 넘어지더라도 그런 시도들이 쌓이자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서핑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알겠다. 보드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물에 빠지는 수밖에 없다. 어쩌면 파도 위에서 ‘균형’이란 목표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꼭짓점일 수도 있겠다. 물결 위에서 그 누가 파도를 타든지, 몸을 적시지 않고는 서핑을 할 수 없다. 이때 ‘물에 빠진다’는 건 수렁에 빠지는 것과는 다르다. 내 중심을 알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실패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겁을 과하게 집어먹은 나를 반성했다. 물은 잠깐 먹을 수도 있겠다. 3초 정도 숨을 못 쉰다고 죽는 것도 아니다. 자전거를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몸으로 타듯이, 서핑도 스스럼없이 파도에 보드와 내 몸을 얹어야 한다. 기우뚱하는 그 모든 경험치는 균형을 이루기 위한 자양분이 된다.

삶에 푹 젖으려면 균형이 어긋나는 순간도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겠다. 삶도 기우뚱하지 않고 굴러갈 수는 없다. 삶이라는 물결 위에서 넘어지거나 흔들리지 않고 세상에 나아가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자주 기우뚱하며 산다. 완벽하게 행복한 삶은 없다. 모두 다 흔들리며 산다.

 

균형을 시도하기 위해 오늘의 나는 몇 번이고 바다에 빠졌다. 무릎이 펴지지 않아서, 엉덩이를 들어 올리지 않아서, 무게 중심이 너무 뒤로 가있어서, 앞발의 방향이 잘못되어서…, 그 많은 이유로 파도에서 넘어져 물에 빠졌다. 오늘의 내 무게 중심의 흔적을 연결해 본다. 물결 위에서 넘어진 내 경험이 적은 점으로 쌓여 줄을 이룬다. 무수한 점이 이어져 선분이 된다. 그러던 잠깐의 순간에 모든 것이 탁!

자세가 맞았고 발 방향도 맞았고, 무엇보다도 흰 파도의 거품이 물결을 제대로 보내주었다. 드디어 내 보드가 파도에 올랐다. 바다 위에 하나의 선분이 길게 그어진다. 나도 보드를 따라 파도를 탄다. 곧 물에 빠져 3초 동안 숨을 참아야 한대도 오케이.

 

나름의 균형을 잡기 위해 작은 점들을 이어 나가는 선분,

그것은 서핑.

그리고 삶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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