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해외 봉사, 아르항가이로부터의 추억 4

별처럼 반짝이던 몽골 해외 봉사 후기(2017.07.29.~08.04.)

by 친절한 James

1. 떠남

2. 만남

3. 머무름

4. 돌아옴

5. 돌아봄



3. 머무름 ①


우리는 8월 2일 아침 일찍 짐을 정리해서

울란바토르로 떠났다. 밝은 낮 동안

장거리 이동은 처음이다.

몽골 첫날의 밤길과

봉사 끝날의 낮길이 만나

온전한 한나절 조각이 맞춰졌다.


몽골 풍경은 참 멋지다.

그중 끝없이 넓게 펼쳐진 고운 빛

파스텔톤의 초원이 인상 깊었다.

건기가 지나면 그 색깔이 더 선명하고

아름다워진다고 동행한 몽골인 통역사가

알려주었다. 드넓은 대지를 캔버스 삼아

대자연이 그려내는 빛깔의 향연, 참 예쁘겠다.

차창 너머로 초원과 구릉지, 돌산과 강을 지나

마을과 동물들이 스쳐갔다. 초원 풍경은

시시각각 다양하게 변했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살면서 한 가지 모습만 고집하면

유한한 인생 속에 다채로운 삶의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 있을까.

편안함 속에 안주하다가

모처럼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열린 마음으로 시간의 흐름, 세월의 변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이자. 나를 이루고 또 나와 이어진

수많은 관계 속에서 지금껏 알지 못했고 만나지 못한

자신의 멋과 가치를 새롭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신비롭게 펼쳐지는 장엄한 경치를 가슴속에 최대한

담아가려고 시시때때로 쏟아지는 잠과 계속 타협하며

차창 밖으로 시선을 모으고자 애썼다.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알차면서도 간결한 간편식,

몽골분들의 정성 가득한 현지식,

박찬호 선수가 특별히 한턱낸 저녁,

세심한 격식을 갖춘 각종 만찬까지

모든 식사가 참으로 소중하고 감사했지만

가장 인상적인 끼니는 뭐니 뭐니 해도

봉사를 끝내고 울란바토르로 돌아오는

길에서 먹은 이 점심이 아닐까 싶다.

전투 식량 발열팩보다 뜨거운 태양 아래

그늘 하나 없는 드넓은 대지 위에서

옹기종기 둘러앉아 햇살에 비벼 먹는 밥은

몽골 해외 봉사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이자

정말 잊을 수 없는 'Hot'한 특식이 아니었을까.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의 맛과 열이 느껴지는 것 같다.


드디어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

초록빛 들판이 회색빛 도로가 되니

반가움과 아쉬움이 공존했다.

50여 미터 크기의 위풍당당 은빛 동상이 반기는

칭기즈 칸 기념관을 지나 깊은 초원이 품은

게르(Ger) 숙소에 짐을 풀었다.

게르는 몽골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이동식 전통 가옥이다.

우리가 머물 곳은 이 일대 수많은 시설 중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사방이

그야말로 끝없는 초원이었다.

잠시 쉬며 피로와 먼지를 씻어내고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열린의사회 20주년 기념식 및 만찬이 열릴

칭기즈 칸 호텔로 향했다.


'뷔페식 잔뜩 먹을 수 있겠다'라며

가볍게 참여한 행사는 경건함과 경쾌함이

어우러진 상당한 규모의 공식 일정이었다.

1부는 공식행사, 2부는 축하 공연을 했다.

몽골적십자는 몽골 정부를 대신해

그동안 몽골 의료봉사에 헌신한

열린의사회 관계자 및 통역 분들에게

국가 훈장을 수여했다.

한국과 몽골의 유력 관계자들은 물론

시상식을 가득 채운 수상자들과 다채로운

축하 공연자들이 잘 어울린 뜻깊은 자리였다.


다양한 무대 중 몽골 전통 악기 마두금(馬頭琴)

연주가 특별하게 다가왔다.

식장을 꽉 채운 깊고 애절한 선율이

달가당달가당 애잔한 마음을 두드린다.

유목 생활의 필연적인 떠남과 스러짐이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너머로

말발굽 먼지에 흩날리듯,

노을의 발걸음 속에서

모두가 숙연히 음악에

빠져들었다.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 심사위원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나 보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말간 뿌듯함이 가슴을 한가득 채운다.

어둠이 내린 초원은 우리를 끌어안았다.

아, 벌써 오늘이 마지막 밤이구나...

이런 날 빠질 수 없는 건 바로 캠프파이어!

서늘한 바람과 출출한 기분을 달래줄

뜨끈한 열맛과 매콤한 불맛이 화끈하다.

초원의 밤을 물들이는 불꽃의 향연에

지난날의 힘듦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봉사팀 간사님이 카메라 장노출 사진으로

아름다운 몽골의 밤하늘을 담는 시간을

봉사자분들과 함께 했다. 낭만적이야.

역시 지구는 돌고 있구나.

굳건히 빛나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선명한 별자리들이 도란도란 말을 건다.

별과 별똥별이 손에 잡힐 듯 눈부신 풍경,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수년간 국내 봉사에서 쌓은 시간들 위에

예쁜 추억을 하나 더 얹어 놓았다.


우리 모두는 우주의 수많은 별들이 남긴

흔적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라고 한다. 우리가 밤하늘의 별을

그리워하는 건 그동안 잊고 있던 본연의 고향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드러난 게 아닐까.

우리가 별을 올려다보듯 별들도 우릴 내려다보겠지.

저 별들은 우리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고요한 밤, 괜한 공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인생은 번개와 같고 밤바람과 같고

별빛과 같고 새벽과 같다."

고려 시대의 고승 혜소국사가

금강경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 말이라고 한다.

이 말을 이해할 만큼의 지혜나 식견은 아직 없지만

새벽 별빛 가득 살랑이는 밤바람을 맞으며

봉사자분들과 마지막 밤을 하얗게 지새우니

인생 4대 비유 중 최소 3가지는 확실히

경험해 간다는 억지를 부려볼 수 있겠다.

번개와 별똥별을 이웃사촌으로 본다면

인생 체험을 하룻밤에 끝내는 멋진

행운, '한여름밤의 꿈'을 얻었다며

긍정 회로를 슬쩍 돌려본다.


몽골에서는 수면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았는데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공기가 맑아서 그런가.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서 그런가. 다 맞는 것 같다.

아, 이제 날이 밝아온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