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4.
눈을 감았다.
미간이 찌푸려졌다.
왼손을 이마에 대어 보니
얇은 피부 너머 단단한 벽이 느껴졌다.
두개골 속에는 두뇌가 들어있다.
꿈과 생각이 피고 지는 곳,
이성과 감정이 요동치는 곳,
닮은 듯 다른 듯한 하루를
짜내고 살아내는 곳.
낡은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왔다.
일상의 리듬을 벗어나
좀 다른 시간을 보내도
하루는 가고 계절은 바뀐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미련이었지.
미련한 생각이었다.
내가 꼭 해야만,
내가 꼭 있어야 할
그런 일과 장소가 있고
꼭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이 두 가지를 잘 구별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잘 챙기면서 열정을 쏟으면
즐겁고 멋진 나날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몽상을 하는가.
좀 허황된 듯
말이 안 되는 듯
희한한 생각을 하는가.
그런 꿈을 꾸는 건 쓸데없을까.
산후조리원에서 받은 젖병이 있다.
150ml만큼 담을 수 있는 플라스틱 병,
지금 보니 희미한 스크래치가
안개처럼 묻어 있다.
아기가 크면서 그 크기도 커졌다.
유리병도 쓰고 실리콘 병도 써봤다.
더 큰 용량을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안전하고 유연한 토대는
몸과 마음이 자라면서 함께 커졌다.
아이가 성장하고 병도 크게 되고
병이 크면 아이도 자라났다.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몽상이 크면 그만큼
담아낼 수 있는
삶의 모습도
커질 듯
하다.
생각을 해봤다.
내 몽상의 지도는 뭘까.
나는 자유로운 예술가를 꿈꾼다.
월급에 얽매이지 않고
승진이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삶.
즐거운 글쓰기와 기쁜 책 읽기,
출판과 강연, 악기 연주, 영상 제작을
즐거이,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삶,
무엇보다 가족과 더 많이 웃고 이야기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함께 나누는 삶이
지도 위에 아로새겨 있다.
현실과 꿈은 둘이 아니라고 한다.
믿음으로 마음을 포용하면서
꿈의 두루마리를 활짝 펼쳐
하나씩 이루어가야지.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1월부터는 육아 휴직을 한다.
6개 남짓한 계절을 담아낼 기간,
사랑하는 아이와 가족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멋진 시간을
알차게 채워나가야지.
오늘도 반짝이는
몽상의 지도를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