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이 생기기 시작함
그 후, 생각지도 못했던 한 제안을 받았다.
등산 동호회 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등산을 함께하면서 내가 그 일에 관심을 보였던 걸 기억하고 연락을 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물론 그 일이 내 인생의 최종 목적지는 아니었다.
다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있어 언젠가 배워보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곳은, 건설 현장이었다.
나는 손재주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눈썰미’는 있는 사람이었다.
한 번 보면 웬만한 일은 기억하고, 같은 상황에서도 능숙하게 대처해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그런 잔재주는 이전 직장에서도 요긴하게 쓰였던 장점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잘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일단 해보자.”
배워보고 싶었던 일이니까.
그리고 ‘모르지 않는가?’ 이 일이 의외로 내 적성에 맞을지도.
평생 몸을 쓰는 일과는 거리가 있었던 내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엇보다 ‘나를 다시 움직이게 만든 일’이라는 점에서 시작해 보기로 했다.
새로운 일터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익숙했던 사회복지 현장과는 사뭇 달랐다.
처음 듣는 용어, 생소한 공간, 낯선 사람들과의 호흡...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만도 않았다.
그저 새로운 것 앞에서 긴장과 설렘이 공존할 뿐이었다.
익숙해지기 쉽지 않은 일을 시작했다.
마냥 신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쓰지 않던 근육을 쓰는 일이 내 몸을 억눌렀고,
하얗게 피어오르는 시멘트 먼지,
목재를 재단하며 날리는 가루,
건설 현장 특유의 냄새들이
뒤섞여 익숙해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하는 일은 ‘아파트 강화마루 시공’이었다.
나보다 어린 상사에게 일의 방향을 묻고, 마치 신입처럼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어색했고, 체력적으로도 결코 쉽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싫지만은 않았다.
무언가에 다시 몰입하고 있다는 감각.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나간다는 느낌.
예측할 수 없고 서툰 하루하루였지만, 그 서툴기 짝이 없는 상황 속에서
“아, 내가 살아 있구나.”
하는 자아의 외침이 있었다.
몸을 쓰는 일은 잡념을 떨쳐버리게 했다.
오랜 시간 몸에 밴 습관을 버리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육체의 피로는 잡다한 생각을 할 여유를 없애주었고,
오히려 삶이 차츰 안정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모든 것이 점차 익숙해져 갈 무렵
문득, 나는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앞으로도 수없이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일은 나를 소모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회복시키기도 한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의 선택이 정답인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지금 나는, 또 한 번 나를 실어 나를 길 위에 세우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어떤 갈림길을 만나게 될지,
그 갈림길에서 어느 방향을 선택해야 할지
정답은 없다.
그저 주어진 것에 충실히, 묵묵히 나아갈 뿐이다.
흔들리며 무너진 것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 깨어있음을,
서슴지 않고 주저하지 않게 되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익숙함이 주는 일상이 나와는 맞지 않았던 걸까.
차츰 지금의 일이 나의 일상이 되어가던 즈음,
기다리던 소식이 찾아왔다.