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김천 사회복지사로 근무할 때 시골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방문하며 불편한 곳은 없는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그리고 도와드릴 일은 없는지 함께 고민하고 때로는 아들, 때로는 손자처럼 가족이 되어 그리움 적적함을 달래주는 것이 저의 역할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한 할머니와 인연을 맺게 됩니다.
할머니는 차를 타고 한 시간은 족히 걸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에 넝쿨이 돌담 에워싼 집에서 홀로 생활하고 계신 할머니셨습니다.
할머니의 외모는 150센티 정도 될까? 작은 키에 머리를 항상 곱게 빗어 요즘은 참 보기 힘든 은비녀를 꽂고 계신 이웃 할머니셨습니다.
할머니댁에 방문할 때면 항상 전화로 안부를 확인하고는 했습니다.
그러면 할머니는 ‘언제 올래’, ‘밥은 먹었냐’,‘운전 급하게 하지 말고 조심해서 안전하게 와.’하고 저의 안부를 쉴 틈 없이 물어보셨습니다. 꼭 친할머니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고향에 계시는 친할머니가 손자로 대하시는 것처럼...
할머니께서는 항상 마음으로 저를 끌어안아 주고 챙겨주시는 할머니가 너무나도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인연의 끈은 어느 추운 겨울날 한참 눈이 많이 내리는 날로 이어집니다. 그날은 할머니 댁 방문에 작은 툇마루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대접이 쟁반에 올려져 있었습니다.
‘할머니 이게 뭐예요’라고 물었더니, 따뜻한 식혜라고 하셨습니다.
추운 몸을 녹이라고 배려해서 주시는 가슴으로 데워 나온 식혜였습니다.
시원한 식혜가 보편적이고 대중적이지만 추운 날씨에 데워서 주시는 식혜는 할머니의 배려였습니다. 나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 후로도 할머니 댁에 방문하면 항상 뭐라도 내어주려고 하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나는 할머니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아직 경험이 미력하지만 보탬이 되어 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때였습니다. 그러기에 항상 미안함에 죄송함에 그리고 감사함에 할머니를 대함에 있어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할머니와의 정은 쌓여갔습니다.
할머니 댁을 방문하면 시원한 냉수 한잔이라도 꺼내 놓고는 서로 간의 집안 이야기, 그리고 자식 이야기들을 꺼내 놓으면서 사회복지사와 클라이언트가 아닌 친손자와 친할머니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다과도 나누고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무더운 여름에는 할머니 집 지하수 물에 머리를 감기도 하고 또 등목도 하고 정말 시골스러운 곳에서 가질 수 있는 꿈같은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지병이 있으셨는데 바로 천식과 심장질환으로 쓰러지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무더운 여름에 장시간 햇볕에 노출되어 밭일하다가 큰 화를 당하실 뻔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그 이후 홀로 계시는 할머니가 걱정이 되어 더 자주 찾아뵙고 할머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정서적인 지지와 심리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연락이 닿지 않아 할머니 집에 가보았더니 집은 비어있었고 주위 이웃들에게 할머니의 행방을 수소문해 보니 도시에 사는 아들이 모시고 갔다고 했습니다.
건강이 악화되어 큰 병원으로 모신다는 얘기를 듣고는 아들에게 연락을 했을 때는 이미 할머니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불과 일주일 전에만 해도 지병이 있으셨지만 그렇게 빨리 떠나시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할머니와의 이별은 준비도 없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날의 그 기억은 지금까지도 한쪽 가슴에 아련한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기억 속 할머니와 시간, 할머니와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설 고향 집에 갔을 때 춥다고 하시면서 어머니가 따뜻한 식혜를 저에게 내어주셨습니다. 방금 만들어 낸 식혜라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따뜻한 식혜였습니다.
나는 그 식혜를 보면서 문득 예전에 있었던 할머니와의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추운 겨울 배려하는 마음으로 내어주셨을 ‘따뜻한 식혜’ 한 사발..
그것은 단순히 추위를 녹이는 음료가 아니라 배려하는 마음, 사랑이었다는 것을 어머니를 통해서 다시금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할머니 하늘나라에서 잘 계시죠.’ 할머니와 인연, 그리고 추억 함께했던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때의 그 시간들 할머니의 배려와 사랑을 잊지 않고 생활하겠습니다. 기억 속 아니 마음속에 항상 간직하면서 할머니가 저에게 손자처럼 베풀어주셨던 것처럼 저도 마음으로 항상 이웃에 내어 놓을 수 있는 따뜻한 식혜 한잔을 품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할머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