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

2024.8.12.

by 친절한 James


답답할 때가 있다.

시간에 쫓기는데 앞차는 느릿느릿,

옆 차도 꾸물꾸물, 그러다 신호 걸리고.

애타는 정지 기간. 불타는 빨간 마음.

마감 기한에 옥죄는데

진도는 안 나가고 머릿속은 멍하다.

배가 고픈데 식사 시간은 한참 전이다.

글을 쓰려는데 펜만 만지작거린다.

상대방 말귀가 어둡거나

내 말귀가 흐려질 때도,

터져 나갈 듯한

출퇴근 지하철도 그렇다.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

말과 행동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야말로 답답한 순간들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한다.

아니, 지금 이 길도 꽉 막혔는데

돌아가라면 더 오래 걸리는 거 아냐?

조바심이 솟구치고 감질이 간질간질

애를 태운다. 지금 돌아가면

골로 가는 건 아닐까.

손에 쥔 것이, 발로 디딘 것이

아까워 움직이지 못하고 앞만 본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돌아가도 될까.


'급할수록 돌아가라'

물리적 뜻만 있는 건 아닌 듯하다.

10km 거리를 100, 200km 에워갈까.

그보다는 태도에 대한 의미가 아닐까.

당장 눈앞의 대상에 빠져 허둥대지 않고

숨 한 번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기,

사방으로 방방 뛰는 마음을 붙잡아

가슴 위에 살며시 올려두기,

어쩔 수 없는 건 내려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뜻 모으기,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글쓰기가 그렇다.

글을 쓰다 보면 산들바람 불듯

잘 써지는 (것 같은) 날도 있고

진흙탕을 걷듯 잘 안 써지는

(것 같다고 하고 싶은) 날도 있다.

내가 글을 쓰는데 글 쓰는 주체가

내가 아닌 듯한, 다른 이의 글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글이 쉽게 나오든, 아니든,

마음을 급하게 먹지 않고

한 글자, 한 줄씩 쓰는 자체가 중요하다.


오늘 아침 일어날 수 있음이 당연한 것

같은데 사실 그렇지 않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누구도 자기 여생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언젠가 생의 끝이 있지만

언제인지는 알지 못하는 불확실한 확정.

전체 속 부분에 담긴 불확정성 원리.

기다림이 평화로울 수 있다면

급할수록 서두르지 않고

여유 있는 태도로 돌아갈 수 있겠다.

표면적 시간에 흔들리지 않고

내면의 시계에 초점을 맞출 수 있기를.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자신을 자신 있게 세워보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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