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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an 10. 2024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

2024.1.10.


G의 발길이 조금씩 느려졌다.

어둠이 내려앉은 산길 위에서

두 발이 부지런히 움직이다가

발끝에서 차오르던 숨이

어깨너머로 나부낄 즈음

G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고즈넉한 여유가 시끄럽게 요동치는 곳,

1년에 한두 번씩은 와서 며칠 머무는 곳,

방전된 마음을 충전하고

욕심과 괴로움을 비우고 오는 곳,

템플스테이다.


G는 종교가 없었다.

석가탄신일에는 사찰을 찾고

성탄절에는 교회를 방문했다.

성당에서의 새해 첫 미사도 참석했다.

가족 따라 친구 따라 교회와 성당, 절에도

가보았지만 마음 가는 곳이 없는 듯했다.

직장 근처에 이슬람 사원이 있어서

거기도 가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G는 약간의 히피 성향을 가진

일종의 나신교 신자였다.

그건 뭐랄까, 내 숨은 내가 쉰다는

그런 마음이라고 하면 맞을까.

G는 각종 경전과 영성 도서를 탐독해 왔고

명상이나 요가 수업도 꽤 다녔다.

그래도 G는 일종의 '영혼의 무풍 상태'에

오랫동안 잠겨있었던 것 같았다.


G가 이곳을 안 건 3년 전이었다.

G는 점심을 먹고 틈날 때마다

회사 앞 작은 도서관에서 글을 읽었다.

여느 때처럼 잡지와 신물을 뒤적거리다

한 광고를 보았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인증 템플스테이를 소개하고 있었다.

여기는 종교적 활동은 최대한 덜어내고

마음 돌아보기에 중점을 둔다고 했다.

작은 농장 경영주가 꿈인 G는

몇 년 안에 우프(WWOOF)*를 꼭 가보고 싶었다.

그전에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도 만나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찰을 찾았다.


단순한 마음으로 와서 그럴까.

첫날부터 쉽지 않았다.

꽤 오래 눈동냥으로 본 깜냥이 있다 싶었는데

잠깐 왔다 가는 것과 몇 날 머무르는 건 아주 달랐다.

G가 허리를 펴고 앉아 눈을 감으면

온갖 잡념이 들썩였다. 좀이 쑤셨다.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마음을

이렇게 오래 마주하는 것도 힘들었다.

하루 만에 득도할 것 같던 의기양양함은

온데간데없고 대신 다리 저림이 온몸을 관통했다.

괜히 왔나. 다들 어찌 그리 태연할까.

맞은편에 앉은 중년의 독일 여성은 이번이 네 번째라는데.

아까 산책하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여기 있으면 내면에서 들리는 침묵의 소리가 좋다더군.

그게 어떤 건지 물어봤는데, 페르귄트 모음곡 1번 아침이

가슴속에서 번지는 기분이라나. 입센의 희곡에 그리그가

곡을 붙였다면서 그녀는 희곡 내용을 알려주었다.

일하기 싫어하고 놀기 좋아하는 주인공이

가정을 내팽개치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부를 쌓지만

폭풍우로 모든 걸 잃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의 노래를 들으며

잠에 드는 내용이라는데, 이게 자기 마음을 돌아보는 것

같은 이야기라고 하더군.

잘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이먼&가펑크의

'The Sound of Silence'나 들어봐야겠다.


G는 처음 왔던 날이 떠올라 미소 지었다.

아직 '침묵의 소리'가 들릴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내면에 잠겨 쉼을 얻고 가야지.

G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프(WWOOF, 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

1971년 영국에서 시작해 친환경 농장에서 하루 4~6시간 식사와 장소를 제공하는
전 세계 150여 개국의 글로벌 네트워크 활동으로
신뢰와 지속가능성이 있는 글로벌 커뮤니티 구축을 목표로
'비금전적 교류'를 기반으로 한 문화 및 교육 경험을 장려하고
유기적인 사람들과 자원봉사 활동을 연결하는 글로벌 운동
*출처: 우프코리아, https://wwoofkorea.or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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