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려고 한 건 그게 아니었다

2024.9.25.

by 친절한 James


"왜 그렇게 말했는지 말 좀 해 봐"

L은 묵묵부답이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생각이 말로 연결되지 않았다.

생각다운 생각도 없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자책,

어떤 말로 풀어갈까 고민,

불편하고 부끄러운 미안,

이 시간을 망쳤구나 한탄,

이런 감정들이 짜증의 끈에 묶여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저글링 중이었다.


내가 말하려고 한 건 그게 아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모처럼 맞이한 저녁의 여유는

구멍이 숭숭, 쪼그라들었다.

흙먼지 바닥에 구르며

이리저리 차이는 휴지조각이 되었다.

너덜거리다가 찢어져 버렸다.

시간이 갈수록 좋을 건 없다.

오해를 풀어야 한다.

어서 이 답답한 때를 깨부숴야 한다.

안 그럼 점점 나빠진다.

침묵의 동굴에서 이젠 나와야 한다.

고민이 한가득이지만 일단 이야기를 하자.

이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마음 상하지 않고 시간 망치지 않도록.

그런데 잘못 말해서

사태가 더 나빠지면 어떡하나.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말을 지금 하는 게 나을까.

일단 감정이 진정되면 할까.

말해도 문제, 말 안 해도 문제인가.

어찌할까, 어찌해야 할까.


걷는 길이 걷는 것 같지 않다.

주변은 잘 보이지 않고

발 앞만 겨우 내디딜 뿐이다.

머쓱한 눈빛과 힘없는 잰걸음.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이런 내가 나도 싫다.

쥐어박고 싶은 입술은

풀을 붙였나 테이프를 붙였나,

떨어지지 않네, 말이 안 나와.

발은 잘도 나가는데 입은 왜 이래.

입술과 입술의 끌어당김이 대단해.

블랙홀도 이보다는 약할 거야.

이 산책이 끝나기 전에

말하길 비손한다.

아, 제발!


내가 말하려고 한 건 그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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