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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섬, 홀로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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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므 Nov 01. 2024

몽돌

창작지원작  『바다가 건넨 ㅁㅇ』 중

베란다로부터 거친 바람이 불어온다. 창문을 닫으려고 그 앞에 섰다. 도시에서 만나기 힘든 바람이다. 그 속에서 나는 희미하게 바다 내음을 맡아낸다. 꼭 바닷가의 그 집에 와있는 것만 같다. 해풍의 비릿한 내음이 상상처럼 내 기억을 되살린다. 항암과 이식으로 한껏 얇아졌던 내 몸은 살기 위해서 바닷가로 갔다. 이유는 단순했다. 바다를 보면 심장이 뛰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큰 돌멩이가 바다에 빠졌어!”

 

생애 최초로 바다를 만났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예닐곱 살의 아이가 고속버스 차창 너머로 광활한 바다와 큰 바위를 보고서 한 말이었다. 그때서부터였을까. 범접할 수 없는 광활함과 눈이 다 좇을 수 없는 생동감을 모두 지닌 이 장소는 단번에 무구한 나를 꽉 사로잡았다.

 

이 세상이 열렸을 때부터 존재했을 것만 같은 이 장소, 나는 언제고 머릿속에서 실감 나게 그려낼 수 있다. 바다 앞에 선 나를 상상해 본다. 확 트인 하늘 아래 끝도 모르게 펼쳐지는 수평선을 응시한다. 서서히 그 아래로 시선을 돌리면 저 멀리에서부터 바닷물이 다가온다. 작은 둔덕처럼 파로도 울렁울렁 무리 지어온다. 몽돌이 깔린 해변까지 다가와서는 내 앞에서 기어코 일을 벌인다. 보란 듯이 제 몸을 하얗게 깨트린다. 이 광경은 계속 두고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모든 상념을 부수어 버리고 말겠다는 듯한 움직임이다. 바다 앞에 곧추서서 파도가 깨져나가는 장면을 마주할 때면 내 마음은 언제고 통쾌해진다.

 

바닷물이 몽돌 사이사이로 거품처럼 스며들 듯 퍼져나간다. 죽었을까? 촤아르르…, 아니다. 바닷물은 다시 솟아나듯이 바다로 되돌아간다. 몽돌은 파도가 사정없이 내리치는 곳에서 무리 지어 웅성거린다. 차르르, 차르르, 파도가 올 때마다 서로 몸을 맞대며 더욱 몽글몽글해진다. 푸른 바다와 흰 파도 거품이 그림자 빛깔처럼 깊은 어둠을 지닌 돌멩이 무리를 마구 굴려낸다.

 

내 속을 무심한 돌이라고 믿어온 삶이었다. 굳이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 감내하며 세상을 살았다. 큰 소리 내지 않는 삶이었다. 내 몸속을 돌고 도는 혈액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혈액암이었다. 바다 앞에서 내 마음도 데르르르 구른다. 밑도 끝도 없던 책임감, 온화함, 배려, 인내……, 남 탓하지 않고 내가 꾸역꾸역 간직한 것이 내 몸에 어둠으로 들어찼을까. 검은 몽돌이 된 내가 사정없이 구른다. 푸른 파도의 치마폭에서 마구 울렁대는데 제 몸이 깎이는 줄도 모른다.

 

사실, 몽돌의 색은 원래부터 까맣지 않았다. 돌을 햇빛에 바짝 말리면 본디의 색을 알 수 있다. 물기 가신 메마른 몸을 살펴보면 회색빛 돌, 약간 누르스름한 돌, 조금은 불그스름한 돌도 있다.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지도 않았고, 일은 일대로 열심히 했다. 파도 소리가 경쾌하듯, 사는 게 재미있었다. 매년 경력이 얹히고, 자신감은 근육처럼 붙었다. 퍼붓는 바닷물이 시원해서 사방이 나를 갉아대는 것을 몰랐다. 무엇이든 속으로 욱여넣는 나만의 감내(堪耐), 혹은 일에 대한 지나친 열정이 그랬을까. 나를 까맣게 만든 일을 하나씩 손가락 꼽아서 세어 보았다. 아무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병, 아무도 모르게 큰 돌멩이는 파도에 쓸려 살점이 닳았다. 생채기 잔뜩인 살이 붉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까맣게 탄 줄도 몰랐다. 병실에서 열이 많이 올랐던 어느 날엔가 몸의 주도권까지 잃었다. 수액 줄로 겨우 연명하는 시커먼 돌덩이가 되었다.

 

태풍이 온다고 했던가. 나뭇잎이 제 줄기에 몸을 바짝 붙였다. 몇백 킬로미터에서 떨어진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일 테지. 얇은 나뭇가지는 부러질 듯이 몸을 눕힌다. 큰바람이 볼에 닿자, 내 마음이 그때 그 바다로 내달린다. 나의 요양 시절, 바닷가 앞 숙소. 항암과 이식으로 40kg까지 떨어진 몸은 한껏 납작해져서 종이 인형과 다름없었다. 비척비척한 걸음걸이로 바다 앞에 섰을 때 강한 바람이 앞뒤에서 나를 몰아붙였다. 회색 구름 아래, 더 짙은 회색 바다가 있었다. 빗방울인지 파도에서 떨어져 나간 바닷물인지 모를 것들이 내 얼굴을 마구 때렸다. 울음인지 웃음인지, 어느 감정에서 나왔는지 모를 물방울을 나는 고개 돌려 털어냈다. 나는 사람의 모습을 한 돌이었다. 파도의 바람 앞에서 내 윤곽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살아 숨 쉬는 거대한 바다는 생(生)에 대한 욕심을 부추겼다. 일렁이는 물결과 함께 사정없이 부서지는 파도, 파도가 조각나며 허공에 흩뿌려지는 바다의 하얀 땀방울, 쉴 새 없이 뭍으로 밀려 들어오는 살아있는 움직임이 눈동자에 각인되었다. 나를 바짝 말려냈던 요양 시절, 바다를 월세방 창문에 걸어놓고 매일 들여다봤다. 그 총체적인 생명력을 닮고 싶었다. 살고자 했기에 버텨내고 싶었다. 그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사람이고자 했다. 바다 앞에서 ‘사람답-’기를 기원했다.

 

언젠가 태풍이 몰아친 다음 날, 완도의 어디 바다에서는 하룻밤 새 몽돌이 몽땅 사라졌다고 한다.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그 빈 자리에는 모래뿐이었다고. 며칠 후 몽돌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되돌아왔다고 했다. 그에 관한 과학적 사실을 연구자들이 알아냈다는 기사를 봤다. 몽돌은 태풍이 왔을 때 바닷속으로 몰려가서 큰 파도의 힘을 뺀 후 제자리에 돌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몽돌은 한때 큰 돌멩이였고, 돌멩이는 큰 산의 일부였다. 몽돌은 파도 사이로 달려나가 태풍에게 휘둘리는 바다를 잠재웠다. 작은 몽돌도 한때는 거대한 모습으로 우뚝 섰던 적이 있었다. 산의 한 조각이 바다를 흠모했고 제 몸을 굴려서 골짜기와 강을 거쳤다. 만 오천여 년의 시간을 삼키며 바다로 나아갔다. 몽돌의 사랑은 바다가 성이 나도 그치지 않는다. 제 몸을 바닷물에 자꾸 씻고 파도로 고통을 지각한다. 생을 확인하는 통쾌(痛快), 아프면서도 깨치듯이 시원한 감각이다. 제 몸을 닳도록 굴려서 거세어진 바다를 달랜다. 내 삶에 들이닥친 병은 요동치는 바다와 다름없었다. 예기치 못한 항암의 폭풍 속으로 나도 온 마음을 다해 나아갔다. 몽돌은 아파서 소리 내는 게 아니었다. 몽돌은 어쩔 수 없이 바닷가에 매여 있는 게 아니었다. 물에 젖어서 거무튀튀하게 짙어진 색은 암흑이 아니었다. 몽돌이 바다를 위해 태풍 한가운데에 겁 없이 나아가듯이, 사람으로서 내 삶을 지키고 싶어서 쉼 없이 굴렀다. 병의 고통에 몸서리치면서도 삶을 사랑하는 만큼 버텼다. 몽돌이 담대한 까닭은 그 작은 몸뚱이가 대지의 마음을 지닌 채 바다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마음은 아무나 함부로 훔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베란다에서 뜰을 내려다보니 나뭇가지가 금방이라도 꺾일 것만 같다. 베란다 창문을 닫으려고 한 손을 뻗는다. 큰 창을 닫으려는데, 바람이 머리칼을 내 얼굴에 마구 비빈다. 몽돌이 너 잘 지내는지 보고 오랬다고.

바닷가를 떠나온 지도 일곱 번의 계절이 바뀌었다. 병실이 아닌 내 집에서 이 바람을 맞는다. 바다의 변덕을 잠재우고 몽돌이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 왔듯이 나도 내가 있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나를 집어삼킬 듯이 거칠고 막무가내였던 바다와 제 몸을 굴려 우직하게 바다를 달래던 몽돌, 병의 고통이 저물어 간 자리에 한 점의 그림으로 남겨졌다. 삶의 태풍이 언제고 닥친 대도 지금의 나는 얼마든지 그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몽돌이 파도에 제 몸을 다시 내어주며 차르르 솨아아, 청량한 소리로 웃는다. 다시금 심장이 뛴다. 몽돌의 모습으로 바다 곁을 지켜냈던 큰 돌멩이의 전언이 분명하다.


작은 나뭇잎이 바람의 재촉에 못 이겨 바람 위에 오른다. 해풍으로 안부를 묻는 큰 돌멩이에게 화답해야겠다. 바람에 올라타기 시작한 몇몇 나뭇잎에게 미소를 얹었다. 요양 시절의 기억을 가볍게 닫는다.

 

어느새 내 귓가에는 몽돌이 차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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